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3 소금 꽃

교민뉴스


 

백동흠의 아모르파티 3 소금 꽃

일요시사 0 717 0 0

Newmarket 지역이 교통 대란으로 혼잡한 상황을 맞고 있다. 퇴근 시간, 오후 4시만 넘으면 Standstill, 그야말로 Bumper to Bumper 상태다. Broadway, Khyber pass, GillesAve, Park Rd, Grafton Rd 일대가 대 정체 구간이다. 


퇴근 손님들은 교통전광판에 표시된 버스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들 있다. 그에 대응해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서 손님을 태워야 한다. 버스가 제시간에 와서 기다리는 손님 태워가면 딱 좋은데, 세상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지않다.


버스 운전하는데, 천금 같은 시간을 지연시키는 복병들이 부지기수다. 오클랜드시는 최근 많은 건물공사, 도로공사를 진행 중이다. 오클랜드시가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좋은데, 공사로 인한 정체는 고스란히 차량운행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 


도로공사로 차선이 좁아지고 줄어든 경우, 버스정거장에 승용차나 배달 차가 임시 주정 차 된 상황, 도로 양쪽에 주차된 터에 더블주차까지 된 경우 등등… . 요즘은 아예 곡예 운전을 해야 한다. 덕분에 운전 스킬은 일취월장(?) 되는 느낌이다.


도로가 말도 못 하게 혼잡한 경우, 도착 예정 시간이 10분만 넘게 지연되면 긴장모드로 들어간다. 그런 상황에 머피의 법칙까지 적용되면 그만 머리에 김이 나는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옥죄는 그림이 그려진다. 


만나는 신호등마다 빨간 불이 들어온다. 정거장마다 빼놓지 않고 손님이 타고 내린다. 정거장을 계속 들락날락한다. 유모차 손님과 보행기 손님이 타면 조심스레 타게 하고 자리에 잘 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 탈 때, 아직도 달러 지폐를 내는 자가 있다. 코로나 이후 현금은 안 받는 걸 모르는가, 일부러 그러는가. 교통시스템선진국, 한국에서 도입한 Hop Card를 손님들은 100% 사용한다. 


버스정거장에 손님 내려놓고 도로 쪽으로 차선을 바꿔 나오려 할 때, 신경이 쓰인다. 뒤에서 양보 없이 계속 쌩쌩 달려오는 차들이 많기 때문이다. 거리의 폭탄이라고 부르는 자전거 타는 자. 혼잡한 가운데 요리조리 끼어들고 질주하는 이들을 보면 섬뜩하다.  


택시 운전할 때는 밀린 길을 만나도 샛길이 있어 잘도 빠져나갔다. 손님 목적지에 안전하게 일찍 도착하면 됐다. 버스 운전은 샛길을 이용할 수가 없다. 정해진 코스로 가면서 손님을 태우고 내려줘야 해서다. 


샛길에서는 차체가 크니 돌리지를 못한다. 택시운전 오래 했으니, 버스운전도 쉽게 잘 할 거라고 주변에서 격려해준다. 막상 해보니 그렇게 많이 적용되는 편이 아니다. 택시는 택시고 버스는 버스다. 완전히 다르다. 안 겪어 본 경우는 오로지 몸으로 경험하는 연습뿐이다. 몸이 기억하는 상황은 한결 수월하다.


다시 Newmarket 이다. Broadway 에서 Khyberpass로 꺾어 돌릴 참이다. 파란 불이 켜져서 돌려야 하는데, 일반 차들이 뒤차 꽁무니를 물고 fishtail 형태로 늘어서 있다. 신호등이 다시 빨간 불로 바뀐다. 그러길 세 번 만에야 간신히 꺾어 나온다. 


Broadway에서 Khyberpass를 통과해 오클랜드 병원을 지난다. K-Road를 거쳐 Ponsonby로 해서 Birkenhead로 오는 코스다. Ponsonby 구간도 긴장이 요구되는 곳이다. 차선이 좁다. 버스 쉬는 곳의 앞뒤 여유 공간이 없다.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가 가만있지 않는다. 수시로 차 문을 열고 나와 버스에 부딪힐 번한다.


버스운전에 요구된다는 세 가지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Safely, Quickly, Legally. 우리말로 쉽게 이야기하면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라는 이야기다. 고참 운전사와 새내기 운전사의 차이가 확연히 난다. 


고참은 이 세 가지를 자유자재로 섞어 유연하게 운전한다. 새내기는 힘이 들어가고, 서툰 데가 눈에 띈다. 운전 짠 밥을 그냥 먹은 게 아니다. 고참의 머리를 보니 소금 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옛날에, 아버지들은 몸이 무너질 정도의 고된 육체노동을 했다. 땀이 등에 줄줄 흘러내렸다. 작업복 등이 흥건히 젖었다. 뙤약볕 아래서 땀은 증발하였다. 등허리 옷 부위에 허여스름하게 소금 지도를 남겼다. 그 소금 꽃이 우리 근대 사회 선진화를 이루는 에너지원이었다. 


오늘날엔, 허리가 휠 정도의 육체노동은 줄었다. 등짝을 땀으로 흥건히 적시진 않지만, 스트레스 열기가 머리로 치솟아 오르게 되었다. 일 시간에 쫓겨 신경 쓰며 일하는 경우, 머리로 스팀이 분출하곤 한다. 없던 흰머리가 자연스레 한 올씩 솟아난다. 현대판 소금 꽃이 핀 것이다. 


선천적 유전인자로 흰 머리가 많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민 와서 늘그막까지 삶의 일터에서 일하는 이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피어나는 소금 꽃이 관록의 흔적으로 남는다. 일말의 품격으로 느껴진다.


가장의 진한 흔적으로 남는 소금 꽃, 흰 머리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인체에 절대 필요한 소금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꽃하고 합쳐졌다. 조개의 상처 위에 나오는 진액이 쌓여 진주가 되는 것이 떠오른다. 같은 이치다. 


피와 눈물은 연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반면에 땀은 연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땀은 바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네 생활 전선에는 신성한 노동이 깔려있다. 노동 속에 진땀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해야 할 일에 온몸과 마음을 다해 몰입하면, 흘리는 땀과 열기가 머리로 솟아오른다. 머리에 소금 꽃을 피운다. 인생 열매의 소박한 월계관을 쓴 것이다.


버스운전은 해도 해도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함께 한다. 세 마리 토끼 잡는 일이 항상 요구된다. 그나마 작은 위안을 느낀다. 자신을 가만가만 토닥거려본다. 사실은 사실이다. 몇 년 전에 비해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달라졌다. 


거울을 보면 아닌 게 아니라 없던 흰 머리가 좀 생겼다. 시행착오 겪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한 단계씩 나아지는 자신을 보면 고맙다. 


Good Man! Getting better than before! 운전 인스펙터에게서 자주 듣는 격려에 힘입어 머리에 엔돌핀이 충전된다. 오늘은 팁을 하나 더 받았다. Much better than before!


버스운전에서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무엇일까? Safely, Quickly, Legally! 의 모토아래 운전하는 일. 손님한테서 Nice & Smooth! 라고 들으면 이미 세 마리의 토끼를 잡은 자다. 버스운전을 즐기며 편하게 할 때 받는 팁이다. 손님이 주는 칭찬 한마디면 족하다. 이보다 더한 고객 만족 인증서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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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2-08-23 14:25:50 인터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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