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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5) 그리스도의 마음 <빌립보서 2:1-11>

일요시사 0 40 0 0

요즈음 신앙의 모습도 예전과는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주일에 교회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인터넷으로 편하게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채널 돌려가면서 마음에 드는 설교를 듣기도 합니다. 때로는 예배를,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라, 문화생활 컨텐츠 중에 하나로 여기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연극, 영화, 뮤지컬, 그리고 예배.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앞으로 더 달라지겠죠. 그럼에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시대가 달라지기 때문에 더 힘 있게 붙잡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정신”입니다. 어떤 정신인가?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안에 품는 정신”입니다. 이것만큼은 흔들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품고 살아갑니다. 내가 붙잡고 살아가는 정신이 있습니다. 더불어 내가 내 마음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방향성과 목적, 삶의 자세가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품고 있는지요? 

  오늘 사도바울은 담담하게 우리에게 선언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에, 이 격변하는 시대를 넘어서는 믿음의 걸음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케 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성취케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생명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럼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인가? 함께 은혜를 나누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의 마음은 완전히 낮아지는 마음입니다. 

 

겸손의 모습이죠. 오늘 본문에 비춰 예수님의 모습을 볼까요? 6절에 말씀하죠.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같은 분입니다. 하지만 6절 후반부에 또 이렇게 말씀하죠.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인데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7절과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디까지 내려오셨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심으로 십자가에 죽는 데까지 내려오셨음을 말씀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의 자리입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들 중에서도 종 된 자리입니다. 그리고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오십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을 당하는, 죄인 중에서도 가장 치욕스러운 십자가형을 당하는 자리까지 내려오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완전히 낮아지는 자리로 향했고, 실제로 가장 낮은 자리까지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경건의 폭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심히 새벽예배를 하는 성도가 그렇지 못한 이들을 향해 “너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새벽예배도 하지 않느냐?” 때로 금식기도를 하는 성도가 그렇지 못한 이들을 향해 “너는 예수 믿는 자라고 하면서 금식기도도 하지 않냐?”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는 성도가 그렇지 못한 이들을 향해 “너는 예수님의 사랑 받은 자로서 이 정도 헌신도 하지 않냐?”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경건의 폭력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신앙이 좋고, 기도 많이 하고, 더 헌신하는 자가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 역시 말씀하죠. “스스로를 쳐서 복종케 한다.” 그렇게 충성하고 헌신하고 전도에 생명을 걸었던 바울이 자신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교만함을 이기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한결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3절에도 말씀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더 믿음이 깊어지고, 더 신앙이 돈독해질수록 겸손의 모습을 잃지 않고자 애쓰고 수고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습도 보십시오.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의 자리를 내려놓으셨습니다. 변화산의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무리들로부터 오히려 몸을 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의 낮아지신 마음, 겸손의 마음입니다.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안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김으로, 겸손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닮아 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마음은 끝까지 따르는 마음입니다. 

 

순종의 모습이죠. 예수님은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 끝이 어디였는가? 8절에 말씀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그 자리까지, 모든 사람이 다 거부하는 그 자리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에 단순히 순종이라고 하지 않고, 복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복종이라는 것은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예 다른 길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끝까지 가는 겁니다.   그런 말이 있죠. “가다가 못가면? 아니 간만 못하다.” 사람들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정말 신뢰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끝까지 가는 사람입니다. 한 번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도와주는 사람. 한 번 함께 가주기로 했으면, 목적지까지, 끝까지 가 주는 사람.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일에 충성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항상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놓고 순종한다고 합니다. 순종하는 게 아니라, 순종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그래. 내가 여기까지는 간다.” “요기까지만 참아준다.” 이렇게 기준점을 스스로 세워놓고, 그걸 넘어가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내가 정해놓은 기준을 넘어섰기에,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를 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 하는데, 이것만큼은 안 됩니다. 하나님! 이것마저도 건들면 저 가만히 안 있습니다.” 기준을 정해놓고 가는 것은 끝까지 가는 게 아닙니다. 바른 순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순종한다고 하면, 복종한다고 하면, 끝까지 가는 겁니다. 기준점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기준을 정해놓으셨으면 어땠을까요? “하나님! 군병들이 침 뱉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채찍질은 안 됩니다.” 혹은 “하나님! 군병들이 겉옷을 벗기고 나누는 것은 괜찮지만, 속옷까지는 안 됩니다.” 이런 식이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완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치욕과 고난의 길, 더 나아가 십자가의 죽으심까지 그대로 다 받아들이는 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우리에게도 십자가가 있죠.  우리에게 주어진 직장이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남편이, 아내가 십자가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건강의 문제나, 물질의 고통이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자녀가 나를 못 박는 십자가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바로 순종입니다. 내게 주신 가족, 직업, 내게 주신 직임과 직분과 사명. 그 모든 것을 내게 주신 십자가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의 순종의 마음이 우리 안에 심겨지게 됩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수용의 마음, 인정하는 마음, 순종의 마음을 우리 안에 품고, 주어진 사명 힘써 감당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 영광의 자리에 세움 받습니다. 

 

앞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눴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은 완전히 낮아지신 겸손의 모습이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마음은 끝까지 따르는 순종의 모습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서 세 번째는 그에 따른 결과인데, 바로 영광의 자리에 세움 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보면 영광의 자리에 세움 받게 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9절에서 11절까지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죽기까지 복종하신 삶, 완전한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신 삶이었는데, 그에 따른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높이심을 통한 영광의 자리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더욱 중요한 사실, 우리 믿는 자에게,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이러한 영광의 자리가 예비되어져 있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가장 중심 되는 문장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이 한마디면 끝입니다. “이러므로” 즉 겸손과 순종의 마음을 품고 살아감으로, 완전한 낮아짐의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나도 낮아짐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나도 끝까지 순종함으로,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그렇게 지극히 높이심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믿는 자, 예수님을 따르는 자,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자.” 저와 여러분들인 줄 믿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높이시는 영광의 자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귀한 성도 여러분! 주의 전에서 예배하는 우리 정말 사랑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이름은 나 하나의 이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는 항상 하나의 수식어가 붙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아무개” “뉴질랜드 광림교회 성도 아무개” 이 말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겸손함으로, 끝까지 순종함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의 지극히 높이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증거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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