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81)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출애굽기 12:37~42>
8월 15일은 우리 대한민국의 광복 77주년 기념일입니다. 우리나라에 광복절이 있는 것처럼, 나라마다 자유와 해방의 역사는 참으로 소중하게 기억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출애굽의 역사를 보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이날은 마치 독립의 날과도 같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가르켜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다.”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유월절 기간에 일어난 일인 동시에, 예수님의 죽으심이 마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백성들이 죽음에서 건짐받은 것과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의 길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42절에 말씀하는 “여호와의 밤”은 직접적으로는 유월절의 기원이 되는 밤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을 향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잡은 특별한 밤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주의 말씀 앞에 설 때에, “여호와의 밤”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대한민국의 해방의 날을 마주하는 이 때에, 우리 삶에도 영적인 해방, 자유의 기쁨이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여호와의 밤에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 그 속에 담겨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오늘 이 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430년의 노예생활이 끝나는 밤입니다. 자유의 밤이요, 환희의 밤이요, 기쁨의 밤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밤입니다. 앞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시사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명하십니다. 하지만 바로가 놓아주지를 않죠. 그래서 애굽에 피재앙으로부터 시작된 아홉가지 재앙이 내려집니다. 그럼에도 바로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의 예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유월절 만찬을 행합니다.
밤은 어둠의 시간입니다. 밤은 절망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외면했던, 강퍅한 마음으로 대적했던 바로와 애굽 백성들에게 그 밤은 죽음의 밤이요, 참혹한 밤이요, 절망의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그 밤은 생명의 밤이요, 구원의 밤이요, 자유의 밤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밤은 여호와의 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하나님께서 이 밤에 이루신 생명의 역사가, 이천년전 골고다에서 흘린 예수 십자가 보혈을 지나, 우리에게도 동일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주의 십자가를 붙잡고 구원의 역사,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약속의 성취를 이루게 하십니다.
“약속의 성취를 이루십니다.”가 아니고, “약속의 성취를 이루게 하십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나요? “약속의 성취를 이루십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다 이루시는 겁니다. 하지만 “약속의 성취를 이루게 하십니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이룰 길을 열어주시되, 내가 감당할 몫도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앞서 첫 번째에서는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라고 말씀드렸죠. 이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물론 백성들도 양을 잡아서 피를 바르는 것은 하였지만, 그래도 생명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약속의 성취는 조금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가 지난 3주에 걸쳐서 이삭, 야곱, 요셉의 삶을 바라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저들의 모든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모든 말씀의 중심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신실함으로 그 약속의 성취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지만 오늘 여호와의 밤을 지낸 저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나요? 못 들어갑니다.
앞서 애굽에서 나오는 중에, 광야의 모든 걸음 가운데,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다 해주셨습니다. 물이 없다고 하면 물을 주셨고, 먹을 게 없다면 먹을 것을 주셨고, 고기가 먹고 싶다면 고기까지 먹이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다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마지막 가나안 입성 때에는 그렇게 진노하시고, “너희들은 광야에서 다 죽을 것이다.”라고 하셨을까요? 약속은 혼자 이루는 게 아니예요. 애굽에서 꺼내는 것까지는 하나님께서 하셨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겁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 구원의 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열어주셨지만, 구원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의 걸음을 걷는 것은 내 몫이라는 겁니다. 이 간극을 없애가는 과정을 신학적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신앙적인 용어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성경적인 용어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성취를 이루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생명의 역사를 이루신 주의 은혜를 누릴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내 몫을 감당할 때에, 가나안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십니다.
출애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의 계약관계의 성립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는, 이삭의 시대에는, 야곱의 시대와 요셉의 시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너희들을 내 백성 삼아주겠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복을 주리라.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지만 애굽에서의 430년 세월을 끝내고 자유의 몸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약을 맺으십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게 되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계약이 딱 맺어진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유월절 규례를 설명합니다. 여러 가지 내용이 나오지만, 간단합니다. 유월절을 지키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한은 없습니다. 다만 저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이제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 되었으면, 그에 합당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계약의 내용을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그냥 좋을대로 살면 됩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는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선한 영향력? 덕을 세우는 것?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의 욕심이, 세상의 욕망이 시키는대로 살면 됩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나도 그렇게 살면 어때?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났더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죄의 종노릇하던 자에서 해방되었더니, 이제는 도리어 구속이 생겨납니다.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도로서, 권사로서, 집사로서, 장로로서, 목사로서, 그 이름에 책임적인 자세가 요구됩니다.
정말 믿음의 백성이 되었다면,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면, 당당하게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멋있게 신앙생활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멋지게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