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19; 솔로몬의 가마 ( 3장 9-1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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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19; 솔로몬의 가마 ( 3장 9-11절 )

일요시사 0 1301 0 0

9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10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

11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솔로몬 왕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찬가다. 상징하는 바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도들의 찬양의 노래다. 우리의 왕은 누구인가?


골 1:15-20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고, 또한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주와 만물, 천상천하 하늘과 땅의 모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 안의 만물이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으며,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런데 모든 창조세계의 주인이시며, 하늘과 땅의 만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셔야 할 그분께서 육신이 되어 창조세계에 찾아오셨다. 그 목적은 자신의 육신과 함께 육신을 지닌 죄인들의 모든 죄를 멸하시기 위함이다. 그 결과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칼빈은 ‘irresistible grace’, 감당할 수 없는 은혜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우리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계명이란 “내가 너희의 주냐? 그러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죄란 주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주님의 뜻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이고, 어긋나게 사는 것이다. 


결국 죄란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만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남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죄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거룩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 


그래서 창조의 주역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이며, 육신을 지니고 사는 인간들이 해결할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는 죄의 세력을 자신의 육신과 함께 십자가에서 파멸시키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과 함께 허물어져 내린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이며, 우리 주님의 감당할 수 없는 은혜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영생이라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에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란 이와 같이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들의 신앙공동체다. 9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레바논의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솔로몬의 가마란 우리의 왕께서 친히 머리가 되신 교회를 상징하고, 레바논의 나무란 성도를 상징한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하늘을 향해 자라나간다. 성도란 육신은 땅에 있지만, 하늘을 향해 커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육신은 땅에서 났지만, 영혼은 성령 안에서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요 3장 3절과 5절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거듭나다’라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도 있지만, ‘위로부터 나다’라는 뜻도 있다. 그렇다. 성도란 육신은 땅에서 태어났지만,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이다. 주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우리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즉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 자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은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태어난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정체성이다. 땅에 속한 자는 땅의 것을 생각하고, 위에 속한 자는 위의 것을 생각한다. 


골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땅의 것, 세상 일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하늘에 속한 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살라는 뜻이다. 하늘의 영광의 그날을 소망하는 가운데, 하늘의 영광에 참여할 그날을 기다리며, 주어진 육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자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삶의 자세다.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의 일을 먼저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 생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자기 존재의 뿌리가 어디에 박혀 있느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먼저다. 땅에 속한 자로서 땅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인가, 하늘에 속한 자로서 하늘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솔로몬 왕은 레바논의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다. 주께서는 하늘에 속한 성도들로 자기의 교회를 만드셨다. 그러므로 교회란 육신은 세상에 있지만, 영혼은 하늘에 속한 성도들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신앙공동체다. 그래서 교회를 세상 가운데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 한 가운데 존재하지만, 세상에 그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라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런데 10절에서, 가마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다고 하였다. 예수를 왕으로 섬기는 교회는 성도들의 사랑으로 엮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 안에서 하늘에 속한 자로 다시 태어난 자들이다. 왕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엮어지는 나라가 바로 하늘에 속한 교회이며, 하늘에 뿌리를 박고 세상 가운데 세워진 교회의 바른 모습이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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