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67) 본(本)Born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67) 본(本)Born <디도서 2: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의 자리에 있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받은 구원은 내 노력과 공로가 아닌, 값 없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기억할 것은, 값 없이 베푸신 은혜라고 해서 그것이 가치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본”입니다. 한글도 있고, 한문도 있고, 영어도 있습니다. 한글의 “본”과 한문의 “근본 본자”는 같은 의미입니다. 본문 7절에 말씀하죠.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믿음의 백성으로서 세상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동시에 제가 영어로 “Born”을 함께 썼는데, “Born”은 아시다시피 “태어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단어가 덧붙여져서 “Born again”하면 “다시 태어나다.” 즉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에게 주셨던 말씀 “거듭남”이 됩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가 하나로 연결이 되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다시 ‘born-태어났으면’, 그래서 내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나는 세상에서도 믿는 자로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불어 오늘 어버이주일인데, “내가 내 자녀를 ‘born-태어나게 했다면’, 내가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부모님을 통해서 이 땅에 ‘born-태어났다면’, 나는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이 역시 신앙을 가진 자녀로서의 ‘본’이 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본이 되는 삶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어른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보통 어버이주일하면 자녀들의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 중에 하나가, 부모님은 자녀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더 앞선 일입니다. 부모님들은 먼저 자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의 본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어른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겁니다. 얼마 전에도 소개해드렸습니다. 남포교회 박영선원로목사님이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 어른 노릇 잘 하라며 권면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비로소 젊은이들에게 할 말이 생긴다. 지혜를 나누고 싶어진다. 하지만 하지 마시라. 듣지 않는다. 그저 저들을 위해서 기도해줘라. 그냥 한 번 웃어줘라. 저 못난 것들을 위해서 저들은 몰라줘도 뒤에서 내가 기도하며 그늘이 되어주시라.”

  

어른은 어른으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부모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이 있는 분들은 또 그대로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2절과 3절에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를 향한 권고의 말씀이 나옵니다. “늙은”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이건 나이로 딱 따지기보다는, 교회의 어르신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가정에서의 부모님 세대를 뜻합니다. 2절에 “늙은 남자는 절제하고, 경건하고, 신중하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3절에 “늙은 여자는 행실이 거룩하고, 술의 종이 되지 말고,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절제, 경건, 신중, 거룩, 선함”. 이러한 모습이 내 말과 행동과 표정을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신앙의 삶 속에서나 세상에서나 가정에서나 어른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고 모범이 되고 존경 받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젊은이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어른의 역할이 있다고 한다면, 젊은이로서 지켜야 할 자리도 있습니다. 먼저 4절과 5절에 젊은 여자들을 향한 권고가 나옵니다.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덧붙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 30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이 당시에는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임박한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부작용들이 생겨납니다. 가족 모두 다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그래도 좀 덜한데, 여성만 신앙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진 여성들이 교회 가서 말씀만 듣고, 기도만 하고, 집안 살림은 소홀히 하는 겁니다. 남편이고, 자녀들이고 신경쓰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게 되는 거죠. 예수 믿는 것이 전혀 본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이나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의 서신에 여인들을 향한 권고가 자주 나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가정생활도 잘 해야한다는 권고입니다. 그게 젊은 여인들이 내 자리를 잘 지켜가는 겁니다. 내 신앙의 자리 뿐만 아니라, 내 가정과 삶의 자리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6절에는 젊은 남자를 향한 권면이 나오는데, 딱 하나입니다. “신중하도록 하라.” 상대적으로 젊은 남자를 향해서는 하나만 잘 하면 나머지도 잘 할 수 있기에 하나를 중점적으로 강조했는데, 그게 바로 “신중하도록 하라.”입니다. 젊은 남자는 어떤가요? 혈기가 넘치죠. 참을성이 모자라 일을 그르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신중하라는 것입니다. 젊은이의 자리는 기다림의 자리입니다. 자녀의 자리는 기다림의 자리입니다. 젊은이의 자리는 그 기다림을 배워가는 자리입니다. 기다림을 훈련하는 자리입니다. 내 혈기 가지고 불뚝 불뚝 일어서는걸 자제하는 것을 배워가는 자리입니다. 어르신들이 전하는 가르침을 향해서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리, 잔소리와 같은 말이 반복되어도 참고 들을 줄 아는 자리, 그 자리에서 들은 것을 내 삶의 지혜로 내 안에 담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에 기다려 설 수 있는 것이 젊은이의 자리를 지켜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무르익으면 비로소 다른 이에게 본이 될만한 어른이 되는 겁니다. 

  

그 자리가 청년의 자리일 수도 있고, 가정에서 자녀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회사에서 부하직원의 자리일 수도 있겠죠.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뭔가를 배우고 시작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 자리가 또 젊은이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기다림으로 잘 다듬어질 때에, 누구에게라도 본이 될만한 어른의 자리에 서게 되는 줄 믿습니다.  


  

끝으로, 믿는 자로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끊임없는 박해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아예 책잡힐 일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악의적으로 꾸며내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겠지만, 혹여라도 작은 실수라도 하지 않게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1절의 말씀처럼 “오직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만 말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서라는 것이죠. 이어서 7절과 8절의 말씀은 실제적인 삶에서도 바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항상 선한 일의 본을 보여라. 바른 교훈의 말만 하라. 단정하게 행동하라. 책망 받을 것이 없도록 바른 말만 하라.” 이 모든 것은 대적자가 보고 스스로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대적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인정받을만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인정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로서의 삶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자의 삶은 도덕적, 윤리적, 그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윤리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디도서의 말씀을 보면, 오늘 본문을 제외하고도, 가장 중심되는 주제, 가장 많이 반복되는 주제가 바로 이러한 본이 되는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함께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간에, 또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아가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선한 모습을 보이라. 인정받는 삶을 살라.”고 권고합니다. 

  

예수 십자가 사랑으로 다시 “Born-태어난” 우리들은, 구원받은 자로서, 신앙인으로서 세상 속에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삶의 걸음 속에, 가정에서나 사업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떤 삶 속에서도 믿는 자로서 본이 되는 삶을 사시는, 그래서 우리의 걸음이 닿는 가정마다, 일터마다, 그곳이 어떠한 곳이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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