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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9); 행복이 넘치는 가정

일요시사 0 194 0 0

엡 6:1-4


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가 보통 어버이 주일하면, “부모님께 효도해라. 살아 계실 때 잘 섬겨라.” 이런 말을 많이 하게 되죠. 오늘 본문에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런데 보면 “자녀들아”로만 끝나지 않고, 4절에 이런 말씀도 나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처럼 에베소서 5장과 6장에 보면 각각의 사람들에게, 그 주어진 자리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자녀를 향해, 부모를 향해, 남편을 향해, 아내를 향해, 상전을 향해, 종을 향해” 하나의 짝을 언급하면서 한 사람의 전적인 충성이나 헌신이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의, 서로 간에 서로에게 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도 보면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확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처럼 이 땅의 모든 관계는 다 양방향입니다. 절대로 일방통행으로 가서는 안 되는 거죠.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방이 아니라, 서로 간에 사랑과 섬김이 있어야 행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일방적으로 부모님을 향한 자녀들의 공경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물론 어버이주일이기에 부모공경에 비중이 좀 더 크긴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됨으로서 자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자리에서, 자녀는 부모님의 자리에서 서로 섬김과 사랑을 통해 행복이 넘치는 가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시간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머리로”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면 이런 축복을 받기에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어떤 책임적인 부분, 지식적으로 깨닫게 하고, 의무적인 모습을 강조합니다. 아무리 내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고, 용납되지 않는 면이 있을지라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에 자녀라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공경하는 게 맞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머리로 판단하면 당연히 부모님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머리는 내 안에 당위성을 세워줍니다. 지식적으로 충족시켜줍니다. 스스로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 내가 자녀로서 부모님을 공경해야지. 내가 부모로서 자녀를 신앙적으로 잘 양육해야지.” 이게 머리가 감당하는 부분입니다. 어떤 의무감도 생각나게 하고, 책임성도 갖게 만드는 거죠. 머리로 하는 것은 이런 유익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십시오. 십계명, 열 가지 계명 중에, 딱 하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여기에만 덧붙여져 있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여기에만 이런 축복의 결과를 붙여놓았을까? 그만큼 효도를 안해서가 아닐까? “효도를 하면 복을 줍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부모를 공경하게 하기 위해 우리 머리를 자극하시는 거죠. “그래 너 머리로 계산 잘 하잖아. 효도하면 잘 되고 장수하는데, 한 번 해볼 만 하지 않냐?”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것, 부모님이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겁니다. 내 머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겁니다. 책임감으로라도, 의무감으로라도 감당하고자 노력할 때에, 그것이 정말 내 모습이 되어지고, 이를 통해 행복이 넘치는 가정 만드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는, “가슴으로”입니다. 

 

가슴은 감성의 부분입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 있어서 머리만 있으면, 이성만 있으면 너무 차갑습니다. “내 부모님이기 때문에 공경해야 해. 내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해.” 물론 의무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감성입니다. 저는 사실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저희 어머님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짠해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 뒷모습에서 수많은 풍파와 아픔과 어려움의 시절을 겪으신 어머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노인정에 기자들이 방문해서 어르신들에게 물었답니다. “어르신! 자녀가 효자라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대부분의 노인 분들은 거의 똑같은 대답을 하십니다. “그럼. 그럼.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얼마나 효자인데.” 그리고 기자들이 거리에 나가 젊은 사람들을 붙잡고 또 물어봅니다. “당신은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모든 젊은이들이 한결 같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니요. 저는 정말 불효자입니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 “자녀분들이 효자이신가요?” 반대로, “여러분들은 부모님에게 효자이십니까?” 아마 우리 성도님들도 똑같이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서 이런 정의가 있습니다. “사랑이란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고도 혹시 모자란 게 있지 않나 미안해하는 것이다.” 가슴으로 느끼면 결국은 다 나의 모자람을 탓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사랑하는데, 그만큼 해드리지 못한 자녀의 마음, 정말 사랑하는데, 그렇게 주고도 아직 다 못 준 것 같은 부모님의 마음. 이게 가슴으로 느끼는 사랑이죠. 

