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38) 요나의 모습에 비추어 본 요! 나!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38) 요나의 모습에 비추어 본 요! 나! <요나 4:1~117>

 “요나의 이야기”는 주일학교 아이들도 그 내용을 알고 있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요나서를 그냥 “물고기 뱃속의 요나”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겁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선지자라는 이름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 자라는 것, 신앙생활하는 성도라는 것,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 그것이 아니라, 믿음 위에 굳건히 선 나 자신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요! 나!”의 변화를 결단하며, 경험하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눈 앞의 순풍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요나는 선지자이기에, 말씀이 임하면 그대로 전하는 것이 요나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하지만 2절에 사명을 받은 요나는 3절에 곧바로 하나님의 사명을 거부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가려 합니다. 그래서 저 욥바에 갔더니, “마침,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순풍을 만난 것입니다. 

  

요나는 사마리아에서 출발합니다. 사마리아에서 니느웨까지 거리가 약 880킬로미터 정도됩니다. 그런데 요나는 아예 처음부터 반대로 갑니다. 니느웨는 북쪽인데, 남쪽에 있는 욥바로 향합니다. 요나는 니느웨와 완전 반대쪽인 다시스로 가겠다고 욥바로 내려옵니다. 다시스는 저기 스페인 남쪽의 항구도시인데, 욥바에서 뱃길로 약 4,000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습니다. 당시에 스페인하면 세계 끝이라고 생각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다시스로 가는 배”라고 하면, 정말 다시스로 향하는 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주 멀리 가는 배를 통칭하는 말로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지금 요나의 마음을 알 수 있죠. 무조건,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멀리 멀리 가겠다는 겁니다. 

  

당시에 배편이 많이 있었을까요? 배 한 번 타려면 며칠을 기다리는 것도 비일비재했을 터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요나를 어디로 이끌어갑니까? 다시스로 편안하게 인도하나요? 배는 폭풍우에 갇히게 됩니다. 요나는 제물이 되어서 바다에 던지우게 됩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갇혀 지내게 됩니다. “마침”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크게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내가 정말 열심히 예배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신앙생활 잘 감당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삶에는 어려운 일들이 생기는 겁니다. 순풍이 아니라, 역풍이 붑니다. 또 하나는 내가 신앙생활도 희미하고, 예배생활이나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관심 없고, 그냥 저냥 살아가는데, 계획했던대로 잘 풀리고, 형통하고 잘 되는 겁니다. 

  

여러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 두 가지의 경우는 언제나 나의 삶에, 내 주변에 계속 이어집니다. 열심히 주를 섬기고 있음에도 막혀지는 상황,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열려지는 상황. 지금 내 눈 앞에서 순풍이 불고 있는지, 역풍이 불고 있는지, 잔잔한 바다와 같은지, 폭풍우가 치고 있는지, 그것만 바라보고, 거기에 속으면 안됩니다.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는 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자,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길을 책임지십니다.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언제나 성령의 이끄심 가운데,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사랑의 하나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도망가려 하는 요나를 향해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하십니다. 불신앙적인 태도를 가진 요나로 하여금 실제로 체험하고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훈련시키십니다. 일련의 모든 과정들을 통해 요나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체험하게 됩니다.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서, 바다에 던져지는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삼키게 하십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내며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요나는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요나에게 임합니다. 니느웨는 삼일은 걸어야 할 큰 성읍이지만, 요나는 딱 하루동안 돌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가 바다에 던져져 죽을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으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그 속에서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죽었다가 새롭게 태어난 것과 같은 요나였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주심으로 만회의 기회를 주셨건만, 왜 그런지 아직 요나의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그럼에도 니느웨성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심판을 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읽었던 요나의 모습이 나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요나가 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하려 했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요나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적대국인 앗수르가 심판 받아 망하는 것이 더 좋은 겁니다. 요나는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신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싫어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나만의 하나님, 우리 민족만의 하나님”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체험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성을 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앉아 있는 요나에게 박넝쿨을 예비하십니다. 요나는 박넝쿨 그늘 아래에서 너무 행복해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벌레를 예비하셔서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하십니다. 이어서 8절에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십니다. 뜨거운 바람과 햇볕에 요나가 죽을 지경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죠. “야! 이 놈아! 네가 이 박넝쿨 없어졌다고 성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요나는 이를 악물고 대꾸하죠.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차근차근 요나에게 설명하십니다. “네가 수고한 것도 없고, 재배한 것도 아닌 박넝쿨 하나도 네가 그렇게 소중하다고 아꼈는데, 하물며 이 니느웨에 사는 12만명의 사람과 가축들을 내가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냐? 이게 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든 믿는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 믿지 않는 모든 사람까지도 품어안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며, 누리며, 또한 전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요! 나!”의 대답이 필요합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조의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이후에 요나는 어떤 반응을 하였을까요? 지금까지 보아온 요나의 모습처럼 또 다른 반항의 모습을 보였을까요? 아니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주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까요? 그건 우리 각자 추측할 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나의 모습 속에 비추어진 “요! 나”를 바라보는 거죠. 우리는 지금까지 요나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답답함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모습이 아주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속에 우리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을 향해 아모스가, 호세아가 그렇게 돌아오라고 선포해도 눈도 깜짝 하지 않고 죄악의 길을 걷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사명 앞에서 주의 얼굴을 피하고자 도망하는 선지자 요나. 바다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삼일을 지내며 간절히 회개의 기도를 드렸음에도, 실상은 전혀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인 요나. 이제 우리의 대답이 필요할 때입니다. “요! 나”의 대답이 필요할 때입니다. “하나님! 그렇습니다. 택함 받은 자라 자부하면서 여전히 죄의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내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여 도망하고자 했던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회개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였던,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습니다.’ 나 자신만 주장했던 요나가 바로 ‘요! 나’였습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정말 새로운 변화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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