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뉴스

스무 해 생일 맞은 서양 식당 애너밸스(Annabelles)를 찾아

일요시사 0 505 0 0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다짐이 현실이 되었네요

12년째 뉴질랜드 최고의 소고기·양고기 전문 식당으로 뽑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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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를 한결같이 세인트 헬리어스 애너벨스 양식당을 지켜온 정미영 사장

꼭 성공하겠다는 말을 지키게 되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에서 가장 멋진 길, 타마키 드라이브(Tamaki Drive). 흔히들 미션 베이(Mission Bay)로 가는 길이라고도 하는 이 길에서는 차와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눈앞에는 잡힐 듯 말 듯한 랑기토토 섬이 보이고,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요트들이 파도 소리에 맞춰 왈츠를 추고 있다. “평화, 평화로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첫사랑을 닮은 인어공주라도 나올 것 같은 바다 풍경에 홀려 20여 분을 달리다 보면 타마키 드라이브 끝, 세인트 헬리어스(St. Heliers)에 이른다. 오클랜드의 부촌 가운데 한 곳이다. 바닷가 앞에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그 중 애너벨스(Annabelles) 식당에 들어갔다. 스무 해 생일을 지면으로 축하해 주기 위해서다.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영어를 잘 못해 처음에 애를 많이 먹었지요. 다행히 지역 주민들의 격려와 직원들의 도움으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됐네요. 그동안 저희 식당을 찾아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1998 10 1일 애너밸스 식당 인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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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사장과 아들 조상현 씨. 아들이 그 뒤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1998 10 1() 애너벨스를 인수해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의 긴 시간을 음식 만들기 기쁨으로 지켜온 정미영 사장의 말이다.

애너벨스.’

이상하게 가게 이름이 낮 설지 않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가 쓴 시, ‘애너벨 리’(Annabel Lee)가 떠올랐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였다.

옛날 옛적 바닷가 왕국에…”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줄줄 외우기도 했다. 외국 시 가운데 대표적인 사랑 시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 사장은 상호에 관한 얘기부터 꺼냈다.

제가 단발머리 소녀일 때 애너벨 리라는 시를 좋아했어요. 어느 날, 세인트 헬리어스를 걷다가 비슷한 이름의 식당을 보았어요. 바로 지금 제가 운영하는 애너벨스라는 식당이지요. ‘언젠가 이 식당을 내가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되었어요.”

애너벨스는 원래 버거(burger) 중심으로 장사를 하던 서양식 식당이었다. 독일 사람이 자신의 딸 이름을 따서 가게 이름을 지었다.

정 사장은 1993 3월 오클랜드로 왔다. 목적은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였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어요. 매시대학교 박사를 가슴에 품고 유니텍에서 영어와 원예 과정을 공부했지만 생각만큼 공부가 쉽지 않았어요. 결국 꿈을 포기하고 말았지요. 2년을 생각하고 왔는데, 벌써 25년이 훌쩍 넘었네요.”

 

아시아 사람(한국 사람)이라고 무시당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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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에 있는 작은 바(bar)에서 직원들과 함께.


아시아 사람(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서양 식당.’

얼핏 생각해도 양장에 버선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 어색함을 정 사장은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처음에는 무시(?)를 많이 당했지요. 제가 아시아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식당 문을 나서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절대 좌절하지 않겠다,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앞바다에 가서 울기도 숱하게 했고요.”

정 사장의 진심과 열정은 얼마 안 있어 키위 손님(주로 백인)들에게 통했다. 그는 AUT에서 서양 요리를 2년간 공부하며, 양식 요리 정복에 나섰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머릿속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생각으로만 가득 찼다.

4년 뒤 정 사장은 옆 가게까지 넘겨받았다. 애너벨스의 좌석이 25개에서 80개로 늘어났다. 정 사장의 자신감도 두세 배나 올랐다. 지역 주민은 물론 음식 맛 좀 평가할 줄 안다는 식도락가들이 줄지어 식당을 찾았다.

2006년부터 지난 해까지 무려 12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뉴질랜드 비프 앤드 램 협회’(NZ Beef & Lamb)가 주는 상을 받았다. ‘뉴질랜드 최고의 소고기와 양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라는 월계관을 씌워준 것이다.

저도 잘 몰랐어요. 손님으로 와서 음식 맛을 보고 품평을 하는 심사위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식당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애너벨스가 소고기와 양고기 요리 못지않게 자랑스럽게 내놓는 요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시푸드 차우더’(Seafood Chowder). 쉽게 말해 해물 수프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가 애너벨스를 인수한 뒤부터 20년간 한 번도 요리법을 바꾸지 않은 음식이에요. 많은 손님이 즐겨 찾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 맛을 한 번 보면 누구든 쉽게 잊을 수 없거든요.”

                                             

서른 가지 요리법 담은 요리책 펴낼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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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비프 앤드 램 협회에서 받은 상패들.


