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75)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75)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베드로전서 4:7~11>

평범한 휴대전화판매원에서 일약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된 ‘폴 포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폴 포츠의 가수 데뷔 앨범의 이름이 “원 찬스”입니다. “한 번의 기회”. 그는 영국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해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원래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특유의 외모와 어눌한 말투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악성 종양으로 인해 수술을 받기도 하고, 교통사고로 쇄골이 부러져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음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꿈을 붙잡고 나아갑니다. 그러다가 기회의 문이 열려졌을 때에, “원 찬스”를 붙잡음으로 결국은 가수의 꿈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이 말은 세상에서 우리가 보통 말하는 “말세가 가까이 왔다.”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인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모든 믿는 자들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권고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다시 말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베드로의 간절한 권면을 우리 마음 가운데 새기며 새롭게 결단하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정신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가장 먼저 힘써야 할 부분을 기도생활이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어떤 면에서 보면 내공을 쌓는 것과도 같습니다. 가장 큰 기도의 능력은 꾸준함에서 나옵니다. 당장 뭔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기도를 시작하면 얼마 못 가서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쌓여진다는 표현을 합니다. 최영희라는 시인이 쓴 ‘기도’라는 시를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나를 바꾸는 것.” 우리는 늘 생각합니다. 기도는 내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해결 받는 것이라고. 물론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천국 창고에는 우리가 그렇게 구하고 바라는 세상적인 것들만 쌓여 있을까요? 부요한 것, 잘 되는 것, 형통한 것, 그 보다 더 가치있고 존귀한 것이 있지 않을까요? 기도가 정말 깊어지면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바라보던 시선이 나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먼저 내가 합당한 모습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보십시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근신이 뭔가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삼가서 조심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섣부르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기도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다 알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돌아보니까, 늘 기도보다 앞서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는 중에 퍼뜩 오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 안 차리면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지금 한국의 교회들, 참 어렵습니다. 교회가 마치 코로나의 진원지인 것처럼, 모든 모임은 다 되는데, 교회 이름으로 모이면 불법입니다. 교계에서 성명서도 내고, 국민청원도 올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교계대표들이 총리를 만나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한국의 교회들이 얼마나 깨어 기도하고 있는가? 우리는 또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스스로 점검 할 때입니다.

  

유명한 설교가인 A.W. 토저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가장 보편적인 실수는 하나님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하나님 일을 한다고 바빠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는 거예요. 이 얼마나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말입니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더욱 더 가까워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앞선 기도에 대한 말씀이 나 자신의 영적 삶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두 번째는 공동체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수많은 관계성 속에서 공동체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라는 것은 나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저 사람과 내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근래 한국에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는데, 엄청난 시각의 차이들이 있습니다. 서로 각자의 입장에 서서 절대로 상대방을 용납하지 않고, 내 말만 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관계성을 위해 본문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서로가 뜨겁게 사랑하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혹 힘든 일이 있잖아요? 서운한 일이 생기잖아요? 갈등이 생기잖아요?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때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냥 덮어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관계성은 서로를 향한 뜨거운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온도를 유지하려면 일단 덮어주는 거예요.

  

아이가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서 심퉁을 내고 들어옵니다. 또는 뭔가 잘못해서는 우물쭈물 합니다. 엄마가 물어도 대답이 없어요. 처음에는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러다가 어떻게 하나요? 그냥 덮어주는 거예요. 내 온 몸으로 안아서, 사랑의 마음으로 덮어주는 거예요.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 한 번 보세요. 나하고 똑같이 생긴, 똑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하나라도 있으신가요? 다르기에 우리가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서로 사랑함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로 세워져가는 우리 모든 뉴질랜드 광림의 권속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열심 다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사명 감당과 함께 동역하는 성도님들과의 관계성이 함께 담겨 있는 부분입니다. 10절에 말씀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우리는 다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란 내 것이 없이 주인의 것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가 지금 새벽마다 역대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역대기에 보면 계속해서 왕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앞서 열왕기부터 시작해서 지금 역대기까지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왕들의 통치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서 늘 똑같이 등장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항상 똑같은 패턴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도 청지기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주신 거예요. 저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면 부강의 길로 나아가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면 망하는 길로 갑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선을 행하고, 또는 악을 행하고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지금 내게 주어진 자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느냐? 내 것으로 생각하느냐? 이 차이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삶을 내 것으로 여기느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여기느냐?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신앙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청지기가 될 수도 있고, 악한 청지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선한 청지기가 되라는 권면과 더불어서 1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다시 말해서 내 것을 내가 사용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 근본 목적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기에 내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 다해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헌신의 모습입니다. 언제나 주를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교회에서 봉사할 곳은 많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봉사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신앙의 삶 속에서나, 세상 가운데서나, 주신 사명 힘써 감당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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