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66) 쉼표 (')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66) 쉼표 (') <창39:19~23, 41:1>

오늘의 제목입니다. “쉼표” // 어떤 악보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쉼표라는 악상기호입니다. 4분 음표는 없어도 노래가 됩니다. 8분 음표는 없어도 노래가 됩니다. 하지만 쉼표가 없이는 절대로 노래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가진 가수도 쉼표 없이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쉼표인 것입니다. 마침 우리는 지난 약 2개월의 쉼표를 가졌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예기치 않은 쉼이었지만, 이 시간으로 인해서 근심도 있었고, 답답함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지만, 또 한 편 이 쉼표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몸과 마음에 쉼을 얻고,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쉼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의 삶 가운데 임한 쉼표입니다. 그 쉼표를 통해 요셉이 어떻게 되었는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주저앉고 뒤처지는 위기가 되었는가? 오히려 하나님 주신 위대한 꿈의 실현을 위한 도약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러한 쉼표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늘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쉼표도 있고, 내가 정말 시간을 내서 만드는 쉼표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쉼표가 축복입니다. 아니, 쉼표가 축복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만드실 줄 믿습니다. 오늘 요셉의 삶 가운데 임한 쉼표, 그 쉼표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우리의 삶 가운데도 동일하게 임하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사모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나의 정체성을 계속 붙잡게 하셨습니다. 


오늘까지 요셉의 삶은 끊임없이 달려온 삶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투쟁의 삶입니다. 계속 위를 바라보고 달려온 삶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형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정말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겠는가? 다른 문제도 아니고 가족들, 특별히 형제들 간의 문제입니다. 나중에는 결국 자기 동생을 죽이려고도 하고, 그건 좀 심하니까 노예로 팔아버리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그 안에 담겨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오히려 팔려간 게 더 낫다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과정 속에 요셉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어떤 꿈을 자신에게 주셨는지, 그 꿈들은 점점 아득해지기만 합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조차도 모르고, 남의 집 종노릇하면서 힘들게 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종의 정체성입니다. 항상 똑같은 패턴이예요.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해서 가나안에 갔는데, 만난 건 가뭄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만 기도했더니, 현실은 사자굴입니다. 믿는 사람의 삶의 패턴입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말씀에 순종한 것인데, 기도한 것뿐인데, 예배 한 것뿐인데,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그렇게 애쓰고 노력한 것뿐인데, 처해진 삶의 현실은 가뭄이고, 사자굴이고, 오늘 본문처럼 감옥에 갇힌 죄수의 신세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너무나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자녀들 교육시키느라, 시집 장가 보내느라, 부모님 모시느라, 손주들 봐주느라.. 취업하느라, 승진하느라, 돈 벌어오느라.. 회사 차리고 거래처 만드느라, 회사 알차게 키우느라, 문제 있으면 해결하느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업에서도 자녀들 보면서도,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다들 그렇게 달려오셨잖아요. 그럼 나는? 나는 없습니다. 남편만 있어요, 자녀만 있어요. 회사만 있어요. 일만 있어요. 나는? 나는 없습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런 수고가 있었기에 지금의 가정이 있고, 지금의 삶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서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겁니다. 가정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회사나 직장에서, 우리교회에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특별히 나에게 허락하셨던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했던가? 얼마나 했는가? 오늘 요셉이 감옥이라는 쉼표 속에 “꿈 꾸는 자 요셉”의 정체성을 회복한 것처럼, 우리도 잠시 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 자신의 믿음의 정체성을 깨닫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혀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41장 1절입니다. “만 이년 후에” 참 독특한 표현입니다. 그냥 이년도 아니고, 굳이 “만 이년 후”라고 말합니다. 영어성경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two full years” “이년이 꽉 찬 시간” 왜 이러한 표현을 썼을까요? 간단합니다. 너무 오래 있었다는 거예요. 그럼 요셉은 그 꽉 찬 이년 동안 뭐하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처음 몇 날은 잠도 못 잤을지 모릅니다. “관원장이 복직되었는데, 조만간 소식이 있겠지.”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는 중에 만 이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버린 겁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이러한 시간을 요셉에게 주시는가? 이러한 쉼 속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시키고 계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 41장에 보면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때 요셉의 나이가 얼마인가? 41장 46절에 말씀합니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삼십 세,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이 30세, 다윗이 왕으로 세움 받았을 때가 30세, 민수기 4장에 보면 회막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나이가 30세. 감옥에서 이년을 꽉 채워서 요셉의 나이 30세. 하나님은 쉼표 속에 나이를 준비시키십니다. 뿐만 아니죠. 요셉은 13년의 시간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하면서 가정 총무가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닐 겁니다. 연단과 시련의 시간을 거쳤을 것입니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도 처음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나중에는 간수장이 요셉의 신실한 모습을 보면서 일을 다 맡기는 겁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쳤기에 요셉이 나중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서도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손길 가운데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쉼표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손길. 혹시라도 왜 때가 이렇게 더디 오는가?하는 답답한 마음이 있다면 오늘 요셉의 쉼표를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쉼표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담겨 있습니다. 삶의 쉼표 속에서 우리의 삶을 위해, 우리 자녀들의 앞길을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를 드러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우리가 흔히 4대 족장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아브라함은 첫 번째로 약속의 말씀을 받은 인물입니다. 이삭과 야곱은 축복을 계승하고 꽃 피운 인물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약속의 열매를 맺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보통 세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땅의 약속, 또 하나는 번성케 되는 후손의 약속,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함께 하심의 약속”입니다. 이 세 가지의 약속의 말씀은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삭과 야곱에게 계속해서 동일하게 선포되어집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요셉에게는 그런 약속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께서 꿈을 보이시긴 하셨지만,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도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요셉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증거케 하십니다. 창세기 39장 3절에,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집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어서 39장 23절, 41장 38절과 39절 등 요셉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마다 동일하게 고백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셉의 삶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하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걸으시고, 때로 우리가 너무 힘들고 지칠 때는 우리를 안고 걸어가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쉼도 누려야 합니다. 너무 쉬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쉬면서도 걱정하고, 쉬면서도 염려하고, 쉬면서도 쉬면 안 되는데 쉬면 안 되는데,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가 쉬어도 하나님은 일하심을 믿고 쉼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47ec216c5b7c330fc6784da84d8f963_1589931261_231627.jpg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