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2)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로마서 3:19~28>
“억울하신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자!” 가수 소향씨가 한 말입니다. 13년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만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복음성가 가수로서 수많은 교회들을 다니면서 찬양과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던중 2010년에 “나는 가수다” 그리고 “복면가왕”등에 출연을 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순조롭던 모든 일에 딱 브레이크가 걸리게 됩니다. 소향은 하루 세 번씩 교회에 나가서 원망하면서 따지듯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던 중에 예수님과 부자청년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부자 청년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칭찬과 인정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소향 자신도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 내가 다 버렸다고 했는데, 다 내려놓았다고 했는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다고 했는데, 이 모든 게 결국 다 내 율법적인 의로움을 추구한 것이었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걷게 하셨는데, 그래서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은 문제 앞에 항변하곤 합니다. “하나님!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건가요? 저 그래도 할만큼 다 했잖아요.” 오늘 제목으로 삼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가수 소향씨가 부른 찬양곡의 제목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삶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나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 내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크나 큰 착각 속에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앞서 가수 소향씨의 간증을 들려드렸죠. “하나님! 제가 뭘 더 버려야 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때로 강단에서 “회개해야 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들려지면, “그래요. 회개해야지요. 아무개 성도님 회개해야 돼요.” 마치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건 착각의 죄이고, 동시에 교만의 죄이다.” 가장 위험한 교만이 어떤 교만인지 아십니까? 우리 믿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교만은 영적교만입니다. 이제 뭔가 좀 안다고 생각될 때, 뭔가 좀 한다고 여겨질 때, 그 때 교만함이 들어서기 쉽습니다. 본문 23절에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바울이 말하는 모든 사람은 로마교회 성도들만이 아닙니다. 지금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을 포함해서, 말씀 앞에 서 있는 저와 우리 모두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로마서 3장의 말씀을 보고 있는데, 1장에서 오늘 본문까지 세 장에 걸쳐서 바울이 계속 말한 주제가 딱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다.” 왜 자꾸만 죄를 들춰내고 있나요? 죄를 깨닫는 자에게 죄 사함의 길이 열려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 고백하는 것, 그건 수치가 아닙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 죄인이면서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게 정말 큰 수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죄를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의 죄를 고백하며, 날마다 끊임없이 회개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함 가운데 거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는 죄 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죄를 정결케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능력입니다. 본문을 보면, 율법의 한계와 그 역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바울은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율법이 몇 개인줄 아십니까? 613개입니다. 613개를 하나씩 보면 “이것을 지키라고 주신 계명인가? 어기라고 주신 계명인가?”싶을 정도의 말씀들도 있습니다. 결국 율법에 비추면 “나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인이오.” 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반전이 일어나죠. 21절과 22절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죄를 지은 자가 죄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으면, 내가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나의 피흘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의 댓가를 나에게서 찾으시지 않고, 예수님에게서 찾으십니다.
다만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향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이 내 죄 때문임을 인정하는 것,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나의 죄를 위함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로 하여금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정결함을 얻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향한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아주 작은 지분이라도 갖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에, 옆에서 땀이라도 닦아주신 분이 계신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실 때에, 신포도주로라도 섬기신 분이 계신가요? 아니 예수님께서 죽임 당하실 때에, 그 옆에서 잠깐 눈물이라도 흘리신 분 계신가요?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건만, 나는 예수님을 위해 해드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았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본문 24절에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가지고 있는 것과 누리는 것은 다른 겁니다. 알고 있는 것과 누리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 다 이루고 있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정말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영적인 교만 가운데 살아가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동시에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믿음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조마조마 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워하고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 가지고 나아가는 겁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는 겁니다. 믿음의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걸음이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 죄 사함의 은혜, 구원의 은혜,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마음껏,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