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오라(KIA ORA)-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 문화 / 백동흠 francis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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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오라(KIA ORA)-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 문화 / 백동흠 francisb@hanmail.net

일요시사 0 1214 0 0

마오리 크리스(Maori Chris)


환상적인 뉴질랜드의 여름날,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들이 펄럭였다. 앞집 크리스네 가족이 피하(Piha)에 서핑을 갔다 온 모양이었다. 큰 타올과 수영복 그리고 서핑 장비들이 햇살에 잘도 말랐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하(Piha) 비치가 그려졌다. 주말이면 크리스는 두 딸과 아내를 데리고 오클랜드 북서쪽 피하(Piha) 비치로 서핑하러 다녔다. 크리스를 따라 우리 가족도 몇 번 갔다 왔다. 피하(Piha) 는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를 찍은 아름다운 배경의 바닷가였다. 남태평양 쪽빛 바다는 바라만 봐도 두고 온 고국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장엄하고 도도한 파도를 가르며 물 찬 제비처럼 날아오르는 크리스의 몸동작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크리스는 율부리너 같은 강한 인상을 지닌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였다. 강한 원주민 혈통을 이어받은 탓인지 체구도 탄탄했다. 아내인 제니는 활달한 백인 여성이었다. 두 딸은 엄마를 닮아 머릿결이 황금 갈색이었다.


뉴질랜드에 이민 와 초기, 7년을 같은 집에 살았다. 앞뒤 넓은 잔디 뜰을 지닌 숲속 보금자리였다. 대문 없이 마주 보는 앞집에 사는 크리스네를 통해 원주민 마오리의 문화와 생활 습관을 접하게 되었다. 집 앞뜰 잔디를 깎던 날이었다. 잔디깎는 기계가 그만 고장이 나버렸다. 그대로 두고 외출을 나가게 되었다. 멀리 사는 지인 집에서 저녁 식사를 초대한 터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뉴질랜드 여름은 저녁 9시까지도 훤했다. 집에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깎다 말고 방치해 두고 간 잔디가 깔끔하게 깎여 있었다. 꽤 넓은 뒤뜰까지도 시원하게 다듬어 놓은 게 아닌가. 내가 열심히 깎아도 족히 한 시간은 걸릴 일이었다. 크리스네 앞뒤 뜰도 개운하게 정리되어있었다. 분명 크리스 선행이었다. 크리스는 마오리 원주민의 삶을 그대로 내게 각인시켜주었다.



기아오라(KIA ORA)


1996년 6월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디뎠다. 오클랜드 공항에 환영 플래카드가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KIA ORA(기아오라)! 낯익은 이름이었다. 공항 직원이 입국 수속을 하면서 즐거운 음성으로 인사를 했다. KIA ORA(기아오라)! 체격이 우람한 마오리 남성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내심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어찌 알고 저렇게 인사를 하나 싶었다. 내가 고국 KIA 그룹에서 근무하다 온 사실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착각도 자유인지라. KIA ORA(기아오라)는 마오리 인사말로 ‘안녕하세요’였다. 이곳 뉴질랜드에서 의례적으로 잘 쓰는 인사말이다. Hello 나 Good morning보다 친숙한 인사말이라서 정겹게 주고받는다. 


뉴질랜드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이민 국가다. 뉴질랜드 인구는 475만 명(2019년)이다. 인구 대부분은 유럽계 서양인이고, 아시아 이민자는 12%를 차지하고 있다.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많은 이는 원주민 마오리족으로 8%에 이른다. 마오리족은 엷은 갈색의 피부와 곱슬머리로 언뜻 보기엔 아시아인과 비슷하다. 


마오리 말로 뉴질랜드를 AOTEAROA (아오테아로아) 라고 한다. 멀고 긴 흰 구름의 나라. 평화로운 이름이다. 실제로 뉴질랜드에 와 보면 길게 떠 있는 흰 구름이 참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영국인들이 식민지를 개척할 당시 새로운 땅에 정착하면서 원주민들에게 가장 신사적으로 대해준 곳이 뉴질랜드다. 미국에서는 인디안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말살시키는 정책을 폈다. 호주에서는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외딴곳으로 추방해 격리했다. 영국인들은 마오리 원주민들과 와이탕이 조약을 맺었다. 통합적인 관리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일부 마오리족의 반대도 있었지만 시행되었다. 변즉통(變卽通)이 뉴질랜드 사회를 바꿔나갔다. 배척에서 공유로 바뀌면서 상생하는 세상이 열렸다. 서구의 자본주의와 토착 자연주의가 함께 어우러져 갔다. 뉴질랜드는 마오리족의 독특한 전통문화를 존중해 교육 현장에서도 접할 수 있게 했다. 그런 영향으로 뉴질랜드 국가는 1절은 영어, 2절은 마오리어로 되어 있다. 라디오와 TV 방송 프로도 몇 개는 마오리어로 방송하고 있다. 지금도 의회의 의석 중 몇 석은 반드시 마오리 용으로 할당해 놓고 있다. 2020년 현재, 뉴질랜드 정권은 노동당이 잡고 있다. 연정 파트너인 뉴질랜드 제일 당 당수가 부수상을 맡고 있다.  그가 마오리 출신이다.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


