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21편] Tom & Judy

교민뉴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21편] Tom & Judy

일요시사 0 1141 0 0

그동안 못 해본 일,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여유롭게 사는 일. 자신을 챙기는 시간으로 살아보는 일.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지내는 일. 사는 동안 일정한 노동, 재미 붙이는 일은 계속하는 것. ‘빨간 머리 앤’ 과 ‘어린 왕자’. ‘윌든’, 소로우가 윌든 호숫가에 통나무 집 짓고 생활했던 경험. ‘그리스인 조르바’의 자유함을 찾아서. Tom과 Judy는 함께 떠나와 정착했다. 

 

 

“애들 쓰시군요. 두 노부부가 정원 단장하는데 손발이 척척 잘 맞아요. Tom & Judy!”

 

“어서 와요. John. 그러잖아도 도움받고 싶은 게 있었는데, 빌더였던 John은 금방 할 거요. 여기 집 둘레 보도블록을 까는 중인데, 수평이 잘 안 맞아요.”

 

Tom은 집 테두리 잔디를 걷어내고, 색깔 고운 황토색 보도블록을 까는 중이었다. 집을 둘러싼 잔디가 너무 무성했다. 먼저 잔디를 걷어냈다. 잔디를 파낸 자리에 작은 자갈을 깔고 위에 모래도 깔았다. 그 위에 보도블록을 깔려는데 울퉁불퉁했다. 몇 장 놓인 보도블록을 John이 들치며 살펴봤다. 수평 고르기와 바닥 다지기가 제대로 안 된 상태를 지적해줬다. John이 옛날 실력을 발휘할 마음으로 집에 가서 연장을 몇 개 가져왔다. 

 

“John, 고마워요. 옆집에 사니 참 좋아요. 쉽게 도움도 받고 가까이 지낼 수 있어서요. 오클랜드에서 이곳, 토코로아에 이사 와서 아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우리도 Tom 가족이 우리 옆집에 살아 친구처럼 든든해요. 나이 들어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도 복이지 뭐요. 잉글랜드 태생인 우리, 서울 출신인 당신들. 우리는 서양사람, 그쪽은 동양사람이라 동서양의 만남 아니겠소?”

 

John이 묵직한 다지기 도구로 파헤친 땅을 고르게 다졌다. 수평기로 재가며 땅을 편평하게 맞췄다. 모서리 땅부터 보도블록을 깔아 나갔다. 고무망치로 톡톡 치며 틈새를 줄여갔다. John이 무릎을 꿇고 한참을 작업에 몰두했다. 2미터 폭으로 5미터쯤 깔았을까. 깔아놓은 보도블록이 보기에도 깔끔하니 좋았다. John의 이마에 땀방울이 어렸다. 옆에서 보조하던 Tom이 이어서 작업을 직접 했다. 그런대로 John이 한 것과 얼추 비슷했다. 

 

“John! 샛거리 먹고 해요. 한국식으로 부침개를 부쳤어요. 코리언 피자라고 하면 될 거요.”

 

Judy가 쉬는 시간에 먹을 것을 차려 나왔다. 감주를 한 사발 따라 John과 Tom에게 건넸다. 데크 테이블에 앉아 셋이서 새참을 먹는 분위기가 코스모스처럼 한들거렸다. John도 오 십 줄에 아내를 저세상에 보내고 십 년 뒤, 지금의 아내와 재혼한 사이였다.

 

“John, 지난번에 우리 부부 이야기한 것 기억나지요? 나와 Judy도 당신 부부와 같은 입장이라 동료의식을 느껴요. 서로가 배우자를 잃고서 십여 년 이상을 혼자 살다 인연을 만나 새로 시작한 늘그막 인생길. John이 우리보다 선배로서 여러 일을 먼저 겪었을 테니 우리에게 좋은 조언 주면 큰 도움 되겠지요.”

 

“Tom & Judy. 당신 부부 이름이 무척 낯익은 듯해서 친근감도 들고, 실제 사는 모습도 소탈해 보여서 편안하고 좋아요. 특히나 우리 옆집을 사서 들어와 함께 사니 더 반갑기도 해요. 아내 Hellen도 자주 그런 말을 했어요.”

 

‘Tom & Judy’라. 서양 사람들도 그 이름에 향수를 느끼는가. Tom이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아내 Judy도 고개를 숙이며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 이름을 지은 사연이 풋풋한 소년 소녀 같은 소꿉장난 같아서였을까. 그때, 집 앞에 차 한 대가 지나다 멈췄다. 차에서 Hellen이 내렸다. 친구가 드라이브하고 집에 데려다주는 중이었다. Hellen까지 합세하니 네 사람의 이야기 식탁은 한층 정겨웠다. 음식도 더 가져다 함께 했다. 유독 Hellen이 감주 맛에 푹 빠진 듯했다. 달콤하고 감미롭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Judy가 자신들 부부의 이름을 Tom & Judy라 지은 사연을 달달하게 이야기했다.

 

“둘이 만나 호칭을 어떻게 부를까 많이 생각해 봤어요. 한국말로 부부 사이에 부르는 말이 있어요. 여보, 자기, 임자, 당신. 이 말들은 더 못할 것 같았어요. 전에 함께한 배우자에게 써왔던 이름이었거든요. 다시 이 이름들을 부르면 돌아간 배우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 것 같았어요. 둘 다 공감했어요. 여기는 한국도 아닌 뉴질랜드잖아요. 그래서 서구식으로 짓자고 한 거예요. 어린 시절 중학교 영어 교과서 책 이름, ‘Tom & Judy’로 정했어요. 그때의 소꿉 시절, 동화 속 주인공으로 살아보고 싶어서요.”

