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들,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다 (2) 변경숙 4-2 / 2. 세월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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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들,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다 (2) 변경숙 4-2 / 2. 세월은 흐르고

일요시사 0 892 0 0

과연 남편은 흐트러짐이 없는 남자였다.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남편이 어느새 경숙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남편이 두려웠다. 그래서 더욱 우울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일상에 기쁨이라고는 없었다. 오로지 일 뿐이었다. 언제 이 힘든 나날이 끝날지 알 수 없었다. 밤이면 자면서도 몸을 떨곤 했다. 

 

 

변경숙과 로이 윌슨과의 사이는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서 배울 만큼 배우고, 반듯한 직장에서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경력을 쌓은 사람이, 더욱이 결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를 나이가 아닌 사람이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고, 그런 결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친구들의 남편들까지 나서서 좋은 남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대부분 교사나 은행원 대기업 간부사원들이었고, 그들 중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위의 반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경숙의 마음은 굳어졌다.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지 뭐.

국제결혼을 하겠다고 알렸을 때,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 가족들과 친척들 모두 경숙의 결정에 놀라워했고, 혼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경숙을 나무랐다. 특히 아버지는 경숙의 말을 들으려 조차 하지 않았다.

당신이 바랐던 첫아들 대신 태어난 첫딸을 씩씩하게 키우려 했고, 동생들보다 엄하게 대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어린 경숙을 성인용 자전거에 태워 놓았고, 어떻게 멈추어야 할지를 몰라서 운동장을 계속 돌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전거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학창 시절 내내 과외공부를 시켰고, 교복을 맞춰 입혔다. 아버지는 딸의 뜬구름 잡는 듯한 허황된 생각을 나무랐다.

변경숙은 아버지와 가족들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

아버지, 어머니, 저를 믿어주세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좋은 딸은 아니었지만, 실망시키거나 부끄럽게 하는 못된 딸은 아니었잖아요. 실패하지 않을 거에요. 아니 실패하지 않겠어요. 실패한다 해도 아무도 탓하지 않겠습니다. 

변경숙은 물러서지 않았고, 부모님은 경숙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미 결혼을 위한 서류와 초청장이 뉴질랜드와 한국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할 준비를 해서 비행기를 타겠다는 로이의 편지가 날아왔다.

 

 

첫 만남

 

봄이었다.

사월이었고, 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김포공항이었다. 부모님과 송선장, 여동생 그리고 경숙이 백인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이 윌슨이 출국장을 나왔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결혼을 약속한지 삼 개월만이었다. 검은 점퍼 차림이었다. 사진에서처럼 안경을 쓰고 있었고, 키가 컸다. 하관이 발달한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젊어보였고, 무엇보다 표정에 구김이 없었다.

로이를 잘 아는 송선장이 부모에게 소개했다. 로이는 경숙의 부모와 악수했다.

손이 큼직했다. 손가락에 가느다란 털이 나 있었다. 로이가 안경알 뒤에서 가늘게 눈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경숙에게 확신을 주는, 또 로이 역시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변경숙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첫 대면을 마친 로이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고, 가방 속에서 꿀 한 병을 꺼냈다. 결혼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남자의 선물이었다. 로이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결혼식을 올렸고, 함께 뉴질랜드 대사관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그들은 주로 무엇을 하며 살까. 영화에서처럼 이층 양옥집에서 집안에서도 좋은 옷을 입고 지낼까. 넓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까. 남편은 정원 손질을 하고 아내는 집안을 꾸미고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서 식사를 할까. 혹시 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 경숙이 한국이 아닌 좀 더 넓은 국제무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변경숙과 로이 윌슨이 뉴질랜드로 떠나는 날, 김포공항으로 배웅 나온 가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경숙은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실패한다면 한국을 찾지도 않을 것이고 가족들을 초청하지도 않으리라 결심했다. 

 

 

웰링턴에 도착하다

 

웰링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음은 들떠 있는데 그날따라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날씨는 우중충했고 기대했던 마중은 없었다. 꿈처럼 아름답고 행복해야 할 신혼생활은 실망과 불안, 그리고 혼란으로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모든 일에 서툴렀다. 로이는 말이 없고 조용한,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규칙은 양심에 비추어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런 남자였다. 아침마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기차를 타고 출근했고, 정확한 시간에 퇴근했다.

