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VE SPEAKER ; CHANG-RAE LEE
안은채 Auckland International College
무엇이 그들을 겉돌게 하는가
“서정적이고 신비로우며 미묘한 감동을 준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가슴에 남는 아련한 우울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 소설은 정치와 사랑, 가문 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의 이성이 아닌 감성 리듬을 자극함으로써 맛보게 되는 실패를 보여 주고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튼튼한 구성과 아름다운 문체가 돋보인다.” (북리스트)
이 소설은 이민자의 정체성. ‘그것은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걸 목표로 한다. 내가 이 소설에 급격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체성이란 결국 인종과 민족, 그리고 언어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내가 어려서부터 해외에 나가 9년 동안 살면서도 일정 부분 체념하고 또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벽이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유창하게 해도 원주민들은 어려서부터 다져 온 그들만의 문화적 기득권을 유지하며 주류사회의 장벽을 높여만 갔다. 그리고 긴 유학 생활을 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을 만나고, 내 피부와 내 언어가 나를 이 세계 어느 좌표에, 어느 자리 어느 높이에 위치시킬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는 돌아갈 고국이 있었기에 굳이 주류사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절박함이나 비주류로서 느끼는 박탈감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영원한 이방인의 주인공 헨리 박처럼 이민 2세의 한국계 미국인이라면 아마 다르지 않았을까.
영원한 이방인은 사설 스파이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주인공이 영향력 있는 한국계 정치인의 뒷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겪는 정체성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헨리는 자신의 직업을 통해 정체성 혼란을 겪다가 점차 모양이 갖추어지고 견고해지면서 정체성이 확립되는 과정이 더 크게 부각되어 있다.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라는 분열적 자아, 백인 공동체에 발을 걸친 이민자 및 인종적 소수자, 언어 문제 등이 전개된다. 헨리는 더듬거리며 영어로 말하던 부모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따금 자신의 말에서 발견되는 모국어의 흔적들, 자신이 원어민이 아니라는 증거들을 인식한다. 때문에 헨리에게는 항상 두가지 언어가 공존하는데, 이것은 곧 두 정체성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헨리는 이런 심정을 “자신의 세계에 대하여 단일한 감각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 내 희망이기도 했다.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 이라고 말한다. 이런 심정은 그의 아들 미트에게까지 이어지는데 그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으면 할 정도였다.
소설은 헨리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서술되기 때문에 소설의 분위기는 침착하고 정적이지만 모든 것은 억눌린 채로 끊임없이 부딪치고 부서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귀가 맞지 않는 것들이 서로 충돌하며 으스러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뿐 아니라, 여러 인물 사이의 갈등, 폭력, 방화나 의견 충돌로 인한 사건과 에피소드를 소설 군데군데 삽입한다. 덕분에 소설은 조금 덜 지루했고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삶의 투쟁을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영원한 이방인을 감도는 테마는 언어와 정체성, 가면과 연기다. 단일하지 못한 언어 감각은 자기 뿌리의 근원을 계속 상기시키고, 억누르는 것이 폭발하는 것보다 편한 성격은 계속 겉돌면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해야 하는 직업과 맞물린다. 헨리는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아니 엄밀히 사람들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짓고 발꿈치를 들고 다니며 사뿐사뿐 걸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가슴에 뭔가가 자꾸 울컥하며 치밀어 올랐다. 계속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연기해야 하는 헨리는 어찌 보면 유연성이 넘치는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 헨리는 어딘가 경직되고 안이 텅텅 비어버린 박제된 인물로 보였다.
모든 문화는 혼종의 과정을 거쳐간다. 하지만 문화의 섞임에도 계급성은 들어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는 여전히 색이 있고 그 색에는 일종의 서열이 깃들어 있다. 영원한 이방인은 언어와 피부, 문화가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쳐버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