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2 ; 피지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교민뉴스


 

백동흠의 아모르파티 2 ; 피지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일요시사 0 678 0 0

뉴질랜드 동북쪽에 위치한 남태평양의 십자로. 피지의 관문 난디 공항에 내리자 상냥스런 소리가 들려온다. 마중 나온 원주민들의 환영 인사말 불라, 안녕하세요. 반갑게 외치며 목에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건강미 넘치는 장정들이 윗옷을 입지 않은 채 흰 색깔의 긴치마차림, 술루가 이국적이다. 통기타반주로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방문객들을 살갑게 맞이한다.


이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 피지인가! 첫 인상이 참 시골 고향 같다. 언젠가부터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날이 온 셈이다. 삶의 현장을 떠나 한 일주일 머물며 지나온 날도 되돌아보고 다가올 날도 생각해보고 싶었다. 마침 계기가 마련되어 아내와 함께 떠나온 여행길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결혼 26주년에 주어진 시간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남태평양의 외딴 섬 피지. 안내 버스를 타고 호텔 숙소로 향하는 길목도 이채롭다. 가로수로 늘어선 코코넛 야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이 탐스럽다. 배정 받은 아담한 방에 짐을 풀고 나니 벽에 걸린 액자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Restore the mind ! Re-Energize the Spirit !

진정한 휴식 속에 새로운 에너지가 샘 솟아나는 게 여행 보너스 일 수도 있겠다.


호텔 옆 야외 야자수 나무 숲에 통나무 불이 지펴져 있다. 풍성하게 차려진 저녁 만찬장에 피지 전통의 춤과 환영의식이 고혹적이다. 이름하여 메케 의식(Meke) 이란다. 라리이라고 하는 목재 북을 치며 대나무로 리드미컬하게 지면을 치며 반주한다. 토속적인 춤에 푹 빠져든다. 남성들이 하는 메케는 꽤 박력이 있다.


전투모습을 재현한 장면 등은 숨을 멈출 만큼 용감하고 스릴 있다. 진실된 열정은 깊은 감동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열정적이고 혼신을 다해 몰두하는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얼굴과 온 가슴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몰입과 신들린 열정이 있을 때 주위 사람들도 공감하고 하나가 된다.


남성, 여성이 함께 부른 아름다운 노래가 반짝이는 남십자성 밤하늘에 퍼져간다. 통 돼지 바비큐 맛이 절정의 미각을 돋운다. 마음속에서부터 씻어지는 싸한 감동의 물결이 인다. 내 가슴이 문을 연다. 바닷물 소리 철썩 이는 소리 들으며 잠자리에 든다. 순간 모든 게 참 고맙게 여겨진다. 여행 후 일상을 더더욱 몰입해 살아야지.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이하는 게 그리도 좋다. 여러 날이 어린애 소풍 같다. 일정 중 가슴에 남아진 일이 외딴 무인도 섬에서의 휴식이다. 원주민 마을 방문에서 느낀 인간적인 감동도 출렁거린다.


33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나라 피지. 85개 이상의 국제선이 통과해 남태평양의 십자로로 불릴 만큼 접근성이 좋은 섬나라다. 피지는 맹수나 독충, 풍토병이 없는 3무(無)의 땅이기도 하다. 수많은 화산섬으로 이뤄진 피지는 우리나라 경상도만한 크기에 인구는 80만명. 난디 국제공항과 수도인 수바가 있는 비티레부가 본 섬이다. 에머럴드빛 바다, 피지 외딴 섬 에서의 자유로운 휴식으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남의 시선에도 자유롭다.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그며 헤엄을 쳐본다. 너무도 맑은 물이라 바닥이 투명하게 보인다. 스노클링도하고 파도타기도 한다. 카누도 젖고 바닷가 모래 위에 누워 일광욕도 즐긴다. 여러 풍경이 아늑하고 평화롭다. 야자나무 잎 줄기로 엮은 파라솔 지붕이 원두막 같다. 그 아래 등받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니 지긋이 바라다 본다. 자연이 그대로 밀려온다. 한편의 시(詩)가 술술 나와 산호처럼 수를 놓을 것 같다.


시시 때때로 색깔을 달리하는 에메랄드빛 바다. 투명하리만치 맑고 푸른 하늘에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 한가롭게 서걱대는 늘씬한 코코넛 야자수림. 쪽빛 바닷물이 간질대는 상아색 산호 모래밭. 형형색색의 귀엽고 다양한 모습의 산호와 하늘을 잇는 수평선. 삶이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이런 기회에 깨닫는다.