뉴질랜드 또한 그런 나라였다. 깨끗하고 조용했다. 시내로 나가기 전에는 사람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사람이 그리웠지만 찾아갈 곳이 없었다. 

변경숙은 혼자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고, 엄마가 생각나서 목이 메이도록 울었다.

식사를 준비하려해도 주방은 익숙하지 않았고, 재료도 마땅치 않았다. 끼니때마다 우두커니 서 있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식사는 남편이 준비하기로 했다. 남편이 만든 양고기와 안남미 밥은 입에 맞지 않아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 경숙은 엄마가 보내준 고추장을 밥에 비벼서 볼이 터지도록 먹었고, 비빔국수를 해 먹었고, 한국선원들이 가져다 준 마른 오징어를 고추장에 찍어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답답하고 삭막한 생활에서 경숙을 구해준 것은 엄마의 고추장과 마른오징어였다.

배가 부르면 집안일을 했다. 영어뿐인 세탁기에 빨랫감들을 쑤셔 넣고 단추 몇 개를 눌렀을 뿐인데 거품과 비눗물이 넘쳐흘러서 세탁기는 고장이 나고 집안은 물바다가 되었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은 빨래도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남편 로이는 빨래도 하지 말라고 말했다. 경숙은 요리도 빨래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만있어서는 안 되었다. 경숙은 주부이기 때문이었다. 주부라면 무엇이든지  집안일을 해야 했다.

집안청소를 하기로 했다.

벽장 속에서 마른 오징어들이 나왔다. 한국선원들이 감사의 표시로 가져온 것들이었다. 나누어 먹을 사람도 없고 구워먹으려 해도 남편이 냄새를 싫어하는 바람에 처박아두었는데 오래 두어서인지 약간 상한 듯했다. 꽤 많은 오징어를 뒷마당에 있는 화덕에 집어넣어서 태웠는데 느닷없이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상한 그러니까 시신을 태우는 듯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들의 신고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사건을 처리하고 난 남편은 경숙에게 엄하게 말했다.

뭐든지 만지기만 해도 고장을 내고 매일 사고를 친다면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라고...

변경숙은 아무 할 일이 없었다. 아무 할 일이 없어서 창가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한때는 공부도 잘 하고 칭찬도 많이 듣던 괜찮은 여학생이었던 경숙이었다. 그냥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서 정원에 핀 꽃들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장미와 라벤다, 그리고 과꽃이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들이 흔들렸고, 나뭇잎들이 서로 맞비벼서 쏴아 소리를 흩뿌렸다.

 

 

출산의 고통

 

지독한 출산의 고통은 경숙에게 최고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임신을 했고, 일이 년 터울로 차례로 아들 셋과 딸이 태어났다.

입에 맞지 않는 식생활 때문일까, 산후 조리를 하지 못해서일까, 체중은 늘었는데 출산은 한 번도 순탄하지 않았다. 출산 후에도 알 수 없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물조차 넘기기 어려웠고, 의자에 똑바로 앉지 못했고, 화장실 사용도 힘들었다. 출산보다 몇 배나 심한 고통이었다. 경숙은 통증을 호소하는데 의사는 정상이라고 말했다. 원인을 찾기 위한 수술을 몇 차례 받아야 했다. 젖이 부족한 아이에게 우유를 물에 개어서 먹이기도 했다. 막내는 태반의 파열로 두 달이나 먼저 태어났다. 산모와 태아 모두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었다.

누구도 간호해 주는 사람이 없었고, 몸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만 먹었어도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텐데.

미역도 없었고, 엄마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서럽고 서러웠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남편이 엄마를 부르자고, 엄마에게 와 달라고 부탁하자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반대하는 결혼을 했는데, 큰소리 땅땅 치며 떠나왔는데 다 죽어가는 꼴을 보여드릴 수는 없었다.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던 엄마였다. 엄마가 그리운 만큼 경숙은 이를 악물고 아이들만을 생각했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맨발로 집안일을 해야 할 만큼 정신이 없었다. 여섯 살, 다섯 살, 세 살 그리고 막내까지, 매일 빨아야 할 아이들의 기저귀가 산더미 같았고,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제작기 자기의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타고난 개성대로 자랐다. 한 아이는 너그러웠고, 한 아이는 고집스러웠고, 한 아이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고, 또 한 아이는 독립심이 강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먹어대고 마셔대고 싸우다가 잠들고 그리고 아무 때나 울어댔다.

