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한인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교민뉴스


 

오클랜드한인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일요시사 0 1205 0 0

오클랜드한인회가 발족된 지 28년, 

그동안 14대의 회장들이 영욕의 세월을 견디어 냈다. 

이제 성숙되어 가는 한인 사회를 ……

 

 

오클랜드한인회의 제15대 한인회장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다. 임기가 2년이므로 28년이 흘렀고 이제 30년을 향해 달려가는 한인회라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일생으로 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기 시작하는 나이인 것이다. 어찌 보면 영욕(榮辱)의 세월로 점철됐던 지난 28년을 뒤로하고 이제 성숙을 향해 앞으로 매진할 시기이기도하다. 이 시점에서 지난날을 회고해보고 앞으로의 지향할 바를 논의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뉴질랜드 한인 사회를 논함에 있어 뉴질랜드 한인에 대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뉴질랜드 한인이라 함은 ‘The Republic of Korea' (즉 이곳에서 통칭되는 ’South Korea'를 말함) 출신으로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영주권자, 시민권자, 합법적인 노동 비자 소지자 등을 말한다. 국제결혼에 의해 출생한 2세들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한민족이지만 한국 외의 출신 동포를 포함하는 데는 아직 무리가 있으며 추후 논의될 사항이다. 이번 오클랜드한인회장 선거에서 투표권자의 자격은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의 한민족과 그 가족으로서 뉴질랜드 시민권자, 영주권자 또는 합법적인 노동비자 소지자 중 오클랜드한인회의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등록 된 자로 되어 있다.           

 

1987년 투자 이민 제도의 시행은 뉴질랜드 인구 변화에 큰 변동을 시사했다.  그 때 까지는 뉴질랜드도 백호주의(白濠主義)의 영향아래 있었고 따라서 유색 인종에 대한 이민 유입을 막아왔었다. 아시안에게도 이민 길이 열리자 한인의 유입도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새로 들어오는 유입 인구는 오클랜드를 선호했다. 그 후 1991년도부터 시행된 점수제 일반 이민 제도는 한인 인구의 급증과 한인 사회의 급성장을 가져왔다. 오클랜드에 교민이 집중되는 현상은 이민 오기 전에 이미 한국에서 대도시에 거주했던 타성에 기인한다. 실제적으로 오클랜드는 정착하기에 유리한 여러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취업이 유리하고 생활/기후 조건이 양호하며 동포를 주 고객으로 하는 상업 및 서비스업이 용이한 점이다. 또한 교통이 편리하며 여러 교육 기관의 접근이 유리한 점도 작용했다.

 

1974년에 웰링턴에서 결성된 뉴질랜드한인회는 1991년까지 지속되었으나 한인 인구가 오클랜드에 집중되기 시작하자 1991년 4월 오클랜드 교민들은  회장을 선출하고 오클랜드에 본부를 둔 ‘뉴질랜드한인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원래 뉴질랜드한인회의 출범 지였던 웰링턴 교민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교민들의 증가로 어차피 지역 한인회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터라 동년 7월에는 크라이스트처치 한인회가, 8월에는 웰링턴 한인회가 발족되었다. 그 후 와이카토한인회, 더니든 한인회, 로토루아한인회, 퀸스타운한인회, 황가레이한인회, 넬슨한인회, 왕가누이한인회 등이 발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다른 지역 한인회에서는 오클랜드한인회의 대외 명칭인 뉴질랜드한인회의 이름을 바꿀 것을 요청했으나 오클랜드한인회에서는 굳이 이름을 바꿀 필요를 못 느끼고 계속 사용했다. 그러자 1995년도에는 웰링턴한인회에서도 명칭을 ‘뉴질랜드 한국교민회’로 바꿔 사용하게 되었고 대외적으로 뉴질랜드 전체를 대표하는 한인회가 두 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 지게 되었다. 이는 계속적으로 한인회 간의 불화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오클랜드에서도 명칭 변경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2008년 당시 유시청 회장 때 ‘오클랜드한인회’로의 명칭 변경 건이 가까스로 채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웰링턴에서도 ‘웰링턴한인회’로 복귀함으로서 명칭으로 인한 불화를 씻고 뉴질랜드 전체 한인회가 화합하여 ‘뉴질랜드한인회 총연합회’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당시 홍영표 회장 때는 한인 사회의 숙원 사업이던 한인회관을 마련하는 경사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후 몇 년 간 한인회관 운영 문제와 관련 극심한 내홍(內訌)을 겪으며 성장통(成長痛)을 견뎌냈다. 새로 선출되는 한인회장은 이러한 내홍을 슬기롭게 수습하고 한인회관을 중심으로 한인들이 모여들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도록 인도해나가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사이 오클랜드 한인 사회에서는 4선의 멜리사 리 국회의원과 리디아 고 같은 세계적인 골프 선수도 배출해냈다. 2만에서 2만 오천 정도로 추정되는 오클랜드 한인 사회이지만 우수한 역량과 잠재력을 지닌 소수 민족 그룹이다. 우리가 서로 결속하여 그 힘을 진취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면 얼마든지 모범적인 해외 한인 사회를 개척해나갈 수 있고 뉴질랜드에서 우리의 위상을 제고 시킬 수 있는 처지에 있다. 

현재 회관의 일부를 임대 중인데 국민은행 대출 잔금 40만 달러 정도를 상환한다면 회관 전제를 우리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넓은 홀을 이용, 이민사박물관을 운영하고 여러 행사장으로 겸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이민 차세대들이 앞으로 복을 누리고 뉴질랜드라는 제2의 고국에서 살아가게 되는 그 날을 상상하며 1세대들은 그 씨앗을 뿌려나가야 될 것이다.     

              

                        

 

   전 뉴질랜드한인사 편찬위원장  한  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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