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31; 사랑의 꽃향기로 가득한 동산 ( 6장 1, 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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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31; 사랑의 꽃향기로 가득한 동산 ( 6장 1, 2절 )

일요시사 0 1014 0 0

1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가끔 유 튜브를 통해서 동물들의 세계를 접하곤 한다. 그 중에서 한 내용을 소개한다. 사자와 들소의 싸움이다. 원래 들소는 사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들소는 사자들의 좋은 사냥감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이야기는 들소가 사자를 물리치는 내용이다. 


어미 들소 한 마리와 아기 들소가 들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데, 사자 대여섯 마리가 이들을 노려보고 있다가 아기 들소를 공격했다. 그러자 어미 들소는 필사적으로 아기 들소를 지키기 위해서 뿔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사자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어미 들소 혼자서 많은 사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다. 사자들이 어미 들소의 등과 엉덩이 부분을 물고 늘어지고, 아기 들소를 잡아먹기 위해 집요하게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미 들소는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고,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여러 마리의 사자들을 상대로 혈투를 벌인다. 그러다 어미 들소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어미와 아기 들소가 모두 사자의 밥이 되기 직전까지 갔다. 이때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한 무리의 물소 중 덩치 큰 숫소 한 마리가 앞장을 서서 사자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아마 대장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다른 들소들도 대장 숫소를 따라 달려와서는 사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자들이 들소의 뿔에 바쳐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이 되었다. 사자들 중에는 중상을 입은 놈도 있고, 결국 숨을 거둔 놈도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생각하지 않는 본능이 동물들에게는 있다. 사람도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아버지와는 다르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기 뱃속에서 40주 동안 키우면서 자식에 대한 사랑도 함께 자란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극심한 산통을 겪으면서 자식을 낳는다. 자기 배에서 낳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부모의 자식사랑, 특히 어머니의 자식사랑에는 아무 조건이 없다. 


이런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이 하나님의 창조섭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태어날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부터 잉태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자녀 사랑도 자녀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창조주 하나님 안에 잉태되어 있었다. 


에베소서 1장 4-6절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도 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미 잉태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지창조 전부터 이미 하나님 안에 잉태되어있던 하나님의 자녀들은 두 번의 출생을 거치게 된다. 

첫 번째 출생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에 육신의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출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신으로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어떻게 태어났나?


십자가에서 다시 태어났다. 자기 뜻대로 살던 우리의 옛 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택하신 자녀들을 출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극심한 아픔을 수반한 사랑이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죄악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을 하나님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고통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예수님의 부르짖음, 이 절규는 단지 육신의 고통으로 인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늘 아버지로부터 버림 당하시고, 죄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받으시는 아들의 극렬한 영적 고통의 부르짖음이고, 절규다. 


하늘 아버지와 그 아들의 역설적인 십자가의 사랑이다. 


하찮은 동물도 자기 새끼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자기보다 훨씬 센 사자들을 상대로 싸운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식사랑이야 어떻겠는가,,, 그래서 환난이나 고난이나 박해나 칼이나 위험이나 죽음으로부터도, 곰의 발톱과 사자의 사나운 이빨로부터도, 권세자들이나 능력이나 마귀의 극렬한 공격으로부터도 자녀들을 지켜주신다.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돌보심과 지켜주심 안에서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홀로 인생을 걷게 하시지 않고, 함께 걸어가게 하셨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들소 모녀가 사자들의 공격을 당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온갖 위험과 유혹이 넘실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서로를 격려해가며 함께 무리를 지어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셨다. 그것이 교회다.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으로부터 불러내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자녀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엇으로 불러내셨나? 십자가의 사랑으로 불러내셨다. 아버지와 아들의 십자가 사랑으로 불러내셨다. 


그곳은 백합화가 만발하고 꽃밭에서 나는 향기로 가득한 주님의 동산이다. 사랑의 꽃, 사랑의 향기로 가득한 주님의 동산이다,,, 그런 사랑의 동산이어야 한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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