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33;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 6장 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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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33;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 6장 4절 )

일요시사 0 946 0 0

4절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주께서는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시며,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 하신다. 술람미 여인의 어떤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웠을까? 


먼저 술람미 여인이 변화된 과정을 살펴보자. 술람미 여인은 앞에서 마음에 가까이 와 계신 주님을 맞이하지 않았다. 자신의 세계, 자신의 방에 갇혀서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던 것이다. 술람미 여인이 갇힌 자신의 방과 누워있던 침대는 자기 자신의 세계에 갇힌 영적 안일함과 나태함이다. 세상의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기도와 경건의 생활을 소홀히 하면, 주님이 멀리 느껴지게 된다. 주님은 보이지 않고, 세상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술람미 여인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어두운 밤 속에서 주님을 찾아 나섰다. 순찰꾼에게 맞기도 하고, 파수꾼에게 겉옷이 벗겨져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내면서 술람미 여인은 드디어 새롭게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새롭게 만난 주님은 주님의 동산에서 자신에게 속한 양 무리를 돌보고 있었다. 그곳은 백합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향기로운 동산이었다. 바로 주님과 함께 누리는 주님의 나라다. 술람미 여인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고난을 겪은 후에 새롭게 주를 만난 것이다.


술람미 여인은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고백한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3절) 술람미 여인의 이 고백은 고난과 영혼의 어둔 밤을 겪으면서 그녀의 믿음이 한층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앞의 2장 16절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고 고백했었다. 같은 내용인 것 같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앞에서는 내가 중심이 되어, 내 사랑하는 자가 내게 속하였다는 말이 먼저 나왔지만, 어둠 속에서 방황 끝에 주님을 새롭게 만난 다음에는 내가 주님에게 속하였다는 고백이 먼저 나온 것이다. 이런 술람미 여인의 고백은 자기 중심의 믿음에서 주님 중심의 믿음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자기 중심의 믿음이란 어떤 믿음인가?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다. 엄마에게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조르기만 하는 믿음이다. 사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상태에 머물면서 믿음의 진전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 저 문제를 해결해 달라,,, 해결사로서의 하나님만 찾는 믿음, 조르기만 하는 믿음이다. 


주님께서는 마 6:31-33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입을 것,, 단순히 먹고 입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것들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구할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구하지 말라고 하신다. 심지어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나 구하는 것이라 하신다. 

성숙한 믿음은 이것 저것 다라고 울고 짜는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 삶 전체를 맡길 줄 아는 믿음이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삶의 모든 문제들을 받아들일 줄 아는 믿음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믿음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으로 성숙해진 자녀의 모습이다.


술람미 여인에게는 이러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께 속하였습니다. 나의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이런 고백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술람미 여인의 모습을 보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여기에서 ‘디르사’는 사마리아 동쪽에 있는 성읍으로, ‘기뻐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다”는 말씀은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참으로 나의 기쁨이로구나”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사랑에는 차별이 없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은 한결 같고 차별이 없다. 그렇지만 자녀라고 해서 다 똑 같은 것은 아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자기보다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는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해드린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녀들은 부모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낳아주신 것 감사, 길러주신 것 감사,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 것 감사,,,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항상 있다. 효도는 부모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행동이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낳으셨는지를 알고 나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다. 순종은 의무가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절로 따라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감사할 줄 알고 순종하는 자녀를 기뻐하신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좋은 일, 나쁜 일, 억울한 일 할 것 없이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자식까지 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서 벗어나 일어나는 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롬 5:3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고난을 주신 분도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난조차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영원한 영광이 있기에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술람미 여인에게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사는 모습이다. 세상의 유혹이나 고난에 굴하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하늘나라의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게 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자식이 빌빌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는 부모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더더욱 그러하시다.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자답게 당당하자. 하늘나라의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자.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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