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41;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 7장 6-9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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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41;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 7장 6-9절 )

일요시사 0 871 0 0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7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8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9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지난 며칠 동안은 비도 오지 않고, 낮에는 봄 햇살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니 마음까지 즐겁다. 잔디 색깔도 햇살을 받아서 신선한 초록빛이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특히 이른 아침 이슬 맺힌 잔디에 햇살이 내리면, 마음을 홀딱 빼앗길 정도로 사랑스럽다. 


왕은 술람미 여자의 화창한 아름다움에 온 마음을 빼앗겨 즐거워한다.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6절)


우리의 왕이신 주님께서도 아름답고 화창한 성도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시며, 즐거워하신다. 주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을 다 사랑하시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주님의 마음을 빼앗는 화창한 성도가 있다. 


어떤 성도들일까? 


7장 1절에서 9절까지 나와 있는 모습의 성도다. 왕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술람미 여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성도의 아름답고 화창한 모습을 즐거워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늘 마음 중심에 왕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지 않는 성도가 어디 있겠냐 만,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믿음의 역사가 그렇다. 


사사기 21장 25절 그 때에 이스라엘이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며 출애굽 후 가나안을 정복하고,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 약 삼백 년 동안의 일을 기록한 책이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떠나 심하게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사기는 타락의 핵심이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왕이 없어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왕이 없어서,,,


당시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과 달리 왕이 없었다. 그런데 사사기는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에는 사람이 세운 왕이 아닌, 진짜 왕이 계셨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셨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이다.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각자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생각대로,, 

사무엘상 8장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구할 때의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는 모습을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크게 보면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이 왕이 되고자 하는 역사다. 그래서 말라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멸망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통렬하게 말씀하신다.


말라기 3장 7-10절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종종 십일조의 축복으로 인용되는 구절이다. 십일조와 봉헌물을 바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뭔 돈이 필요해서, 돈 때문에 자기 백성을 저주하시고, 멸망 당하게 하시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중심의 문제다. 너의 왕, 너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다. 십일조는 단지 수입의 십 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이다. 


십일조를 잘 내서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 되심을 고백하는 신앙심으로 사는 성도가 하나님의 참된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뿐 아니라, 자기 삶과 그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이 왕이신 주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어둠의 시간도 왕의 사랑 안에 있는 왕의 시간이다.


주께서는 눅 9:23에서 말씀하셨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주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실 수 없다. 


디모데후서 3장 5절에서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한다. 핵심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과 세상의 영광을 사랑하는 것이다. 


왕께서는 경건의 모양만 갖춘 자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경건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왕 되심에 있다. 자기 자신도, 돈도, 세상의 명예나 영광도,, 결코 우리의 왕이 될 수는 없다.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말씀하신다.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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