원주민 마오리족의 민요인 포카레카레 아나는 영원한 밤의 우정을 노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친숙하게 불리고 있는 연가다. 이 연가는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뉴질랜드 로토루아 지역에 내려오는 구전설화에서 비롯되었다. 마오리족 히네모아와 투타네카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다. 로토루아 호수를 사이에 둔 아리와 부족 추장의 딸 히네모아와 모코이아섬에 사는 훠스터 부족의 아들인 투타네카의 연가다. 히네모아는 투타네카의 피리 부는 소리에 반했다. 히네모아는 투타네카를 만나러 매일밤 카누를 타고 호수를 건너갔다.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오랜 세월 전쟁과 반목의 갈등이 쌓인 두 부족 추장들의 완강한 반대를 받아오던 때였다. 추장인 아버지가 딸의 밀회를 막으려고 마을의 모든 카누를 불태워버렸다. 상사병을 앓게 된 히네모아는 절망에 빠졌다. 히네모아는 어느 추운 겨울밤 표주박 다발을 허리에 꿰찼다. 겨울 호수를 밤새 헤엄쳐서 투타네카가 사는 모코이아섬에 도착했다. 히네모아는 동사 직전의 꽁꽁 얼어붙은 몸이 되었다. 투타네카는 온갖 정성을 쏟아 그녀를 살려냈다. 결국, 두 부족의 추장은 두 젊은이의 결혼을 승낙하게 되었다. 호수를 사이에 둔 두 부족 간의 오랜 전쟁과 반목도 끝나고 서로 화해하고 평화를 되찾았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출전한 이들이 애인을 그리워하면서 애타는 마음을 연가로 표현했다. 1950년 6.25 전쟁에 5,300여 명의 뉴질랜드군이 참전했다. 이들이 연가를 부르면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과 뉴질랜드 관련 행사 때는 연가를 꼭 부른다. 연가의 원곡을 들으면 옛 시절 고국에서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마오리 말로 부르는 오리지널 연가의 첫 구절은 고혹적이다.  

Pokarekare ana 포카레카레 아나 / Nga wai o waiapu 나 와이오 와이오 푸 / Whiti atu koe hine 휘티 아투 코에 히네 / Marino ana e 마리노 아나 에~

와이아푸의 바다엔 폭풍이 불고 있지만 / 그대가 건너갈 때면 그 바다는 잠잠해질 거예요 / 그대여, 내게로 다시 돌아오세요 / 너무나도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요 / 내 사랑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결코 마르지 않을 거예요 / 내 사랑은 언제나 내 눈물로 젖어 있을 테니까요~

고국에 알려진 연가는 약간 수정한 번안 가요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 잔잔해져 오면 / 오늘 그대 오시려나 / 저 바다 건너서 / 그대만을 기다리리 /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땅의 사람(Maori)


마오리족은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원주민이다. 보통 마오리족으로 부르지만, Maori는 마오리어로 '보통의', '일반적인'이라는 형용사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탕아타 훼누아(Tangata whenua)라고 칭한다. '땅의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코와 코를 비비는 인사법인 '홍이'(hongi)는 친근하다. 전통적인 조각으로 장식된 마오리 회관(Marae)은 예나 지금이나 마오리족 회합과 의식의 중심지로 이용되고 있다.


마오리족은 1150년경부터 타히티로 여겨지는 신비의 땅 하와이키에서 이주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800년 이전부터 뉴질랜드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마오리족은 수렵•채집•단순경작경제에서 벗어나 뉴질랜드 산업경제에 깊이 참여하였다.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뉴질랜드의 유럽계 백인과 직접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마오리족과 백인의 결혼이 점차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마오리족 남자와 백인 여자의 결혼이 늘어나고 있다. 


마오리족은 정착 초기에 이웃 부족과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면 무자비하게 싸웠다. 섬인 뉴질랜드에서 그런 식으로 싸웠다간 언젠간 마오리족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방지책으로 하카(haka)라는 독특한 풍습이 생겨났다. 전투를 벌이기 전에 두 부족은 모든 전사들을 이끌고 평지에 집결해 일정한 대오를 갖췄다. 상대편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부족 전체가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 하카의 동작은 손으로 무릎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빼 밀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동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쪽 모두의 하카가 끝나고, 한쪽 부족의 추장이 자신들의 세가 밀린다고 싶으면 그들은 말없이 물러났다. 이 하카는 뉴질랜드 국민 스포츠인 럭비 게임 시작 전에 펼치는 전통 의식이 되었다.


마오리족은 한국문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일상에 흥(興)이 살아있다. 우리나라의 신바람 같은 감성적 정서가 풍부하다. 나이 든 분을 공경하고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환경을 생각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려 한다. 사람 중심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편이다. 한국과의 교류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땅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아오테아로아 하늘 위에 멀고 긴 흰 구름이 걸려있다. 기아오라(KIA 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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