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11
<1847년 3월 10일~1934년 7월 13일>
세계에서 맨 처음 여성투표권 따낸 '뉴질랜드의 딸'
크라이스트처치 공동묘지에 있는 케이트 셰퍼드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여기 훌륭한 사람이 잠들다.
역사가 이어지는 한 케이트 셰퍼드는
뉴질랜드의 영원한 딸로 남을 것이다.”
‘한 사람의 힘’(Power of One). 역사가 훌륭하거나 사악한 몇 사람을 통해 이어져 왔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들이 꾼 꿈이 세계를 좋게 또는 나쁘게 바꿔왔다.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사건 때문에 후손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뉴질랜드 여권 운동가 케이트 셰퍼드는 뉴질랜드는 물론 세계 역사를 바꾼 ‘위대한 한 사람’으로 꼽힌다.
‘한 사람의 힘’, 세계 역사 바꿔 놓아
‘뉴질랜드’하면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는 여성이 대접받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케이트 셰퍼드라는 ‘한 여성의 힘’(Power of One Woman)이 없었다면 오늘날 뉴질랜드 여성의 권익 신장은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의 노력이 뉴질랜드와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이트 셰퍼드는 1847년 3월 10일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음악을 사랑하는 변호사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청교도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목사였던 삼촌 집에 머무는 동안 그의 인생관은 변화를 맞는다. ‘자유’와 ‘정의’, 가치 있는 삶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스무여 해 뒤 그는 인류 역사의 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여성참정권’을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스물한 살 때인 1869년 언니가 살고 있던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주해 어머니, 형제자매와 함께 새 둥지를 일궜다. 그곳에서 케이트 셰퍼드는 한 사업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2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10여 해 결혼생활을 하던 케이트 셰퍼드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187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불황의 여파로 뉴질랜드에 불안 심리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는 기독교 정신을 담은 ‘뉴질랜드 여성절제회’를 만들어 열성 회원으로 활동했다. 알코올과 성차별 문제, 이혼 같은 사회문제를 ‘여성의 눈으로, 어머니의 눈’으로 해결에 나서면서 온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여성 인구 3분의 2 함께해
케이트 셰퍼드는 기세를 몰아 여성투표권을 정식으로 국회에 요구했다. 하지만 승리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1888년 1차 실패, 1891년 2차 실패, 1892년 3차 실패…. 잇달은 실패에도 참정권을 쟁취하려는 뉴질랜드 여성들의 의욕은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첫해 9천 명으로 시작한 서명 참가 인원은 법안이 통과된 해인 1893년에는 3만2천 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여성 인구 3분의 2가 셰퍼드와 뜻을 함께했다.
마침내 1893년 9월 19일 득표수 찬성 20 반대 18로 수천 년 동안 불허돼 온 여성 참정권(투표권)이 전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도입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뉴질랜드 정부는 여성을 어린이, 정신병자, 범죄자와 같은 급으로 생각해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스물한 살이 넘은 보통 남자, 그것도 자기 집이나 사업체가 있는 사람에게만 주었다. 이 이치에 맞지 않는 벽을 깬 사람이 케이트 셰퍼드였다. 그렇지만 30여 해가 지난 1919년에야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고, 또다시 14년이 흘러서야 첫 여성 국회의원이 나올 정도로 여성의 정치투쟁사는 험난했다.
세계에서 맨 처음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일은 큰 사건이었다. 민주주의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도 아닌,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에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뉴질랜드는 ‘여성 천국’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영국은 1918년, 미국은 1920년, 한국은 일제 강점기 시대가 끝난 1948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전 세계 여권운동가의 ‘대모’로 여겨
‘첫 여성투표권’ 쟁취를 계기로 케이트 셰퍼드는 역사를 바꾼 여권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뛰어난 글과 호소력 있는 강연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여권운동가 본보기(Role Model)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 여성운동가들이 아직도 ‘대모’로 여기는 인물이다. 그가 보여준 ‘한 사람의 힘’이 ‘모든 여성의 새 삶’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크라이스트처치 공동묘지에 있는 케이트 셰퍼드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여기 훌륭한 사람이 잠들다. 역사가 이어지는 한 케이트 셰퍼드는 뉴질랜드의 영원한 딸로 남을 것이다.”
케이트 셰퍼드가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과 후손들은 그의 뜻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또 다른 나, ‘한 사람의 힘’이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 케이트 셰퍼드는 키위들의 지갑 속에서 한 사람의 인권이, 사회 약자인 여성들이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사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10달러짜리 종이돈은 그걸 증명한다.
<글_박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