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15 발명가- 콜린 머독 (Colin Murdoch)
<1929년 2월 6일~2008년 5월 4일>
수백만 목숨, 플라스틱 주사기 하나로 '살려내다'
콜린 머독은 지난 2000년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올해의 뉴질랜드 상’을 받았다.
영국 여왕 생일 주간을 맞아 만든 이 상의 첫 주인공이었다.
‘첫 수상자’라는 말은 그 전까지 콜린 머독보다 더 나라의 명예를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역사는 세상을 바꾼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눠 기록하기도 한다. 수백만 명을 죽인 사람과 수백만 명을 살린 사람이다. 히틀러가 앞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콜린 머독은 뒤에 속하는 인물이다. ‘뉴질랜드를 빛낸 사람’만이 아닌 ‘세계를 빛낸 사람’으로 콜린 머독을 기억하는 건 그가 인류에게 끼친 공로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콜린 머독, 그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열 살 때부터 여든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의 꿈은 늘 멈추지 않는 ‘진행형’이었다. 그가 품은 꿈이 이루어질 때마다 수십, 수백만 명이 살 수 있었다. 콜린 머독이 꿔왔던 꿈 보따리를 풀어본다.
열 살 때 ‘콜린 머독표 화약’ 제조
콜린 머독은 1929년 2월 6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태어났다. 어린 날 그는 책 읽기 장애가 있어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했다. 하지만 화학만큼은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열 살 때 첫 ‘사고’를 쳤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가 그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했다. 다음 날 콜린 머독은 화약을 만들어 냈다. 몇 가지 물질을 적당한 비율로 섞은 ‘콜린 머독표 화약’이었다. 장난감 총도 어릴 적 발명품 명단에 올라있다. 직접 만든 총으로 토끼사냥도 즐겼을 정도이니 성능은 믿어도 좋을 것 같다.
‘사고’를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어쩔 줄 몰랐다. 철부지의 실험을 격려해 줄 수도, 만류할 수도 없는 고민스러운 상황이었다. 어린 콜린 머독은 그렇게 ‘남이 꿈꾸지 않는 것을 꿈꾸며’ 커갔다.
약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콜린 머독도 약사 자격증을 땄다. 수의사가 되고 싶어 따로 틈틈이 공부해서 반 수의사 역할도 할 수 있었다. 과학과 동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남다른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룬 꿈, 하나-일회용 플라스틱 주사기
약사로 일하던 콜린 머독은 1956년 그때까지 많은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회용 주사기를 만들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주사기였다. 유리 주사기는 다시 쓸 수 있어 다른 환자에게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질병(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완벽하게 소독하지 않고 잇달아 쓰다가 오히려 병을 만드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이 문제를 고민해 온 콜린 머독은 마침내 일회용 주사기를 발명했다. 뉴질랜드 보건 당국에 아이디어를 줬지만 담당자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진작 수백만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던 그 좋은 아이디어는 불행하게도 몇 해 동안 묻혀 버렸다. 그러다가 호주에 있는 한 회사의 도움을 받아 꿈을 이루어 냈다.
일회용 플라스틱 주사기 덕분에 한때는 불치병이라고까지 했던 에이즈(AIDS)를 예방할 수 있었다. 또한, A, B, C형 간염, 결핵, 당뇨 같은 병에 걸린 환자가 두려움 없이 치료를 받게 됐다. 특히 정해진 때에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가장 멋진 선물이었다.
해마다 미국에서만 5억 개가 넘게 쓰이고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주사기는 세계 의학계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룬 꿈, 둘-안정 주사제 총
콜린 머독은 늘 자연과 어울려 살았다. 산과 바다에서 삶을 즐기며 어떻게 하면 동물에게도 자기 아이디어를 살려 쓸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병에 걸린 동물을 고통 없이 치료해 주는 것이었다.
밤에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생각이 떠올랐다. 멀리서도 정확히, 고통 없이 ‘한 방에’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장치가 뇌리를 스쳤다. 얼마 뒤 발명품이 나왔다. 오늘날 동물에게 쓰이는 트랭퀼라이저건(Tranquilliser Gun /안정 주사제)이었다. 콜린 머독은 이 주사제가 가장 높은 효율을 내길 바랐다. 그는 아프리카 밀림에까지 들어가 직접 총을 쏴가면서 성능을 개선해 나갔다. 고통 없이 동물들이 치료받을 길을 열어주었다.
마취총은 1979년 오클랜드에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쓰였다. 아내를 인질로 잡고 있던 한 남자가 그 대상이었다. 특수 경찰대 저격수가 콜린 머독의 지시를 받았다. ‘신체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 속도로 쏘라’는 말에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목표에 발사,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이룬 꿈, 셋-어린이 보호용 병뚜껑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이 물건을 잘 만드는 게 발명의 기본이다. 콜린 머독이 개발해 낸 어린이 보호용 병뚜껑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른 엄지손가락으로 세게 눌러야만 뚜껑을 열 수 있는 남다른 병을 만들어낸 사람이 콜린 머독이다. 어린이가 만지면 위험한 약병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도둑 방지 알람, 화재 방지용 열 감지기 같은 제품들도 그가 인류에게 선사한 발명품들이다. 그가 꾼 꿈은 그렇게 세상을 평화롭고 이롭게 만드는 데 한몫 했다.
브뤼셀 발명가대회에서 금메달 3개 따내
콜린 머독은 마흔 개가 넘는 특허권을 갖고 있었다. 그 가운데 앞서 소개한 세 가지 발명품으로 1976년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발명가대회에서 금메달 세 개를 받았다. 그냥 돈만 안겨주는 미다스(Midas) 손 같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수백만의 사람과 동물을 살려낸 ‘참 꿈 같은’ 제품을 만들어 인류에게 도움을 주었다.
어느 날 특허권 관련 변호사가 콜린 머독에게 “당신이 고안해 낸 아이디어를 써서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제품을 만들었으니 그 사람들한테 사용료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콜린 머독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돈을 위해 발명하지(꿈을 꾸지) 않았다. 오리지널(정통)은 내 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돈은 멀리했지만 퐁퐁 솟는 아이디어의 황금 어장이었던 자연과는 늘 어우러져 지냈고, 사람과 동물을 극진히 사랑했던 따뜻한 가슴의 발명가 콜린 머독.
그는 지난 2000년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올해의 뉴질랜드 상’을 받았다. 영국 여왕 생일 주간을 맞아 만든 이 상의 첫 주인공이었다. ‘첫 수상자’라는 말은 그 전까지 콜린 머독보다 더 나라의 명예를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콜린 머독은 2008년 5월 4일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