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4 ; Resilience
“Stop please!!!”
“Oh, Sorry~”
지나칠 번 했다. 버스 손님이 차에서 내리고 싶다고. 부저 소리를 못 들었다. 뒤늦게나마 버스를 세웠다. 한 정거장 또 정거장이 예기치 않은 일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사람, 부저를 누른다. 버스를 타고자 하는 사람, 정거장에서 손을 든다. 정신 줄 놓아선 큰 낭패다. 자칫 딴생각이라도 하면 그냥 지나친다. 버스 운전할 때는 운전에만 몰입한다.
옛날, 처녀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앞만 보고 정성스레 걷는 마음이 그랬을까? 한 골목 지나 모퉁이 돌아서고, 조심조심 걷는 걸음. 가득 찬 물동이 물을 흘리지 않고 집까지 가는 일. 처음 버스 운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집중이 따로 없다. 지금 여기에 몰입하며, 바로 앞 일로 나아가는 일. 풍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겠다.
“노스쇼어에서 버스 운전하는 것 봤어요.”
나는 정작 못 봤는데, 내가 운전하는 것을 봤다고 여러 사람이 얘길 했다. 나는 못 봤다. 안 보였으니까. 일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아내도 한 마디 했다.
“오늘, 선셋 로드에서 자기 운전하는 것 봤어.”
“글쎄, 난 자기 못 봤는데.”
남들은 나를 봤다는데, 나는 남들을 못 봤다. 익숙한 택시 운전할 때야, 내가 남들을 보고 남들은 나를 못 봤다. 세상이 바뀌었다. 입장이 바뀐다는 것. 볼 수 있는 것만 본다. 버스운전, 어느날은 미생(未生)이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며 집중한다.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몸 따로 마음 따로 가 아니다. 벌어지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어우러진다. 현재의 연속이 생생한 삶이라는 걸 느낀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삶에서 벗어난다.
미래에서도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면 삶이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 사는 방법은 단순하다. 먹을 때는 먹는다. 들을 때는 듣는다. 놀 때는 논다. 잘 때는 잔다. 몸 떠나 마음 따로 놀지 않는다. 늘그막에 시작한 버스 운전이 딱 그 수행(修行)을 돕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짐을 간직하고 산다. 의당 져야 할 짐이 있다. 버려야 할 짐도 있다. Nice & Smooth! 버스운전 트레이닝받으며 숱하게 듣던 말이다. 어느덧 뇌리에 새겨진 긍정, 행복 주문.
버스 운행 때도 짐이 가벼우면 자연스레 따르는 모양새다. 과거 일과 미래 일만 생각에서 내려놓아도 가뿐하다. 조금 전 실수한 운전, 앞으로 다가올 교통 상황 걱정, 이런 게 바로 불필요한 짐이다.
먼저, 멀리 본다. 다음부턴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 다음을 준비하며 한 정거장 또박또박 나간다. 버스 운전하며 생활 습관이 단순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은 거의 안 한다. 커피 브레이크 타임이 되어서야 조금 훑어본다. 전화 메시지, 카톡, 이메일을 확인한 후 다시 접는다.
버스 운전하며 근육을 키우고 있다. 두세 시간씩 버스운전만 하다, 휴식 시간을 갖는 편이다. 버스에서 내릴 때면, 무릎과 허벅지가 후덜 거리며 뻐근하다. 하체 근육을 많이 쓴 탓이다.
그런 운전 습관에 미처 적응하지 못해 대책이 필요하다. 하루 버스운전을 마치고 집에 갈 시간이면, 어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럴 때면 몸과 마음을 달랜다. 바로 헬스장, 피트니스로 들러 운동을 하는 것. 하루의 일과는 근육 탄력을 키우는 운동 시간으로 마무리한다. 이 점만은 자신에게 단호할 정도다. 하체 근육 단련을 위해서다.
일마치고 그렇게 하니 뱃살이 줄고 허벅지와 장딴지가 탄탄해진 느낌이다. 버스일, 운동, 글, 휴식~ 하루가 단순하다. 담백한 하루 여행이다.
‘꾸뻬 씨의 행복여행’이 메시지를 던져준다. ‘행복이란 없고, 행복한 성격이 있을 뿐’이라 한다. 하나 더 덤으로 준 메시지. Resilience! 회복 탄력성이다. 버스운전은 오로지 집중과 반복 훈련으로 몸에 체득된다.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고, 몸이 기억할 때 비로소 Nice & Smooth가 된다. 몸과 마음의 회복 탄력성은 긍정적인 습관과 낙천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 버스운전 중 겪은 좌충우돌과 해프닝에 얼마나 당혹스러웠던가?
이제 한 숨 돌리고 나니, 멀리 있는 시야와 풍경이 정감 있게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하버브리지를 달릴 때면 기분은 하늘을 난다. 짙은 옥색의 바다 물결, 유유히 떠도는 하얀 요트들,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
더 바랄 게 없다. 온 세상이 다 내편이다. 피로한 근육에 회복 탄력이 붙는 시간이다. 손님들이 많이 타고 있어도 한 마디 크게 외치고 싶다. 카르페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