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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7); 기도의 자리에 설 때에 출애굽기 3:11~12

일요시사 0 51 0 0

영화 록키의 주인공인 실베스타스텔론은 태어날 때 작은 의료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외모와 가난으로 인해 줄곧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 영화는 개봉 후에 엄청난 반응을 얻어서 그를 영화배우로서 일약 스타로 만들게 됩니다. 록키라는 영화를 보면 실베스타스탤론 자신의 이야기라고 할만치 자신의 어려운 시절과 더불어 꿈을 가지고, 그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어렵고 힘든 시절을 잘 견뎌내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룬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에 열광하고, 감동을 받습니다. 사실 실베스타스탤론 같은 배우는 당시 신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순히 꿈을 향한 인간적인 도전정신마을 가지고도 이런 대단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인간적인 결단과 확고한 신념만 있어도 이러한 성과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진다면 어떨까요? 오늘 말씀의 제목이 “기도의 자리에 설 때에”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호렙산 기도회가 시작되는데, 말 그대로 기도의 자리에 설 때입니다. 이 시간 기도의 자리에 설 때에 임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기도의 자리에 설 때에 존귀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주인공은 야베스입니다. 야베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개역한글판에 보면 “그의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다.” 그냥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말씀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수용이 안 되는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형제들 중에 존귀하지 않은 자가 있습니까? 그럼 오늘 말씀에서 왜 야베스는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가? 이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오늘 야베스의 이름이 등장하는 역대상에는 수많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 두 절에 걸쳐서 야베스를 소개합니다. 이렇게 지나가는 수천 수만의 이름 중에 야베스의 이름이 빛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지나가는 이름이 많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기억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이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례로, 여러분 잘 아시는 다윗에게 여덟 명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다윗은 막내입니다. 그럼 제일 큰 형의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이새의 첫째 아들은 엘리압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쟁에 나갔을 때 엘리압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다윗을 핀잔하면서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구나.” 키와 용모는 준수한데, 신앙이 약합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자신은 숨어서 전쟁을 구경하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려는 다윗을 핀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신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을 찾아내어서 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정말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존귀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존귀함의 이유는 단 하나! 다윗이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50편 중에 반 정도가 다윗의 시입니다. 그 내용이 다 하나의 기도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기쁘고 감사한 순간에도 항상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것을 시편으로 기록했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존귀한 사람 중에 하나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보십시오. 왜 하나님은 야베스를 형제들 중에서 귀중한 자로 세워주시는가? 10절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여김 받는 것입니다.

  

오늘 야베스도 보십시오. 그의 이름이 야베스, 다 아시다시피 “고통”이라는 이름입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식 이름을 “고통”이라고 짓습니까? 그리고 그 “고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야베스의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되었고, 그 기도하는 삶을 통해 “고통”이라는 이름을 “존귀함”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상황과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라도 하나님께 아뢰는 삶, 기도하는 삶, 기도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존귀함을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기도의 자리에 설 때에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을 한 번 볼까요? 10절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없습니다. 엄청난 축복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세 가지가 나오죠. “나의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환란을 벗어나게 하옵소서.”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야베스는 “고통”이라는 뜻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기도의 내용 역시 환란을 벗어나게 해 달라는,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 아닙니다. 기도의 시작부분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복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세상 가운데서 많은 복을 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분히 세상적입니다. 인간적인 복입니다. 하지만 오늘 야베스가 구하는 복은 이러한 세상적인 복과는 구별이 됩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복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으며, 세상적인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구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 기도가 세상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기도, 성숙한 기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응답받는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도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와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지경을 넓혀 달라는 것은 바른 신앙의 관점으로 볼 때에 나의 헌신의 지경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할 지경인거죠. 바라기는 우리의 헌신의 지경이 날마다 넓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시간과 정성, 헌신을 드리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복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겁니다. “헌신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주를 위해 더 충성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여건, 상황과 환경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더불어 헌신의 지경이 넓혀질 때에, 삶의 지경까지 넓혀지는 풍요의 복,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기도의 자리에 설 때에 응답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예전에 야베스의 기도가 한참 인기를 누렸을 때, 많은 분들이 야베스의 기도가 기록된 액자를 집에 걸어놓고, 선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액자의 내용이 이런 게 많았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그런데 보십시오. 10절 말씀을 보면 하나 빠진 문장이 있습니다.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사람들 간에 약속을 많이 합니다. 그럼 약속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약속의 내용? 아닙니다. 누구와 약속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응답 받는 기도가 귀한 기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기특해 보이기만 할까요? “야! 저 놈 어떻게 저러구도 나에게 기도하냐?” 싶을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나의 삶을 생각하면 감히 구하지 못합니다. 내 행위를 생각하면 아무 것도 구하지 못합니다. 주님 앞에 설 수 조차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설 때마다 마음껏 구하시기 바랍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존귀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게 다 들려 있는데, 우리 생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서서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응답의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기도의 자리에 서서 응답의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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