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4); 외유내강(外柔內剛)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4); 외유내강(外柔內剛) <에베소서 3:14~21>

오늘은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 창립 26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는 지난 1995년 4월 23일에 오클랜드 광림지교회라는 이름으로 가정에서 첫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민 초기에 뉴질랜드에 정착하신 분들이 광림교회 본당에 지교회 설립 요청 서신을 발송하였고, 이에 현재 광림교회 원로목사님이신 김선도감독님과 선교단 일행이 뉴질랜드에 방문하여, 지교회 설립을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에서 모여 김선도 감독님 설교테입으로 예배를 드렸고, 이후에는 컬리지 강당과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다가, 1996년에 현재 교회건물을 구입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26년의 세월 속에서 아무래도 이민교회다 보니까,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교회의 부흥과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던 때도 있었고, 잊혀지기 힘든 아픈 갈등과 상처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지나간 삶을 돌아볼 때에, 늘 고백하는 것은 이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삶의 주관자가 누구입니까? 나의 삶을 누가 이끌어 가십니까? 지금 나에게는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어떤 신앙의 고백이 있으신가요? 내 안에 강력한 힘,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외유내강”으로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의 기도문입니다. 14절에 이렇게 시작하죠.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에베소교인들을 위해서 바울이 중보함으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 안에 담겨진 기도의 내용이 오늘의 제목과도 같습니다. “외유내강” 외유내강이라는 말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안으로는 굳은 신념과 강직함을 가진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동시에, 에베소교인들을 향해 권면합니다. “너희들이 믿음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내면적으로는 이러한 강함이 있어야 하고, 외면적으로는 이러한 부드러움이 있어야 한다.” 

  

오늘 교회 창립 26주년을 기념하여 예배하는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이와 같은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외유내강”의 모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광림에 속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 역시 외유내강의 신앙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떤 강함과 어떤 부드러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도록 합니다. 


  

첫 번째로, 속사람의 강건함입니다. 


이 부분은 내 안의 강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16절에 말씀합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여러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단순합니다. “성령으로 속사람의 강건함을 이루어야 한다.” 내가 예수 믿는 자로서 내 안에 뜨거운 불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무슨 불인가요? 성령의 불입니다. 이 불은 나를 소멸시키는 불이 아닙니다. 내 주변을 태워버리는 불도 아닙니다.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나를 영적으로 뜨겁게 하는 영적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불입니다. 지난 주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게 바로 성령의 뜨거움인 거죠. 이를 가르켜 세상에서는 잠재력이라고도 합니다. 비전이라고도 합니다. 꿈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자는 성령의 임재를 통한 속사람의 강함이라고 말합니다. “말씀과 기도 위에 흔들림 없는 삶” 뜨거운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올라 사명 감당하는 모습, 이게 바로 성령의 충만함, 속사람의 강건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세상적인 신념만 확실해도 그 사람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적인 결단만 확고해도 그 사람이 마음 먹은 것을 완성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음만 굳게 다잡아도 뭔가 이루잖아요. 하물며 우리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실 때,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때에, 우리 안에 영적인 불이 타오를 때에,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겠습니까? 속사람의 강건함으로 흔들림 없이 걸어갑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향해 걸어갑니다.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라고 말씀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데, 내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는데, 누가 내 앞을 막아서고 나를 힘들게 합니까?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흔들림없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교회인 서울의 광림교회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 중에 하나가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크게 키우겠다.”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나라와 세계 열방을 향한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광림의 제단에 허락하신 주의 사명이 있기에 곳곳마다 교회를 세워갑니다. 용인 동백, 남양주 진접, 인천 청라에, 저기 의정부에 광림동서남북교회를 세웠고, 조금 있으면 저기 동탄에도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이전에는 저기 일산에, 부천에, 안산에, 상계동에, 계속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해외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러시아에, 몽골에, 중국에, 터키에, 일본에, 베트남에 교회를 세우고, 파키스탄과 짐바브웨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저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잠비아에 선교센터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26년 전에 세워진 우리 뉴질랜드 광림교회가 있습니다.  

  

광림교회의 모든 비전은 세상을 비추는 교회라는 슬로건 아래 오롯이 국내외 선교를 향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실 교회 본당은 모든 시설이 상당히 노후되어 있는데, 그냥 고쳐 쓰고 있습니다. 일례로 새벽예배 모이는 벧엘성전이라는 소예배실이 있는데, 거기 의자는 쌍림동에서 처음 교회를 지었을 때, 그러니까 1950년대 의자를 지금도 수리해서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거 다 바꿀 수도 있습니다. 교회 본당 40년이 넘었는데, 새로 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선교를 못해요. 그래서 그냥 고쳐가면서, 아껴가면서 국내외에 교회를 짓고, 세계선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속사람의 강건함입니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어떤 비전이 심겨져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 이러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음의 백성에게 맡겨진 사명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겉으로 뭔가를 드러내기보다, 내 내면에 뜨거운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것, 내 안에 뜨거운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내 속에, 내 마음 깊숙이 무엇이 심겨져 있는가? 나를 살아 있게 만들고, 나를 믿음으로 살아가게 만들고, 나로 하여금 흔들림 없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는 그 영적 에너지가 무엇인가? 말씀과 기도의 반석 위에 성령의 뜨거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말들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전진해야 합니다. 그 힘이 곧 “성령의 충만함을 통한 속사람의 강건함”입니다. 속사람의 강건함으로 흔들림 없이 주님 안에 거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사랑의 풍성함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겉으로 드러나야 할 부드러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졌습니다. 이를 향한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큰 사랑 받은 자로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장 귀한 계명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처럼 받은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사랑의 풍성함입니다. 