 

“호호호. ‘Tom & Judy’! 당신들은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 같아요. 먼저 돌아가신 배우자에 대한 배려도 있고. 멋진 친구들인걸요. 덩달아 우리도 그 친구가 되니 앞으로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요.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며 사는 일, 고마운 일이지요.”

 

Judy의 말에 Hellen이 맞장구를 쳤다. 집 앞뜰 포후투카와 나무 위에 새들이 와서 지저귀었다. 포후투카와, 크리스마스트리에도 빨간 꽃들이 머잖아 만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은 하얀색 꽃이었지만 순수한 자태가 더욱 고와 보였다. 넷이서 음식을 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평생을 함께 살다 한쪽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 오랜 세월 혼자 살았던 지난날.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난 새 배우자. 서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늙어가는 나이에 남은 인생의 말동무로 살아가는 일. John & Hellen 칠십에 예순다섯 살. 지금 그대로도 좋아 보였다. 편안하고 온화한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싶었다. Tom & Judy는 예순다섯에 예순 나이. 선 후배 부부는 우선 마음이 통해서 가까이하는데 편했다. 

 

인생사,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여정이었다. Tom과 Judy. 육십갑자를 보내며 지내온 세월이 아늑한 추억이 되었다. 질풍노도의 세월 속에 쓰러지고 부러지고 나둥그러져 남은 상처들. 어디 사람에게만 있는 일인가. 자세히 보면 주변에는 상처 입은 만물들이 즐비했다. 토코로아가 나무 목재 제지업의 고장이라 집 주변 산책을 하다가도 Tom과 Judy는 발길을 자주 멈췄다. 예고 없이 불어닥친 태풍에 쓰러진 수백 년 된 나무뿌리 둥치. 거기서 싹이 돋고 다시 하늘을 덮는 나무. 양쪽 물갈퀴가 잘려 스카이 콩콩처럼 퐁퐁 뛰며 걷는 갈매기. 모질고도 질긴 생명력이 얽히고설켜 한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헬 수 없는 저마다의 애환이 옹이로 박혀있었다. 옹이가 살아갈 힘을 지탱시켜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옹이가 깊이 박혀 있는 사람으로 살기엔 세상과 주변이 말할 수 없이 버겁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추억으로 남은 지금 여기. 오히려 세상의 어지간한 외풍과 따가운 시선도 쉽게 잠재울 수 있게 됐다. 

 

오클랜드에서 남쪽으로 세시간 남짓 거리. Tom이 토코로아를 새로운 삶의 정착지로 삼은 것은 우연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호주에 다녀오던 중 비행기 안에서 토코로아 현지인을 만났던 일. 우연과 계기는 급물살을 타는 법. 이리저리 알아보고 답사한 터에 결단을 내렸다. Judy와 함께할 보금자리로 자리를 굳혔다. 아이들은 독립해서 저마다의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으니 자식 걱정은 없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셔서 부모님 염려도 가셨다. 이제부턴 자신들의 건강을 지키고 의미 있고 재미난 생을 사는 것. Judy도 흔쾌히 동의했다. 

 

평균 남녀 수명이 85세에서 90세라는 시대. 현대의 과학 문명 속 혜택에 힘입어 산다 치면 20년은 더 보장된 삶 아닌가. 그렇다면 그동안 못 해본 일,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여유롭게 사는 일. 자신을 챙기는 시간으로 살아보는 일.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지내는 일. 사는 동안 일정한 노동, 재미 붙이는 일은 계속하는 것.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많이 해보는 일. 중학교 영어 배울 때, 서양 세상을 동경하며 읽었던 만화책 ‘빨간 머리 앤’ 과 ‘어린 왕자’. 나이 들어 빠져들었던 ‘윌든’, 소로우가 윌든 호숫가에 통나무 집 짓고 생활했던 경험. ‘그리스인 조르바’의 자유함을 찾아서. Tom과 Judy는 함께 떠나와 정착했다.

 

현실적인 여건도 중요했다. 외국 나와서 사는데, 나이 들어 외딴곳 산속에서 사는 삶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문명의 도움도 받을 만한 곳이면서 조용하고 주변이 아름다운 곳. 집값이 비싸지 않고 집에 얽매지 않을 곳. 집터가 여유 있고 앞이 탁 트인 방,세 개짜리의 단층집. 오래된 집이어도 내 손으로 수리가 가능한 집. 소일거리가 있는 곳. 1번 모터웨이에서 가까운 곳. 오클랜드에서 세시간 이내 거리. 인근에 호수와 온천이 있는 곳. 9홀짜리라도 작은 동네 작은 골프장이 있는 곳. 집 근처에 마을 도서관이 있고 작은 교회가 있는 곳. 여기까지만 생각하자고 했다. ‘그런 곳이면 내가 살겠다!’ 더 요구하면 하늘에서 호통 소리가 떨어질 것 같았다. 바라는 큰 것 하나를 얻기 위해서 다소 불편한 열 가지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하늘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Tom이 즉석에서 대답했다. ‘받들겠습니다!’

 

그때였다. 강아지 ‘로아’가 앞뜰로 쏜살같이 내달음쳤다. 들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집으로 들어오려다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재미있는 광경을 쳐다보던 새들이 포후투카와 나무에서 푸드덕 날갯짓하며 노래를 불렀다. Tom ^^ Judy^^ Roa^^*

 

LYNN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