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25 출판인 - 앨프리드 리드 (Alfred Reed)
<1875년 12월 30일~1975년 1월 15일>
맨발로 뉴질랜드 산과 강 누빈 '서민의 친구'
앨프리드 리드는 몸이 온전치 않았다.
열두 살에 앓은 골수염으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됐지만
늘 밝은 웃음을 띠며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의 걸음은 희망의 행진이었으며
수첩에 적어 놓은 메모는 뉴질랜드의 역사가 됐다.
책방에 가면 여행 관련 책만 모아놓은 코너가 있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경치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 진열된 책장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책은 리드출판사(Reed Publications)에서 나온 책이다. 뉴질랜드 산과 강을 맨발로 누빈 앨프리드 리드가 세운 리드 출판사는 키위에게는 자존심 같은 뉴질랜드의 대표 출판사다.
앨프리드 리드. 그의 빛바랜 사진을 보면 먼저 맘 좋은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곱게 늙어 품위 있게 살다간 착한 사람의 본보기를 보는 것 같다. 앨프리드 리드가 한 세기를 살면서 꿈꾸고 이뤄낸 작지만 뜻깊은 개인사는 뉴질랜드 역사 가운데 한 부분을 장식했다.
사업 실패한 아버지 따라 뉴질랜드 이민
앨프리드 리드는 1875년 12월 30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벽돌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린 앨프리드 리드는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행 배에 몸을 실었다. 웰링턴에 도착한 앨프리드 가족에게 남은 돈이라곤 30 파운드(£) 뿐이었다.
아버지는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으려 했으나 다 헛수고였다. 결국 숱한 고생 끝에 황가레이(Whangarei, 북섬 북쪽에 있는 도시)에서 카우리(Kauri, 뉴질랜드 토종 나무, 재질이 좋아 귀한 목재로 쓰였다) 나무 베는 일을 했다. 아버지 곁에서 일을 돕던 앨프리드 리드는 틈틈이 속기를 배우며 큰 도시로 나갈 날을 꿈꿨다.
마침내 열아홉 살이 된 리드에게 오클랜드로 올라갈 기회가 생겼다. 타자기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다. 성실하게 일 처리를 하는 그를 눈여겨본 사장이 더니든 지사로 발령을 내면서 리드는 출판사업에 눈을 뜨게 된다. 얼마 뒤 아예 타자기 회사를 인수한 리드는 기독교와 관련한 책을 펴내거나 선데이 스쿨(Sunday School, 주일학교) 교재를 수입, 우편배달을 활용해 팔았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앨프리드 리드는 기독교책 공급에 치중했다. 대부분의 키위가 기독교인이었던 덕분에 출판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심지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속기사로 복무하면서도 기독교책을 팔았다.
88세에 남섬 일주…평생 책 44권 펴내
교회에서 평신도 사역자로 봉사해 온 앨프리드 리드는 조카 앨프리드 위클리프 리드와 함께하면서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기독교책뿐 아니라 뉴질랜드 여행 관련 책이나 역사책, 스포츠책까지 펴냈다.
앨프리드 리드는 1940년 65세에 정식 은퇴를 했다. 그때부터 그는 제2의 삶을 살았다. 남북섬 뉴질랜드 전국 곳곳을 누볐다. 여든다섯 살에 배낭 하나 메고 뉴질랜드 최북단 케이프 레잉가(Cape Reinga, 마오리 말로 ‘지하세계’를 뜻함)부터 최남단 블러프(Bluff)까지 걸었다. 장장 2,000km가 넘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80대에 에그몬트(Egmont), 루아페후(Ruapehu) 같은 3,000m에 가까운 높은 산을, 88세에는 남섬 일주를, 89세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 지칠 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그 여정을 책 마흔네 권에 담았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앨프리드 리드는 몸이 온전치 않았다는 점이다. 열두 살에 앓은 골수염으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됐지만 그는 늘 밝은 웃음을 띠며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의 걸음은 희망의 행진이었으며 수첩에 적어 놓은 메모는 뉴질랜드의 역사가 됐다.
평생 모은 귀중한 자료 도서관에 기증
뉴질랜드 역사에서 앨프리드 리드는 ‘비움으로써 채운’ 존재다. 구하기 힘든 고대 성경책과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9세기 영국 소설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시인이자 수필가, 시 ‘풀잎’으로 유명),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비평가이자 사전편찬자, ‘영어사전’의 지은이로 유명)의 원본, 중세시대 원고 같은 평생 아껴 모은 귀중한 자료를 더니든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또 애써 일궈낸 출판사를 한 점 미련도 없이 털어냈으며 많은 재산도 공익재단에 다 기부했다. 기부와 나눔의 삶을 몸소 실천한 참 기독교인이었다.
앨프리드 리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 들러 우스갯소리로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으며, 방송에 나가 나라 사랑을 힘주어 말했다. 1974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앨프리드 리드는 이듬해 눈을 감았다. 한국 나이로 100세였다. 꼭 한 세기를 살아낸 그는 하늘나라로 가기 전, “복음의 능력과, 웃음의 힘과, 사람에게 준 자유의지를 믿으라”고 부탁했다.
한평생을 소박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살아온 그의 발자취는 헌책방이나 큰 책방 역사와 여행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겉표지에 라우포(Laupo, 뉴질랜드 갈대)가 새겨진 책을 유심히 훑어보라. 앨프리드 리드가 사랑한 뉴질랜드,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사랑해야 할 뉴질랜드의 산과 강과 역사가 활자 속에 촘촘히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