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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9편] Let it be!

일요시사 0 687 0 0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연에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어. 

그런저런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엮어 1,000매 분량의 장편 소설을 이제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야. 

80 %가량은 내 노력에 의존해 쌓아 올렸는데. 나머지 20%가 관건이라 생각이 들었지. 

아무리 해도 그 부분이 항시 비어있는 거야. 그러다 작년, 고국 방문길에 우연히 이곳에 들렀지. 

일말의 영감 같은 걸 느꼈어. 

인도로 돌아가 글을 가다듬고 퇴고에 퇴고를 셀 수 없이 했지. 그래도 마지막 2%는 내 몫이 아닌 것 같았어. 

벌써 이곳에서 두 달을 지내며 자연과 우주와 나만의 시간을 가져왔어. 

‘토지’, 대지 기운에 힘입어 얼추 마무리 단계가 됐어.” 

 

 

“와~ 뜻깊은 때에 박경리 토지 문화관에서 만나다니. V, 정말 감개무량이야.”

 

“Q, 대학 시절 축제에 온 느낌이야. 우리 연극 보러 대학마다 잘 다녔지.”

 

V에게 올가을은 은혜의 시간이다. 속초에 계신 친정어머니, 편찮으셔서 훌쩍 날아온 고국 방문길. 바스락대는 가을 잎처럼 야윈 어머니. 비록 거동은 잘 못해도 딸을 봐서인지 총기는 밝으셨다. 방문 기간 대부분을 어머니와 함께했다. 뉴질랜드 귀국 전에 가을 문학제를 보고 가게 되다니. 그것도 꼭 한번 들르고 싶었던 토지 문화관에 발을 들여놓은 것. 뿐이랴. 토지 문학관에 입주하며 글 쓰는 친구를 만나다니. 

 

인도에 가서 십 년째 사는 Q. 삼 개월 기간으로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소설책을 한 권 곧 탈고할 즈음이란다. 작년에 이곳에 들렀다가 문화관 입주 신청을 해두었는데, 외국 교포라 우선권을 줘 입주 허용 연락이 왔단다. 퇴고를 앞둔 소설 마무리를 위해 남편이 휴가를 만들어 줬다고. V는 뉴질랜드에서 강산을 바꾸며, 취미로 그림을 그려오고 있다. 지구 어디 있어도 인터넷과 이메일, 카톡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돼서 좋다. 특히 외국 나와 사는 친구들은 이민자의 동질감을 느껴 사이가 더 각별하다.

 

가로수 길에 금빛 주단을 깔아 놓은 듯한 노란 은행잎이 나풀댄다. 문학제 초대장이 가을바람에 실려 다가온다. ‘2018 원주 박경리 문학제’ 현수막이 토지 문화관 입구에서 반갑게 반긴다. 박경리 소설가의 마무리 삶의 터전, 원주는 온통 토지 박경리 생애를 기리는 문화 공간으로 잘 단장되어있다. 사람은 가도 그 정신과 얼은 후세에도 길이 남는 세상이다. Q도 V도 인생의 가을 초입에 서서 나름의 인생길을 되돌아보는 시간.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가? 한층 상기된 얼굴들이 학창시절 꿈을 불사른다. Q가 토지 문화관 주인처럼 V에게 전시관 곳곳을 소개해준다.

 

“Q, 이런 곳에서 글을 쓰면 새로운 영감이 샘솟듯 하겠어. 마치 옛 시골 친정에 와서 어머니의 온정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V 말대로 그 숨결을 순간순간 느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아. 바쁜 일에서 떠나 가끔은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깨닫게 됐어.”

 

‘생존하는 것, 이상의 진실은 없다. 그것만이 오로지 하나, 하나의 진실이다.’

 

박경리 소설가 삶의 고백. 혼을 새겨놓은 액자 앞에서 우뚝 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길 머무는 대목이다. 작가는 떠나도 살아있는 말과 글. 박경리 소설가, 생전의 몸부림이 글로 승화되어 여기저기 액자화되어 걸려있다. ‘박경리 문학 공원’에도 ‘토지 문화관’에도 얼이 숨 쉬고 흐른다. 

 

‘소설이란 집 짓는 것과는 다르다. 소설이란 삶과 생명의 문제이다. 삶이 지속하는 한 추구해야 할 무엇이다.’

 

그래서였을까. 집 한 채 뚝딱 짓고 끝난 게 아니었으니. 토지 집필 기간이 26년이라. 600여 명의 등장인물. 조선 고종 때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21권의 대하소설의 탄생. 4만여 장의 원고지에 피를 토하는 육필의 결정체. 살아생전 추구해야 할 그 무엇으로 세상에 우뚝 섰다.

 

토지 문화관에서 바라다보이는 전망, 들판을 넘어 뒤에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평화가 내려앉은 터전이다. 가을 산야가 울긋불긋하다. Q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V에겐 다시없는 힐링 시간이다. 열다섯 명의 입주 작가들과 나눔도 특별하단다. 내가 갖지 않은 관심의 지평과 영역을 넓히고 깊이를 심화시키니 글 쓰는 이들에겐 긴요할 터. Q의 살아온 이력을 들으며 참 대단한 친구라고 V가 치켜세운다.

