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71)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 <누가복음 2:41~52>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5월 첫째주는 어린이주일이고, 둘째주는 어버이주일입니다.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5월 둘째주일이 마덜스데이기도 합니다. 파덜스데이는 9월 첫째주일입니다. 지금 여러 날에 대한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진 의미입니다. 바라기는 가정의 달 5월을 지내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과 행복과 기쁨과 평안이 풍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더불어 나를 사랑으로 양육하신 부모님과 또한 내가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 자녀손들의 앞길에 주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서에 유일하게 소개된 예수님의 어린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41절에 보면, 예수님이 열 두 살 되셨을 때에 처음으로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예수님을 데리고 동행합니다. 왜 열 두 살 때에 동행했는가? 당시 유대인들은 열세 살이 되면 성인식을 갖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렸죠.
이러한 본문의 배경 속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성경은 예수님의 유년시절을 보여줍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에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눌 때에, 먼저는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 자녀손들이 내가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또한 닮아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죠. 내가 부모로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말과 행동과 삶의 모습, 모든 신앙의 걸음에 주님을 닮아가는 흔적을 새겨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자녀손들이 자연스럽게 또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닮아가야 할 예수님의 모습은 무엇인가?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성품, 도 등등 생각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 나와 내 자녀, 모든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로 세움 받고자 믿음으로 결단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것,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무리 중에 예수님이 안계신 것을 알게 된 요셉과 마리아는 길을 거슬러 돌아갑니다. 당시에 랍비들은 성전 안 뜰에 있는 회당에서 율법을 강론하곤 하였습니다. 그 현장에 열두 살의 예수님이 계신 거예요.
지금 열두 살이면 뉴질랜드에서 Year8, 인터 2학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때로 주일에 중고등부와 청년들 함께 연합예배 드릴 때가 있죠. 중고등부 학생들이 어른 예배에 함께 참석하면 힘든 게 많죠. 그런데 지금 열두 살의 예수님께서 랍비들과 율법학자들과 함께 토론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랍비들이 볼 때에 그 지혜가 전혀 부족함이 없는 거예요. 오히려 뛰어납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지혜라는 말이 여러번 나옵니다. 모든 단어가 한글로는 똑같이 “지혜”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헬라어 원어로 하면 40절과 52절의 지혜는 똑같은 말로 “소피아”입니다. 반면에 47절의 지혜는 “쉬네세이”라고 합니다.
40절과 52절의 “지혜-소피아”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지식과 지혜를 포함한 말입니다. 공부를 해서 알게 되는 지식, 경험이나 삶을 통해 배워가는 지혜, 이 모든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반면에 47절의 “지혜-쉬네세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지혜를 뜻합니다. 영적인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체험하는 그런 지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지식만 가지고 해석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리 지식이 많고, 박사학위가 있어도 하나님의 지혜가 없으면 말씀에 담긴 은혜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 주시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지혜, 지식, 연륜, 경험,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그 안에 담긴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을 읽을 때에, 강단에서 선포되는 주의 말씀을 받을 때에, 매 순간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나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자녀손들에게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주신 지혜를 가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나,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 자녀손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됨의 확신과 권세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아서 예루살렘성전까지 돌아와서 말하죠.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게 무슨 뜻인가요? 예수님 스스로 밝히시는 거죠.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누가복음 1장 32절에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누구의 아들이요? “지극히 높으신 이, 즉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합니다. 정결예식 때에 성전에서 시므온과 안나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원의 주로 이 땅 가운데 오셨음을 들었습니다. 그랬음에도 요셉과 마리아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내 아들로 키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만인가요? 그럼 여러분들이 양육하고 있는 아들은, 딸은, 손주들은 누구의 자녀입니까? 역시 하나님의 자녀죠. 내 자녀손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을 내 자녀로만 생각하며 살때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자녀의 진학과 진로에 있어서 부모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녀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51절 마지막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죠.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무엇을 마음에 두었다는 건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두었다는 겁니다. 그때 깨닫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두었다는 거예요. 우리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내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말이죠. 나아가 이것은 내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내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도, 내 자녀손들도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질 때에, 그속에서는 우리는 권세 중에 가장 큰 권세, 자녀됨의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내 삶을, 내 자녀손들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드리시기 바랍니다. 참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사랑입니다.
52절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우리 자녀손들의 모습이 이와 같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는 사랑이요, 또 하나는 받는 사랑입니다. 그럼 여기 52절에 나와 있는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받는 사랑이죠.
유치환 시인은 ‘행복’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행복하나니라.” 그렇다고 사랑은 주는 것만 위대하고, 받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일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사실 어렵기로 따지면 사랑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다고요?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사랑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수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낮춰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또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저들의 아픔을 만지시고, 저들의 질병을 고쳐주셨기에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습니다.
앞서 사랑을 받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고 말씀드렸죠. 사실 사랑을 주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자꾸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예전에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 그런 사람에게까지 사랑을 베푸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신가요?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향해 모욕하고, 침을 뱉고, 때리고, 채찍질하는 군병들을 향해서도, 자신의 손바닥과 발바닥에 못을 박아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향해서도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에게, 또한 사람에게 사랑 받으신 것은 그냥 되어진 일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는 일이 힘들다고 말씀드렸죠. 왜 힘든가요? 사랑을 받을만한 모습이 나에게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 주님 앞에 헌신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고, 또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의 사랑을 전하고 베풀고 나누고 섬김을 통해, 사람들에게도 사랑 받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뉴질랜드광림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 가문에,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는 부모님과 자녀손들과 일가친척 형제자매 모두에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로서의 사랑과 행복이 날마다 더욱 더 풍성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