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46); 광야에 피어난 꽃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46); 광야에 피어난 꽃 <미가 5:1~9>

일요시사 0 967 0 0

여러분은 광야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광야는 황무한 곳입니다. 텅빈 곳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광야에도 꽃은 피어납니다. 가장 척박한 곳이라고 하는 사막에서도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생명력입니다. 오늘부터 교회력으로 대강절이 시작되는데, 대강절은 곧 생명의 절기입니다. 대강절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을 준비하는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십자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죽기 위한 죽으심이 아니라, 살기 위한 죽으심입니다. 나아가 살리기 위한 죽으심, 즉 생명의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은 미가 선지자를 통한 예수 탄생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왔을 때에, 헤롯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서 “메시야가 어디에서 나겠느냐?”고 물었을 때에, 본문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다 땅 베들레헴이라고 말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주전 700여년경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미가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하는 모습을 보았고, 현재 남유다 역시 멸망의 길로 향하고 있는 그 시점에 오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님 오시기 700여년전 이미 메시야의 오심이 예언되었고, 그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메시야, 예수님의 오심은 죽어가는 세상 속에 새로운 생명의 빛을 비추셨고, 우리는 그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또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길 가운데서 대강절, 예수님의 오심과 더불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고난 중에 바라봐야 할 하나님입니다. 


보통 성경을 보면 1절과 2절이 딱 구분이 되어 있는데, 사실 1절을 먼저 봐야합니다. 1절이 배경이고, 2절부터 나오는 말씀이 그에 따른 결과거든요. 1절이 어떤 상황인가요? 이스라엘이 지금 전쟁을 하는거예요. 그런데 그 전쟁의 결과가 이미 1절 한 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이스라엘 재판자, 다시 말해 왕입니다. 적군이 이스라엘 왕의 뺨을 칩니다. 전쟁의 폐배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하는 위기에 처해졌다는 거예요. 이러한 상황에 따른 결과로, 지금 나라가 망하는 고난의 현실이라는 원인의 결과로 2절부터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베들레헴에서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다.” 베들레헴은 잘 아시다시피 “떡집, 빵집, 밥집” 이런 뜻입니다. 이어지는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지명으로, 그 뜻은 “풍성한 열매”입니다. 반면에 바로 앞선 1절까지는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어 먹을 것도 없고, 왕이 적군에게 뺨을 맞는 비극입니다. 1절과 2절의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주죠.

  

지금 이스라엘은 최고의 위기요, 나라가 망하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아픔, 극심한 치욕과 고난의 현실 속에서, 지금도 전혀 앞길을 가늠할 수 없는 그 고난 가운데서 미가 선지자는 말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 풍성한 열매가 가득한 빵집이라는 불리는 마을이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다.” 새로운 소망이죠. 우리 믿는 자들은 힘들면 힘들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앞이 캄캄하면 캄캄할수록 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치욕의 상황, 고난의 현실 속에서 오히려 “베들레헴 에브라다”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 예비하신 풍요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삶의 모든 고난 가운데 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이 되면, 예수님의 탄생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천사들이 목자들을 찾아와서 노래하죠.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본문도 보십시오. 5절입니다.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 가운데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 이후에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난 번 [격이 다른 삶] “복”에 대한 내용에서도 말씀드렸죠.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평강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우리 역사 평강을 만들어가는 삶,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을 누려야만 하는 줄 믿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하나님과 나, 둘로 나누어진 모습을 십자가로 하나되게 하신 예수님! 세상의 모든 갈등과 갈라짐을 하나로 만드신 장벽철폐의 삶을 사신 예수님.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어디서나 평화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살아가는 나입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했으면, 그 다음은 이제 나 자신을 바라봐야겠죠. 나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7절과 8절에 보면 “야곱의 남은 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남은 자는 구약성경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표현 중에 하나인데, 한 마디로 “구별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적으로 해석을 하면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을 뜻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니라, 십자가 붙잡고 믿음을 지켜가는 나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남은 자로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오늘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축복의 통로요, 또 하나는 영적 담대함입니다. 

  

먼저 7절 말씀입니다.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본문의 남은 자는 앞서 1절에서 나왔던 전쟁에서, 나라가 망하는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입니다. 고난과 아픔의 시절,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본 이들입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볼 때에, 저들은 다 주눅들어 있고, 위축되어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들은 도리어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이슬과 단비처럼 온 세상을 적십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8절과 9절입니다.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남은 자를 가르켜서 이번에는 “사자와 젊은 사자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사자와 젊은 사자로 표현하는 것은 믿는 자가 가져야 할 영적 담대함을 뜻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영적 담대함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에 주눅들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의 남은 자로서, 사자처럼 영적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슬과 단비처럼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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