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85); 다시 삶으로!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85); 다시 삶으로! <로마서 15:1~6>

우리가 금년에 총 15주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1년 열 두 달 52주를 그냥 걸어왔습니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냥 막 달려왔습니다. 주일마다 늘 주님 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지만, 늘 예배하면서 주의 말씀을 들었지만, 때로는 예배 따로 삶 따로, 말씀 따로 내 행동하는 것 따로일 때도 많았습니다. 한국교계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다 회복되어도 최소 20프로의 성도들은 교회 예배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고 신앙을 놓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인터넷으로 예배하는 자리에 머무는 이들이 많아질 거라는 뜻입니다. 지금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여전히 우리는 주의 몸 된 제단에 나오는 이 시간을 기다려왔고, 이 자체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국을 떠나 해외에 나와 있기에, 그 사모함이 오히려 더 강한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보여지는 교회 건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믿음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모여 봉사하고, 함께 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함께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바른 생활입니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가는 삶입니다. 본문 2절에 말씀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신앙인으로 가장 바르게 사는 게 뭘까요? 이웃을 향해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요? 아주 아주 간단하고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잘해라.” “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해라.” 다르게 말하면 “있을 때 잘 해라.”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가 교회에서 만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선을 행하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모르는 사람에게 아주 친절하고, 내가 잘 아는 사람에게 오히려 함부로 대할 때가 참 많습니다. 지금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 지금 내가 함부로 막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소중한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면 서로의 믿음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인한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어야 되냐? 야채만 먹어야 되냐?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신앙적이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논쟁입니다. 그런데 보면 똑같은 거예요. 서로의 주장은 다르지만 목적은 똑같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 코로나 상황도 똑같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믿음이 있다면 죽어도 모여서 예배해야 합니다.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교회를 향한 핍박입니다.”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런 때는 모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교회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 어떤 주장이 맞는 말인가요?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둘 다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교회의 유익, 신앙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두 주장이 다 틀린 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너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는 사랑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만 붙잡고, 서로를 향해 비난하는 그 순간 둘 다 틀린 말이 되는 겁니다. 맞는 말, 옳은 말, 내 기준에 합당한 말만 주장하지 말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건, 선을 행하고 덕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내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 속에서도, 함께 믿음의 삶을 사는 성도님들 간에도, 또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선을 행하고 덕을 세우는 바른 신앙의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슬기로운 생활입니다. 


이 부분은 예수님을 본 받는 삶입니다. 슬기롭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슬기롭다는 것은 어떤 일을 잘 판단하고, 잘 해결해내는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잠언 9장 10절에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따라서 슬기로운 자를 신앙적으로 설명하면,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에게 원하시는 것,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을 가르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장에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서 너희들의 발을 씻어주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주와 선생이 되었으면, 제자들이 주님의, 선생님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할 터인데,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대로 따라하라는 거예요. 

  

오늘 5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데, 본 받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 중에 가장 귀한 것, 가장 첫 번째가 겸손하신 예수님입니다. 지혜의 말씀이라고 하는 잠언서에도 보면 겸손에 대한 말씀이 여러번 나옵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에도 계속해서 겸손한 삶을 살 것은 권고합니다. 야고보서에도, 베드로전후서에도 끊임없이 겸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겸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뭔가 가득하면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지식이 가득하고, 내 안에 명예가 가득하고, 내 안에 물질이 가득하고, 내 안에 내 능력이 가득하면 겸손하기가 어렵습니다. 산상수훈 중 가장 먼저 말씀하신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입니다. 심령의 가난함이 있어야,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내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겸손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슬기로운 믿음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즐거운 생활입니다. 


이는 하나됨을 이루는 삶입니다. 여러분! 언제 즐거울까요? 혼자 있으면 즐거울까요? 함께 있어야 즐거울까요? 본문 5절 후반부에서 6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두 번째와 연결되죠. 예수님을 본 받으면 겸손한 모습을 가질 뿐만 아니라, 서로 뜻이 같아집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이러한 모습이 이루어지면, 즐거운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서로 뜻이 같아진다고 해서, 서로 한마음을 품는다고 해서 모든 게 다 똑같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앞서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모두 다 예수님을 잘 섬기려는 마음은 같은데, “음식”에 대해서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서로 뜻을 같이 함에 있어서, 한마음을 품어 감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게 붙잡아야 할 것은 “나처럼 너도”라는 생각을 일단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간에 똑같은 날짜에 시작을 해도 세 가지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딱 지금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또 하나는 “왜 이렇게 늦게 합니까?” 또 하나는 “왜 이렇게 빨리 합니까?” 의견은 세 가지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다 똑같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따라서 우리가 같은 마음을 품고, 한마음으로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나됨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 속에서, 교회 안에서 하나됨은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광림교회 5대 전통 중에 마지막 다섯 번째가 무엇인가요? “일치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일치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들을 날마다 더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늘 즐거움이 가득한 거죠. 우리에게도 이러한 하나됨의 모습이 이루어짐을 통해, 즐거운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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