 

Q의 유목민적 방랑 기질은 대학 졸업 후, 여러 나라 배낭여행으로 점철되었다. 유독 Q의 기억에 남는 인도를 못 잊어 아예 인도 땅에 뿌리를 내렸다. 남편의 무역 사업도 인도에 자리 잡고 급성장했다. Q에게는 큰 버팀대가 되었다. 하나 있는 딸은 학업을 마치고 영국에 일찍 자리를 굳혔다. 인도의 문화와 생활에 푹 빠진 아내의 취향에 남편도 서서히 수긍하게 되었다. 

 

“V, 인도의 M 아쉬람(수행자들이 생활과 수련을 하는 공간)에 가서 수행한 적이 있어. 초월 명상의 대가가 있는 곳인데, 사람들을 끄는 묘한 기운이 있었지. 비틀즈가 치솟던 명성에서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찾아가 요가 지도를 받았던 곳이래. 나 역시도 한국, 인도에 살며 남편 사업에 파트너로 열심히 일해왔어. 딸이 품을 떠나고, 남편 사업도 어느 정도 자리를 굳힐 즈음, 큰 병이 내게 덮쳤지. 갱년기 우울증이었어. 돈이나 물질로 해결할 수 없는 병이었지. 좋다는 소리 듣고 최종 향한 곳이 M 아쉬람이었어. 일정 기간의 수련을 쌓으며 정서적 허기가 회복되었어. 

 

비틀즈의 노래 가사가 드디어 가슴에 들어오더라고. 동병상련이라고. 겪어 본 사람만이 그 속을 알지.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연에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어. 그런 저런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엮어 1,000매 분량의 장편 소설을 이제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야. 80 %가량은 내 노력에 의존해 쌓아 올렸는데. 나머지 20%가 관건이라 생각이 들었지. 아무리 해도 그 부분이 항시 비어있는 거야. 그러다 작년, 고국 방문길에 우연히 이곳에 들렀지. 일말의 영감 같은 걸 느꼈어. 인도로 돌아가 글을 가다듬고 퇴고에 퇴고를 셀 수 없이 했지. 그래도 마지막 2%는 내 몫이 아닌 것 같았어. 그러던 차에 토지 문화관에서 입주 허용 통보서를 받은 거야. 벌써 이곳에서 두 달을 지내며 자연과 우주와 나만의 시간을 가져왔어. ‘토지’, 대지 기운에 힘입어 얼추 마무리 단계가 됐어.”

 

“Q! 인생 후반전을 잘 다지고 있어 부러워. 사람은 누구나 활화산 같은 열정과 북극 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 나아가는 집념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 같아.”

 

“인도 아쉬람에서 본격적인 요가 수행전, 카르마 요가를 배웠거든. 내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내 주변에 보이는 환경을 먼저 청소하는 것이지. 우리 인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라고. 많은 것들에 대한 짐을 내려놓고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같아.”

 

“와~ 요가 명상, 친구 구루로부터 수행을 받는 느낌이네. “

 

Q가 스마트폰에서 비틀즈의 Let it be를 틀어준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멜로디인가.

 

‘그냥 있는 그대로 내둬요. 순리에 맡겨요. 내가 근심에 처했을 때, 어머니께서 다가와 말씀해 주셨어요. 순리에 맡기렴.’

 

“Q,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나 명곡은 언제나 인상적이야.”

 

“V, 그럼. 단순함 속에 진리가 있어. 잊히지 않고.”

 

Q와 V가 토지 문화관 바깥을 쭉 둘러보며 천천히 발길을 멎는다. 빨간 단풍이 햇볕에 찬란히 불타오르는 곳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두 얼굴을 맞대고 옛날 시절로 되돌아간다.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에 머무는 시간이 아릿하다. 문화관에 전시된 옛 육필 원고지와 노트, 돋보기, 낡은 국어사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옛날에는 원고지에 써서 원고 뭉치를 신문사에 보냈을 텐데. 낮에는 뙤약볕 아래 수건 쓰고 씨뿌리고 밭매고. 아픈 허리 펴보다가 하늘 보고. 물 주전자 입에 대고 꿀꺽꿀꺽 들이키고. 밤에는 희미한 백열등 아래 밥상 앞에서 돋보기 안경 올리며 한자씩 꾹꾹 눌러가며 원고지를 채웠을 테고.”

 

“최근 들어가며 문명이라는 도깨비가 나타나 모든 걸 송두리째 바꿔 놓아버렸지.”

 

마지막 유언이라고 알려진 문구는 나이 들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긴 울림을 준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굳이 이야기 안 해도 Q와 V의 눈길과 가슴은 박경리 소설가의 문장 속에 녹아지고 있다. 마지막에 Q가 읊조리는 말에 V가 화들짝 놀란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봐. 하나는 박경리 소설 ‘토지’를 읽어본 사람이고. 또 하나는 아직 안 읽어본 사람이고. 그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 같아.”

 

V가 쑥스러워하며 깊은 공감을 한다. 꼭 ‘토지’를 올해 안에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V가 노트를 꺼내 연필로 토지 문화관 밖의 박경리 소설가의 생가를 빠른 손놀림으로 스케치한다. 날렵한 화가 V의 솜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Q가 아~ 하~ 하고 탄성을 지른다. 두 가슴속에 토지는 삶의 터전이자 생활의 활력소로 남을 것 같다. 노란 단풍잎이 바람에 날려 Q와 V의 머리에 떨어진다.* 

 

 

LYNN: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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