  

그런데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한 것은, 이렇게 다 깨닫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부모님에게 좋은 말 한마디 한 번 못 해드리고, 전화도 자주 못해 드리고, 여전히 불효한 모습인 겁니다. 그게 자꾸 가슴을 찌르는 거예요. 요즘 어버이날 선물 중에 돈다발 카네이션도 있더라구요. 만 원짜리, 혹은 오만 원짜리 지폐 꽃바구니에 말아 넣어서 보내는 게 있습니다. 왜 이런 게 생겼을까? 안 채워지니까 그런 겁니다. 내 가슴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되니까 꽃으로라도, 안되니까 돈으로라도 채워보겠다는 거죠.

  

좋습니다. 그렇게라도 채우고자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꽃다발도 보내드리고, 돈다발도 보내드리고, 선물 꾸러미도 보내드리세요. 뭐라도 하여간 보내드리면 좋은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따뜻한 말 한마디, 속으로만 품지 말고 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가까이 계시면 그냥 가서 한 번 안아드리시기 바랍니다. “이게 미친나?” 소리 들을지 몰라도 좋아하실 거예요. 부모님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을 향해서도 이러한 따스한 가슴으로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가슴 따스한 사랑에, 감동이 묻어나고, 행복이 넘쳐나는 축복의 가정 이루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은, “영으로”입니다. 

 

정말 우리 가정에 행복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머리로 잘 판단하고, 부모로서 자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가는 것, 물론 필요합니다. 가슴으로 서로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사랑하고 섬겨주는 모습, 이 역시 필요하죠.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 간의 관계라는 것이 머리로도 이해가 안 되고, 가슴으로도 용납이 안 되는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겁니다. 내 이성적인 부분도, 내 감성적인 부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한계가 명확합니다. 아무리 부모와 자녀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서로 다른 존재의 만남이지 않습니까? 때로 나이가 들면서 그런 고백들을 하십니다. 아침에 거울 보는 중에 깜짝 놀란다는 겁니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보는데, 아버지가 보이는 거죠. 어머니가 보이는 거죠.” 아버지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아버지가 있는 겁니다. 어머니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어머니가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서로 다 이해할 수도, 서로 다 용납 할 수도, 서로 다 품어 줄 수도 없습니다. 그 마지막 부분을 맞춰주는 것이 바로 영성, 신앙적인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겠지만, 정말 구할 것을 구하셔야 합니다. 학업을 위한 기도도 해야죠. 취업을 위한 기도도 시급하죠. 결혼을 위해 배우자 기도도 해야죠. 태의 열매를 위한 기도도 해야겠죠. 건강을 위한, 물질을 위한, 사업과 직장과 이 모든 기도들도 다 해야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하지만 기도에는 늘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내 자녀가 믿음으로 잘 성장하게 하옵소서. 지금 방황의 삶을 끝내고 빨리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믿음의 유산이 자녀손들을 통해 잘 이어지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먼저 있어져야 합니다. 영적인 것이 먼저 채워져야 삶적인 것이 채워질 때 그게 축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자녀들도 부모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님 마지막 천국 가시는 순간까지 주의 은혜 안에 살게 하옵소서. 절대로 믿음의 끈을 놓지 않게 하옵소서.” 아직 믿지 않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주님! 우리 부모님이 속히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 품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러한 영적인 기도가 해결 되야, 정말 행복한 가정의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위해서, 자녀는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함으로, 영적인 은혜가 넘쳐나는 축복의 가정을 이루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관계.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 친구와 친구라는 관계. 주인과 손님이라는 관계. 세상에서 소위 말하는 갑과 을이라는 관계. 또 이 자리에 목사와 성도님이라는 관계. 그리고 성도와 성도의 관계. 마지막으로 그 모든 관계 그 이상의 관계가 있습니다. 부모님과 나, 그리고 나와 자녀와의 관계. 나는 자녀일수도 있고, 부모일수도 있습니다. 부, 모, 자, 녀 머리로, 가슴으로, 영으로... 깊이 생각하고, 느끼고, 기도함으로 정말 행복이 넘치는 우리 가정을 이루어가는 주의 축복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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