이 외딴 섬에는 아직도 추장제도가 남아있다. 14개 부락으로 구성된 대 추장회의가 1년에 한 차례씩 열린단다. 부족단위 생활을 하는 피지에서 세부세부와 카바의식을 직접 접하는 행운도 고맙다. 원주민 부락에 가는 길이 퍽 인상적이다. 차량 통행길이 끊긴 지점부터 샛강 줄기를 타고 가야 한다. 신문명의 제트보트가 우리를 고대 문명마을로 이동시켜준다. 


고국의 60년대 시골 고향마을 강줄기가 연상된다. 샛강 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 모습이 정겹다. 옆에서 물장구치고 노는 아이들이 신나게 손을 흔든다. 원주민 가이드 아줌마가 강가로 마중 나오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알록달록한 원색 치마에 검정색 장화를 신은 채다. 예의 가득 만면에 미소 짓는 모습이 너무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낯선 부락에 들어갈 때 허락을 청하는 의식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얀고나라는 뿌리를 부락의 추장에게 바쳐야 한다. 적대감이 없음을 보여주고 하나가 되는 세부세부의식을 밟는다. 부락에서 손님을 형제로 맞이할 때 치르는 카바의식도 특이하다. 얀고나 뿌리를 갈아서 만든 카바라는 술을 마신다. 잔을 받으면 박수를 한 번 치며 불라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이어 카바를 원샷으로 들이킨 뒤 박수를 세 번 친다. 동시에 비나카라고 고맙다는 표현을 한다. 의식이 끝나자 어린 소녀들이 손수 만든 꽃목걸이를 해준다.


나쁜 기운을 쫓아내기 위해 얼굴에 흰 분 같은 걸 발라준다. 토속 음식을 준비한 회당으로 안내 받고 깜짝 놀란다. 갓난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100여명이 모여 앉아 환영을 해주다니. 음식을 먹는 동안 계속 전통 악기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러 준다. 괜히 겸연쩍고 미안스러워진다. 다 먹고 나자 메케 의식 끝에 모두들 어울려 춤을 추게 한다. 원주민들의 애환이 어린 노래와 전통 춤으로 이루어진 메케의식은 주로 손님을 환영하거나 결혼을 축하 할 때 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일어나 여행객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함께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민다.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 쌍쌍이 춤을 추다가는 한 줄이 되어 넓게 원을 그린다. 통기타가 쏟아내는 흥겹고도 낭만적인 피지 전통 리듬에 신나게 박수 치며 춤을 춘다. 깊이 몰두해 추다 보니 땀이 흥건하다. 


낯선 풍습임에도 통기타를 타고 흘렀던 니 사 블라(NI SA BULA) 라는 곡이 이상하게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또 메케 춤의 흥겨움이 내 가슴을 마구 흔든다. 원주민들은 망설이는 초대 손님 가슴을 열어 제킨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많은 사람들 모두 한마음 한 몸이 된다.


낯선 땅에서 만나는 이국 풍습이라고 신기해하는 눈으로 바라만 보면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원주민들은 그걸 알고 있는 것 같다. 양고나 의식도 메케 춤도 최선을 다 해서 낯선 이들의 마음이 열리게끔 정열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서로가 친밀감을 느끼면 얻어지는 것이 많다. 원주민들은 그들의 전통 가요인 이사 레이(Isa Lei 이별의 노래) 선율 속에 돌아서는 우리들에게 큰 추억의 선물을 안긴다. 세상에서 가장 순박하고 맑은 사람들로 보여서 가슴 깊이 남아진다.


이사 레이 이별가가 어쩐지 친숙하다 했더니, 번안 가요로 소개된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피지전통가요에서 비롯된 거란다.


-오! 잊지 마오, 내 곁을 멀리 떠나더라도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의 시간들을 잊지 마오.

Isa, Isa,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했었소.-


아직도 귀가에 어른거리는 노래 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 진정한 휴식 속에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는다. 만남과 나눔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행, 머물고 싶은 곳, 다시 찾고 싶은 곳. 한 번 왔던 사람은 꼭 다시 한 번 오고 싶게 만든다는 섬, 피지! 그 섬에 정말 다시 가고 싶다. 비나카! 비나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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