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27 ; 교육이론가 - 마리 클레이 (Marie Clay)
<1926년 1월 3일~2007년 4월 13일>
책 못 읽는 설움 달래준 '전 세계 읽기 교육의 스승'
리딩 리커버리는 뉴질랜드에서의 성공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영어권 나라들이 프로그램을 앞다퉈 도입했다.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교육에도 이 방법이 쓰였다.
미국 사람들은 마리 클레이를 '읽기 교육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했다.
마리 클레이는 북미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국제독서협회 회장으로 뽑혔다.
나이 마흔 넘은 사람들은 다 알 거다. 초등학교 국어수업 시간에 벌어진 촌극의 한 장면을. 마음 놓고 웃을 수도 없었던 영화 속 스틸 사진 같은 장면엔 유난히 책 읽기에 뒤처져 떠듬떠듬 책을 읽으면서 생판 다른 글을 만들어 내는 아이들이 있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해프닝이 뉴질랜드에서도 반복됐던 것 같다.
심리치료사 꿈 포기하고 교대로 진학
마리 클레이.
그는 책 읽기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교육가다. 그가 만든 교육 방법은 영어권 많은 학생에게 책 읽기의 새 마당을 열었다. 글 못 읽는 설움을 없애준 사람이 마리 클레이였다.
마리 클레이는 1926년 1월 3일 웰링턴에서 태어났다. 웰링턴 이스트 걸스 칼리지(Wellington East Girls’ College, 1925년 설립)를 졸업한 그는 전문 심리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심리치료사가 되기에는 너무 어려 웰링턴에 있는 교육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클레이는 1945년 교사자격증을 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돌보았다.
아들 둘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
이듬해 빅토리아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1948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잠깐 교육부 소속 임상심리사로 근무하다가 1950~51년에는 풀브라이트 장학금(Fulbright Scholarship)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1950년대 그때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들이 좋은 임상 실험 대상이었다. 자기만의 책 읽기 교육방법을 제대로 써먹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도 안 돼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짰다.
오클랜드대학 교수로 발을 내디딘 마리 클레이는 30년을 근무하면서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 영어권 나라들에 읽기 교육의 기념비가 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1966년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에서 마리 클레이는 ‘왜 어떤 아이들은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지’를 알아냈다.
1983년 리딩 리커버리(Reading Recovery)라는 이 프로그램이 정부 도움으로 시작됐다. 1978년부터 5년 동안 예비과정을 거쳐 뉴질랜드 공립 초등학교가 정식으로 리딩 리커버리를 프로그램을 채택했다. 그때 초등학생(만 6세)의 1% 만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보통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영어권 나라는 무려 15%였다.
여섯 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방법은 90%가 넘는 성공률을 보였다. 그동안 지적 능력이 조금 부족한 아이들은 책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말끔히 씻어냈다.
리딩 리커버리는 뉴질랜드에서의 성공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영어권 나라들이 프로그램을 앞다퉈 도입했다.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교육에도 이 방법이 쓰였다.
미국 사람들은 마리 클레이를 ‘읽기 교육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했다. 마리 클레이는 북미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국제독서협회(International Reading Association) 회장으로 뽑혔다.
60여 해 동안 책 서른두 권 펴내
마리 클레이는 60여 해를 교육계에 종사하면서 교육 관련 책 서른두 권을 펴냈다. 그 가운데 《리딩 리커버리: 가이드라인스 포 티쳐스 인 트레이닝》(Reading Recovery: Guidelines for Teachers in Training)은 지금까지 800만 권이 넘게 팔려 ‘책 읽기 교육의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1975년 뉴질랜드 역사에서 여성 가운데 가장 먼저 대학 정교수(오클랜드대학) 자리를 차지한 마리 클레이는 2007년 4월 13일 여든한 살을 일기로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전 세계 다섯 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에는 기사(Knight)에 해당하는 데임(Dame)의 명예를 안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4년에는 ‘1994년의 뉴질랜더’(New Zealander of the Year 1994)라는, 키위로서는 가장 큰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이 한 평이다.
“개인의 영광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다른 사람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참말로 아름다운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글_박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