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머물다간다는 북섬 최북단 케이프랑가를 찾아서

교민뉴스


 

영혼이 머물다간다는 북섬 최북단 케이프랑가를 찾아서 <글/사진 이 필립>

일요시사 0 1214 0 0

96년 5월 그 해,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의 해외 영어어학 연수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 대열에 끼어 지인의 도움도 받고자 찾은 ‘희고 긴 구름의 나라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를 기본 영어회화 실력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입국했다. 그해 여름 영어 연수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 북섬에서 잘 알려진 파히아(Paihia)에 숙소를 정하고 몇 일 머물면서 이곳 저곳을 여행했고 그저 아름다웠다는 기억만을 간직하며 20년 넘게 오클랜드에서 살아오다 올 1월 가족과 함께 다시 방문했다. 세월이 흘러 아내도 아이들도 생겼고 거울에 비친 필자의 모습에서 희끗희끗한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지만 다시 찾은 대자연은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기만 했다.

 

북섬의 제일 북단에 위치한 케이프랑가(Cape Reinga)를 오클랜드에서 한 번에 가기는 매우 힘들다. 따라서 여유있게 가기위해 오푸아(Opua)에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숙소로 정한 곳은 1885년에 지은 오래된 역사를 간진한 건축물이었다. 최근 현대식으로 내부를 말끔하게 수리해서 인지 오래된 건축물임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 옛날 오푸아 선착장이 한눈에 보이는 바닷가에 터를 잡고 지어서 인지 베란다에 앉아 바라보는 바닷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이른 아침 풍광은 유독히 날씨가 좋아서 였는지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까지 경치의 일부가 되어 한폭의 그림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가족과 함께 파히아의 선착장겸 안내센터가 위치한 버스터미널에서7시 30분에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24년이란 긴 세월을 건너고 이제 다시 찾는다고 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뉴질랜드의 정부가 처음 세워졌던 러셀(Russel)과 베이오브 아일랜즈(Bay of Islands)의 상업과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가장 잘 갖춰진 파히아는 오클랜드에서 3시간 조금 넘으면 올 수 있는 거리라 그동안 여러 차례 낚시며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방문을 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최북단에 위치한 케이프랑가를 찾을 기회가 없어 지금까지 한번도 다시 찾아가진 못했다. 96년 당시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오래전 일이라 다 기억을 못한다고는 하지만 영어를 제대로 다 듣고 이해하지 못해 받아들이는 정보가 매우 제한적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행히 지금은 관광버스 내 음향시설을 통해 들려오는 기사님의 뉴질랜드 전체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찾아가는 각 지역의 명소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베이오브 아일랜즈(Bay of Islands)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러 섬이 모여 이 지역을 하나로 통칭하여 부르고 있는데 무려 144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오푸아에서 타고온 차를 배에 실고 바다를 건너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러셀이 섬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러셀은 섬은 아니고 황가레이(Whangrei)에서 북쪽으로 시내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러셀 로드로 진입해서 아름다운 해안가를 꼬불꼬불 1시간 못되게 타고 오면 러셀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러셀은 뉴질랜드의 맨 처음 정부가 있었던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관광버스 투어는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여 저녁 6시쯤 돌아오는 상당히 긴 여행이다. 파히아를 출발할 때 같은 소속 회사의 관광버스 세 대가 사이 좋게 일정한 거기를 두고 이동했다. ‘정글의 법칙’의 병만족이 몇 해전 찾아가 서울 이정표(서울까지 거리가 무려 9291 km)를 세워 놓은 눈에 딱 들어오는 멋진 등대가 당당히 산등성이를 지키고 서있는 케이프랑가를 가는 여정 동안 여러 곳을 방문한다. 첫 번째 방문지는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의 삶은 길어야 백년을 살다가지만 이 천년 이상을 한 자리를 지키며 그 오랜세월에 대한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같은 카우리나무가 가득한 푸케티(Puketi Kauri Forest)라는 거대한 숲이었다. 산책로는 두 사람이 충분히 손을 잡고 편안히 걸을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 있었다. 버스를 내려 숲 안쪽으로 진입할 때까진 잘 몰랐으나 점점 가까이 갈 수록 그 엄청난 크기의 카우리나무들에게 놀랐다. 오클랜드의 서쪽 와이타커리 산맥(Waitakere Ranges)에 위치한 카우리나무숲도 여러 번 찾아가 보고 느끼곤 했으나 이곳의 카우리숲은 더 특별했다. 카우리나무의 신으로 일컷는 둘레 11미터에 키가 무려 40미터가 넘는 Te Matua Ngahere는 황가레이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호키앙가(Hokianga)라는 곳에 무려 2천년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한다. 1800년 후반 유럽인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해서 맨 처음한 것이 바로 숲에 있는 나무를 잘라내고 양과 소를 방목할 수 있는 목장과 농지를 개간하는 일이었다. 잘라낸 카우리나무는 워낙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강과 바다가 근접해 있어야 했는데 이곳의 카우리나무가 지금까지 보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강과 바다가 비교적 멀리 있었기 때문이란다. 

 

남섬의 오타고 지역에서 더이상 금이 발견되지 않자 이곳 베이오브 아일랜즈와 키리키리(Kerikeri)  그리고 케이프랑가를 포함한 파노쓰(Far North)지역으로 이주하여 소나무에서 송진이 뭉쳐 오랜 시간이 흘러 호박이 되어 값비싼 가치를 인정받듯 그 당시 그 효용가치로 인해 진귀하게 여겨졌던 카우리나무의 진이 뭉친 덩어리를 땅속에서 캐내기 위해 많이 모여들었다 한다. 키리키리를 지나 작은 어촌이 있는 망고누이(Mangonui)의 바닷가에 정착해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짬을 내어 찾아간 선창장에 여러 사람들이 쭉 늘어서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오클랜드 근처 바닷가에선 꿈에도 생각못할 존도리(John Dory)를 낚아 놓은 것을 보았다. 그것도 팔뚝만큼 큰 놈으로 함께 잡아 놓은 카와이(Kawai: 한국의 비늘 고등어 일종)도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었다. 역시 낚시는 멀리 이런 곳으로 와야 겠구나 싶었다. 

