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17) 하나님의 능력으로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17) 하나님의 능력으로 <에베소서 1:20~23>

할렐루야! 거룩한 주님의 날, 특별히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 창립 28주년 기념주일로 주님 앞에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은혜와 주의 임재의 영광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능력으로”입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의 죽으심을 앞두고 마리아가 향유를 부어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변에서는 “왜 그것을 그렇게 낭비하느냐?”고 핀잔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독일의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마리아의 이러한 행동을 가리켜 ‘거룩한 낭비’라고 부릅니다. 한 사람의 연봉에 준하는 향유를 그렇게 쏟아 붓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지적처럼 낭비가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을 위한 준비이기에, 그것은 그냥 낭비가 아니라, 거룩한 낭비가 됩니다.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이 땅 뉴질랜드에 세워진지 이제 2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민 초창기에 광림교회 본당을 향해서 “교회설립요청 서신”을 보내고, 고 김선도감독님과 선교팀이 함께 뉴질랜드를 방문했습니다. 장로님 가정에서 함께 모여서 교회 설립을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이민교회이다 보니, 지난 28년의 시간 속에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습니다. 함께 기쁨으로 예배하고 교제하며 감사가 넘쳐날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아픔의 시간을 겪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는 수많은 성도님들의 헌신과 봉사, 수고와 땀과 눈물이 담겨졌습니다.이 모든 것 역시 세상적으로 보면,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주님 앞에서는 거룩한 낭비로 기억되고, 아름다운 헌신의 씨앗이 되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열매들로 맺혀질 것이요, 나아가 우리 후대의 신앙의 삶 속에 더 귀한 열매들로 맺혀지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20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의 능력이” 누구의 능력인가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은혜가 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오늘 이렇게 감사함으로 예배하고 있는 것이요,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믿음의 반석 위에 든든하게 세워지게 된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인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무엇인가? 지금 읽어드린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분이다.” 그 뛰어난 이름을 이미 가진 자로서 흔들리지 말라는 것, 이게 히브리서 전체의 주제입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구원의 이름”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만은 유일한 구원의 이름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백성들이 외친 말, “호산나!” 뜻은 “지금 구원하소서.” 이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천지에 있는 모든 이름 중에 뛰어난 이름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예수 이름의 권세를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사람들도 때로 말합니다. “가서 내 이름 대고 해.” 세상에서 유력한 사람의 이름도 능력이 있습니다.또한 예수님의 이름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마음껏 사용해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거든요. 능력의 이름이요, 구원의 이름이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뇌성마비 시인인 송명희씨가 지은 [내 안에 있는 예수]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나에게 놀라운 권세를 주심으로 내가 모든 것을 이기네.”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소뇌를 손상당해 평생 뇌성마비로 살 수 밖에 없었지만, 처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우리 안에도 예수 이름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만을 전하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만을 높여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신 이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예수님의 이름만 붙잡고, 그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주셨습니다. 


본문 22절 말씀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을 예수님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주셨고, 우리 모두가 교회의 각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지난 역사 속에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가는 한 지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한 수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뉴질랜드광림교회를 28년 전에 이 땅에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교회의 각 지체로 삼으셨습니다.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뉴질랜드광림교회를 28년 전에 이 땅에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교회의 각 지체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오늘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를 밝히는 하나의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를 내가 견고하게 잘 지키고 있으면 그 자리는 더욱 밝아질 것이요, 내게 주어진 자리를 잃어버리면 그 자리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영적으로 강한 자,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 받아서 내게 주어진 자리를 끝까지 믿음으로 잘 지키고, 헌신된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아름답게 잘 세워가는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우리로 하여금 충만함을 이루는 성도로 삼아주셨습니다. 


본문 마지막 23절 말씀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이 말씀은 교회의 지체된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이어서 말씀합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요 몸이다. 즉 예수님이 주인이시라는 거죠. 그리고 교회의 지체된 우리는 모두 교회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다가, 78세에 세례를 받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기도 한, 고 이어령교수의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기사 내용입니다.

  

그가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4가지 크리스챤의 유형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발로 믿는 사람’으로 교회에 가면 제일 눈에 많이 띄는 부류입니다. “교회에는 부지런한 사람이 많더라고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기도나 봉사에 언제나 열심을 냅니다. 마르다와 같은 유형입니다. 이런 분들은 행위를 중시하지요.”   또 하나는 ‘가슴으로 믿는 사람’인데, 이른 바 마리아 유형입니다. “교회에는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이 감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할렐루야’ 와 ‘아멘’ 을 외치며 살아갑니다.”  또 하나는 ‘머리로 믿는 사람’인데, 바로 이어령교수 자신이 이 유형이라고 말합니다. “발로 걸어보지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거듭합니다. 물론 지성의 작용은 중요하지만, 머리로만 믿을 경우 하나님을 만나기도 어렵고, 영접하기도 어렵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어서 이어령 교수는 마지막 네 번째 유형을 말합니다. ‘온 몸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온 몸으로 믿는 사람이 온전한 신자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전형이시지요. 또한 이땅의 선한 목회자와 성도들이 온 몸으로 믿는 신앙인일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 세 가지 유형이 다 필요합니다. 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조화입니다.우리뉴질랜드광림교회에도 얼마나 다양한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이어령 교수는 네 가지로 분류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한 색깔의 신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더불어 혹 내게 좋지 못한 색깔이 있으면 지워가는 것, 그러면서 서로 채널을 맞춰가는 겁니다. 그것이 교회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가야 할 조화요 충만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충만함을 이루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요,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세워가야 할 모습이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의 삶을 위한 길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또한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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