정 사장은 조만간 요리책을 한 권 낼 예정이다. 그동안 양식당을 꾸려나가면서 키위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파악했다. 그 결과물이 서른 가지의 요리법을 담은 책으로 나온다. 영어와 한글, 두 언어로 된 책을 펴낼 계획이다.

스무 해를 한 자리에서 꿋꿋이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정 사장이 서류 뭉치를 내게 보여 주었다. 그 안에는 지난 20년 동안의 애너벨스 역사가 담겨 있었다. 지역 신문은 물론 일간지에도 애너벨스가 소개될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지역 사회의 도움 요청을 절대 외면하지 않았어요. 이 지역에서 먹고 사니까 저도 나름대로 지역 사회를 위해 이바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하니까요.”

정 사장은 지역의 유지다. 유치원, 초등학교, 스포츠팀 등 지역 사회 곳곳에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어쩌면 그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져 오늘까지 이어져 온 건지도 모른다. 손님의 90%가 단골로 이루어진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한국 사람으로서 서양 식당을 운영하는 정 사장의 마음은 어떨까?

서양 요리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음식은 정직하죠. 좋은 재료를 써서 정성껏 만들면 손님들이 인정해 주지요. 주방의 맛이 늘 한결같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애너벨스는 오클랜드가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의 명소다. 존 키나 빌 잉글리시 같은 전 총리는 물론 장관들도 찾는 곳이다. ‘뉴질랜드 최고의 소고기와 양고기 전문 식당이라는 명성을 공짜로 얻은 게 아니다.

 

사장보다 마스터 셰프호칭이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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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애너벨스에는 풀타임 요리사 7명을 포함해 모두 17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정 사장의 또 다른 직책은 책임 요리사’(Master Chef). 그는 사장이라는 호칭보다는 마스터 셰프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운영자보다 요리사로 인정받고 싶어서다.

애너벨스가 손님의 입맛을 유혹한 지 햇수로 20, 날수로 따지니까 무려 7,300일에 이른다. 한 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업을 해왔다. 거기에 점심과 저녁 두 끼를 곱하면 14,600끼나 된다. 하루 평균 손님을 100명으로만 잡아도 1,460,000명에 이르는 놀라운 숫자다. 오클랜드 인구에 맞먹는다.

애너벨스는 곧 마운트 이든(Mt. Eden)에 같은 이름으로 식당을 하나 더 낼 계획이다. 현재 공사 중에 있다. 20년의 역사가 오클랜드의 고풍스러운 마을에서 또 한 번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40대 초반 서양 음식이라는 새 세계에 도전한 정 사장은 그 자리를 아들 조상현 씨에게 물려줄 계획을 품고 있다. 열 살 때부터 엄마의 입(통역)과 어깨(든든한 지원군)가 되어준 아들은 운동(골프, 요트 등)에 능하고, 대인 관계(미국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가 원만하다. 게다가 요리 실력(AUT 요리학과 다님)까지 갖추고 있어 어머니의 뒤를 잇는 데 모자람이 없다.

어느덧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끝났다. 바쁜 정 사장을 더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오후의 끝이 다가오면서 손님들이 하나둘 빈 자리를 채웠다. 랑기토토 섬에도 빨간빛이 감돌았다.

제가 만든 시푸드 차우더는 드시고 가셔야지요?”

정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10여 분 뒤 빵 두 조각과 함께 맛있게 생긴 차우더가 나왔다. 잘게 썬 홍합과 크림 국물이 ‘예술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애너벨스의 명성을 조금이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손님 대상으로 커피나 포도주 무료 제공


, 애너벨스는 개업 20주년을 기념해 한국 손님을 대상으로 소박한 행사를 한다. 주 음식(Main Dish)을 시키면 포도주 한 잔이나 커피 혹은 후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혹시 정미영 사장이나 아들 조상현 씨를 보게 되면 “20년 동안 양식당을 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는 말을 건네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또 모든 한국 사람이 해주었으면 하는 말이기도 하다.

글과 사진_프리랜서 박성기

 

전화: 09) 575 5239

주소: 409-411 Tamaki Drive, St. Heliers

홈페이지www.annabelles.c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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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벨 리

에드거 앨런 포

 

  

아주 오래 전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알지도 모를 한 소녀가 살았지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

나를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 밖엔

소녀는 다른 아무 생각 없이 살았네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그것이 이유였지

오래 전

구름으로부터 불어 온 바람이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히 식게 했네

그래서 명문가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 갔네

바닷가 왕국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천상에서도 반쯤 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날 시기했던 탓

그렇지 그것이 이유였지

(바닷가 그 왕국 사람이 모두 알 듯)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그녀를 싸늘하게 하고

나의 애너벨 리를 숨지게 한 것은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그보다 강한 것

우리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래서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버리지 못했네

 

달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지 않으면 비치지 않네

별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네

그래서 나는 밤이 지새도록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만 있네

바닷가 그 곳 그녀의 무덤에서

 

파도소리 들리는 그녀의 무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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