 

중간 기착지면서 삼거리인 아와누이(Awanui)에 관광버스가 쉬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카우리나무를 가공하여 각종 생활용품과 가구를 제작하는 곳으로 카페를 겸하고 있었다. 수 년전 한국에서 우리 가족을 방문하신 부모님을 위해 보내드린 관광 투어때 찍어서 보여주셨던 아주 커다란 카우리 나무 속에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연결시킨 모습을 담을 사진에 나와 있던 바로 그 카우리 나무가 건물 안에 있는 곳이었다. 이 나무 둘러엔 그 옛날 많은 사람들이 그 토록 찾고자 했던 카우리 송진 덩어리를 만져 볼 수 있다. 만지면 가루가 조금 묻어 나오는데 그 향기가 아직도 코끝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만들어 놓은 생활용품의 표면은 정말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아이들이 갖고 놀 수 있는 뉴질랜드 팽이 등도 볼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 휴게소를 들러 쉬었는데 구은 빵과 치즈를 올려놓고 먹는 이쁜 모양으로 굴곡을 이룬 카우리 나무로 만든 받침대를 구입했다. 오늘 저녁엔 크렉커에 치즈를 썰어 와인과 함께 먹었는데 카우리나무의 독특한 향이 느껴지는 것같아 좋았고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과 아름다웠던 장면들이 떠올라 더욱 좋았다. 

 

관광버스는 쉬지 않고 북쪽 방향을 달려갔고 바닷가에 위치한 와제너 홀리데이 공원(Wagener Holiday Park)을 바로 지나 위치한 카페에서 단체로 점심을 먹었다. 여름이 최대 성수기인데 관광버스 한대에 대략 100명씩 오늘은 벌써 관광버스가 네 대가 도착했다고 한다. 바닷가에 설치된 야외 테이플에 빙 둘러 앉아 먹는 피쉬엔칩스(Fish and Chips)가 좋은 풍광으로 인해 더 없이 맛이 좋았다. 저 건너에 멋진 무인도가 보였다. 토코로아 섬(Tokoroa Island)이라고 부른다. 한참 쉰다음 다시 버스에 올라 드디어 케이프랑가에 도착했다. 처음 방문했던 96년엔 1시간 남짓 비포장 도로를 달렸었는데 오늘은 매끄럽게 깔린 아스팔트 길이다. 또한 등대가 서 있는 전망대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놓은 조형물이며 넓직한 주차장 그리고 현대식 화장실이 매우 인상깊었다. 달려오는 버스안에서 기사님이 여러 번 오늘처럼 화장한 날씨는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주차장에 버스가 정차하고 탑승한 관광객이 줄지어 내려섰다. 이곳은 북섬중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케이프랑가의 왼쪽은 호주와 접하고 있는 타즈만 바다이며 오른쪽은 태평양으로 두 바다가 만나는 곳이 바로 이곳 케이프랑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각기 다른 이유로 찾아온다.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최북단에 위치해 있어 이곳을 기점으로 남섬의 최남단에 위치한 블러프(Bluff)까지 도보 또는 기타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뉴질랜드 국토횡단을 시작하거나, 아름다운 산과 해안선을 관광차원에서 찾는 사람들 그리고 종교적인 믿음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특히 뉴질랜드 원주민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가 전에 반드시 머물다 가는 곳이 바로 이곳 케이프랑가라고 믿는다고 한다. 돌아가신 분을 잊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매년 찾는 곳으로 매우 신성시되는 곳이라는 버스 기사님의 설명을 듣고 그 옛날 각 마을의 입구나 큰 나무에 치성을 드렸던 토속신앙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 참 깜박잊었는데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 케이프랑가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중간 거리쯤에서  모래 언덕이 즐비한 곳으로 이동했는데 이곳에서 아주 색다른 풍광을 보게 된다. 이곳에선 모래 썰매를 즐길 수 있는데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까마득히 높은 모레 언덕을 아주 힘들게 올라야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곳은 Te Paki Stream Sand Dunes라고 불린다. 썰매로 이용하는 널판지에 몸을 싣고 경사진 모래 언덕을 내려올라치면 경험해 보지 못함으로 인해 엄습해 오는 긴장감과 약간의 공포까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재밋게 타는 요령은 양다리를 이용해서 제동장치로 이용하는 것이다. 모레 언덕을 타고 내려오면서 두 발목을 깊이 모레에 넣으면 천천히 그렇지 않고 더욱 빨리 더 멀리 미끄러져 내려가려면 발목을 살짝 들어 올려야 한다. 

 

등산로를 따라 조금씩 내려가자 저 멀리에 오랜 세월 수 많은 고깃배에게 고마운 등불을 보내줬을 등대가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구비구비 내려오는 길을 따라 바람에 한들 거리는 이름 모를 들풀을 본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와 그 바다에서 들려오는 끊임 없는 바다 소리와 어울려 멋진 풍광을 재현하고 있다. 사람은 세월 앞에 늙고 병들어가지만, 이 아름다운 자연은 사람이 욕심을 부려 훼손하지 않는 한, 우아한 자태를 그대로 오래토록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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