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 생명적 신앙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 <에스겔 37:1~14>
생명적 신앙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
에스겔 37:1~14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생명적 신앙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이 제목은 보시는대로 금년 교회 표어입니다. 초대교회의 출발을 이루었던 유럽의 교회들은 이미 쇠퇴를 넘어서서 박물관화되었습니다. 그저 문화관광지와도 같습니다. 청교도의 이주와 함께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며, 세계 곳곳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던 미국의 교회들도 이제는 그 영적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1884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입국과 더불어서 세계 교회 역사에 전무후무할만한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던 한국의 교회도 지금은 그 영적 영향력이 쇠약해졌습니다. 왜 이러한 기독교의 위기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나요? 결국은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이러한 삶의 현실 속에 우리는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그 답이 오늘 제목입니다. “생명적 신앙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 우리 안에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주님 앞에 설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게 신앙인으로서 본질이고, 교회가 가져야 할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2022년의 첫 번째 주일,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우리를 향하신,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을 마음에 품고, 새로운 믿음의 결단을 세우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생명적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로 그 바벨론 포로 시절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이방 나라에서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할 수도 없는 현실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시고, 환상을 보이십니다. 본문의 마른 뼈가 상징하는 것은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없는 절망의 현실입니다. 에스겔 스스로도 회복의 말씀을 선포하고는 있지만, 주어진 현실과 환경 속에서는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직접 마른 뼈 환상을 보이십니다. 에스겔로 하여금 직접 마른 뼈를 향해 대언하게 하시고, 살아나는 광경을 보이심을 통해, 에스겔은 더욱 더 담대하게 확신있게 외치게 됩니다. “메마른 뼈와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생명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생명적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 삶은 마른 뼈와 같을지라도, 지금 사업장이나 직장의 모습은 마른 뼈와 같을지라도, 지금 기독교의 모습은 마른 뼈와 같을지라도, 예수 믿는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거하는 나는, 지금 영적으로 살아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6절 중반에 말씀합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주의 말씀 붙잡고 생명적인 신앙으로, 살아나는 역사, 또한 살리는 역사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마른 뼈가 살아나고, 큰 군대를 이루는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환상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요, 궁극적으로는 죄악된 세상에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상징합니다. 더불어 앞서 진단한 현재 기독교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생명적인 신앙을 가진 깨어있는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부흥과 회복의 역사를 이룰 사명이 주어졌음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생명적인 신앙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오늘 마른 뼈에 생기가 임할 때에, 되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 안에 생기가, 즉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있을 때에 나 역시 영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영적으로 살아납니다. 그러면 기독교 전체에 회복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나 한 사람, 주의 은혜를 체험한 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거창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단순히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새로운 회복의 역사를 내 삶에 먼저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복된 미래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뭔가 대단한 미래를 만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몫을 감당하면 됩니다. 본문에도 보십시오. 에스겔이 한 게 뭐가 있나요? 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대언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미래는 마른 뼈가 큰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기쁨되는 삶을 올려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입니다. 2022년, 하나님 주신 미래의 청사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허락하신 축복의 조감도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신앙적인, 또한 삶적인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작은 헌신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성취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금년 표어를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마지막 세 번째는 결론입니다.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금년 2022년에 생명적 신앙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때에, 우리에게 이루어질 결과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의 성취입니다. 하지만 오늘 에스겔이 처음부터 큰 역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에스겔의 눈에 띈 것은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환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마른 뼈의 모습을 보십시오. 2절 중반입니다.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마른 뼈, 쓸모 없는 뼈는 많으면 많을수록 더 쓸모가 없습니다. 마르면 마를수록 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모습인가요?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습니다.”
하지만 후에 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붙고 생기까지 들어가서 살게 되니까, 10절 중반처럼 됩니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그 쓸모 없는 마른 뼈가 이제는 극히 큰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완전 쓸모 없는 것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역사입니다. 오늘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뼈들은 “매우 심히 극히” 마르고 마른, “매우 심히 극히” 쓸모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쓸모 없는 뼈들을 가지고 “매우 심히 극히” 큰 군대로 만드십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생기가 들어가면,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에게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생명적인 신앙이요,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생명적 신앙으로 미래를 준비하여,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성취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2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금새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2022년을 보내고, 새로운 2023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또 새로운 2024년, 2025년을 맞이할 것입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은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맡기신 사명입니다. 주의 말씀 붙잡고, 2022년 생명적 신앙으로 미래를 준비해나가는 교회로서의 사명 감당할 때에,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우리 삶에, 우리 교회에, 또한 우리 삶에 성취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2022년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가장 귀하고 복되고 행복한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