우당탕, 치고, 받고, 던지고, 울고, 불고. 온 집안은 전쟁터 같았다. 그렇게 시끄러운 것이 정상이었고, 조용하면 뭔가 사고를 치는 날이었다. 정부에서 보내준 간호사는 까다롭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간호사가 방문하는 날, 변경숙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가만히 있었다.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 간호사는 경숙이 이해할 수 없는 여자라는 보고서를 병원에 제출했다.

갑자기 수퍼라도 가려면 아이들을 재우고 전화선을 빼놓고 얼른 다녀왔다. 그나마 팔이 아프도록 아이들을 안으며 경숙을 도와주던 남편마저 담낭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처음으로 무서웠던 나날이었다. 아이들 돌보라 남편 구완하랴, 경숙의 손은 마를 틈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뀌지 않는다. 결코 바꿀 수 없다.

 

변경숙은 그렇게 메말라갔다.

머릿속은 텅 비어갔고, 몸은 메말라갔다. 이런 것은 아니라는 절망과 후회가 가슴을 쳤다. 사는 일이 단순하지 않고 에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옴짝달싹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은 과묵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활을 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고, 자기가 할 일을 마치면 방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변경숙은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밥을 먹지 않고 물로 목만 축이며 남편의 반응을 기다렸다. 아이들 생각을 해서라도 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제 그만 화를 풀고 밥을 먹으라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못 이기는 척하고 제자리로 돌아갔을 텐데, 남편은 언제나처럼 묵묵부답이었다.

변경숙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안일에 시달리면서 경숙은 남편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고, 불만을 터뜨리며 슬금슬금 싸움을 걸었다. 새벽까지 목이 쉴 정도로 대들었지만 남편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변경숙은 남편을 화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나무를 꺾어 놓는 것이었다. 나무가 꺾어져 있는 것을 본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입을 닫았다. 원래 말이 없는 남편은 더욱더 말이 없어졌다. 그러면서 한국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평소에는 젓갈과 누름밥을 빼고는 한국음식을 마다하지 않았던 남편이었다. 

남편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화를 내는 대신 설거지를 했고, 빨래를 널었고, 정원 정리를 했고, 마트에 다녀왔고, 식료품들을 냉장고에 넣었고, 시간이 되면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마다 정장을 갖추어 입고 출근했다.

남편의 그런 시위는 며칠이 가기도 했고, 몇 주일이 걸리기도 했고, 몇 달 동안 계속되기도 했다. 왜 그러냐고 따져봐야 부질없는 일이었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왔는데, 고작 찾은 것이 이런 삶이란 말인가. 견디다 못한 경숙은 손에 잡히는 대로 살림살이를 집어던지며 악을 썼다.

이게 뭐냐고, 이게 행복이냐고, 이게 선진국의 생활이냐고.

어느 날 집으로 경찰이 찾아왔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남편의 신고를 받고 범인을 잡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변경숙의 혐의는 기물파손, 공갈협박이었다. 건장한 경찰들 앞에서 경숙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경숙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냥 울기만 하였다. 조사를 하거나 체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참동안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리던 경찰들은 그냥 돌아갔다. 경찰은 경숙의 행동을 감시했다.

대신 정신과 의사들이 찾아왔다. 점잖은 차림의 남자들이 왔을 때, 경숙은 손님인 줄 알았다. 정성들여 커피와 차를 내놓았다. 질문을 시작했을 때 그들이 의사이며 상담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들은 남편의 직업이 무엇이냐, 나이가 몇 살이냐, 영국의 어느 고장 출신이냐 부터 시작해서 수십 가지를 스무고개 하듯이 물었다. 여러 차례의 상담을 거친 후 의사들은 말했다.

당신 남편은 바뀌지 않는다, 결코 바꿀 수 없다, 당신이 포기하든지 그러려니 하며 살아라.

그것이 결론이었다. 과연 남편은 흐트러짐이 없는 남자였다.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남편이 어느새 경숙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남편이 두려웠다. 그래서 더욱 우울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일상에 기쁨이라고는 없었다. 오로지 일 뿐이었다. 언제 이 힘든 나날이 끝날지 알 수 없었다. 밤이면 자면서도 몸을 떨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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