  

17절 중반절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진다.” 이것은 교회를 나무와 건물에 비유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교회를 든든한 나무처럼, 든든한 건물처럼 견고하게 세워준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의 모든 교회에 허락된 사명이 이러한 나눔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도 그렇잖아요.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디 나눌 것이 있었습니까? 내가 지금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어딜 나누고 있습니까? 그렇기에 항상 구호는 이거였죠.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그런데 지금은 정말 잘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세상을 향해 눈을 뜹니다. 예전에는 나만 보였는데, 우리만 보였는데, 저기 아프리카에 굶주린 아이들이 보이는 거예요. 저기 아프리카에 흙탕물 같은 거 마시는 이들을 위해 우물을 파주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사랑의 나눔, 사랑의 풍성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에게도 명하셨거든요. “이웃을 사랑해라.” 

  

서울 광림교회 본당에서도 어떻게든 사랑을 나누어 보고자 애를 씁니다.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실 구제라는 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은 거지만, 그렇다고 다 두 손 들고 있으면 정말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요즘 어려운 교회가 참 많습니다. 본래도 개척교회는 어려웠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정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광림교회 본당에서는 미자립 비전교회 80교회를 매달 100만원씩 지원합니다. 매 달 교회에 모여서 세미나도 열고, 교구별로 그 교회에 가서 전도도 해줍니다. 또 매월 20만원씩 돕는 교회와 단체가 100곳입니다. 남선교회에서, 여선교회에서, 또 성도님들 개인적으로 끊임없이 사랑을 나눕니다. 그리고 우리도 미약하나마 지역의 교회를 섬기고, 해외선교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남태평양지방에서 어떤 행사만 하면, 저희 교회에 연락이 와요. “뉴질랜드광림교회에서 하면 안될까요?” 우리 기획위원분들과 상의를 했더니, 모두 다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교회에서 하면 좋지요.” 지난 주에 족구경기도 하고, 한 70여분 정도 식사도 했는데, 다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뭔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것이 사랑의 나눔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사랑의 나눔이고, 이를 통해 사랑의 풍성함이 우리 안에 넘쳐나고, 우리 주변에 넘쳐흐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주의 크신 사랑 받은 자로서, 세상 속에 사랑의 풍성함을 흘려 보낼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이제 결론과도 같은 말씀이 20절과 21절에 나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모든 기도를 마친 바울의 마지막 축복의 선언이자, 권면이기도 한데,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내가 속사람의 강건함을 이루어가는 것, 내 삶을 통해서 사랑의 풍성함을 드러내는 것, 이 모든 것의 방향성은 하나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내가 속사람의 강건함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 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의 크신 사랑을 세상 가운데 나누고 전하는 것, 내 모습을 드러내면서 으쓱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는 자로서 우리 삶의 모든 방향성은 하나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러한 믿음의 방향성이 확고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잖아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내가 영적으로 바른 것을 추구하면 삶의 필요는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거예요.

  

오늘 20절 중반의 말씀도 보십시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를 구하는데, 열을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나는 백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구했더니, 내 손에 오백이고 천이고 넘쳐나게 하신다는 거예요.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를 이 땅 가운데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이민사회 속에서 지난 26년간 수많은 성도님들이 우리 교회를 거쳐가면서 기도와 헌신의 흔적을 새겨갔습니다. 수많은 성도님들의 희노애락이 우리 교회의 역사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 안에 기쁘기만 했을까요? 그 안에 감사하기만 했을까요? 그 안에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아픈 기억은 이제 다시 꺼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금 여기까지 이른 것이고, 그 까닭은 우리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이를 위해서 뉴질랜드광림교회의 지난 26년의 역사 속에 한결같이 기도의 자리를 지켜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지난 20년간, 15년간, 10년간, 5년간, 2년간, 1년간, 함께 동역함으로 예배의 자리를 지켜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모두 다 정말 귀한 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뉴질랜드광림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고 있으면, 지난 뉴질랜드광림의 26년 전통과 역사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겁니다. 더불어 1953년부터 시작된 광림교회 본당 68년의 역사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0년전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역사에 함께 동참하고 있슨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자리를 잘 지켜가는 것입니다. 또한 함께 가는 길에 서 있는 우리들간에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고 섬기고 칭찬하면서 함께 가는 겁니다. 어떻게요?  

 

 예배의 자리에, 봉사와 헌신의 자리에 열심 다해 함께 참여하는 겁니다. 주변에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혹 신앙생활 하다가 상처 받은 이들 있으면 위해서 기도해주면서 선한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무엇을 이룬다고요? 따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님들의 속사람이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뜨거움으로 강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외면적으로 보여지는 모습 속에는 하나님 주신 사랑의 풍성함이 흘러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또한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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