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89) 참 소망을 가진 자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89) 참 소망을 가진 자 <베드로전서 1:3~9>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는 로마의 네로 황제에 의해 기독교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인 A.D. 64년경에 베드로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 자체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 그저 신앙생활하는 것 자체가 힘겨운 때였습니다. 

  

그 시절 교회를 향한 박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가? 네로는 기독교인들에게 짐승의 털가죽을 입혀서 개에게 물려 죽게 하기도 했고, 짐승들에게 찢겨 죽게도 했습니다. 때로는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거나 또는 화형에 처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정원에 나무를 세워 기독교인들 묶어놓은 후 기름을 발라 화형에 처함으로써, 인간횃불로 정원을 밝히게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그 참혹한 박해와 환란을 이겨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해서 쓴 서신이 베드로전후서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전후서에 기록된 내용들을 보면, 힘겹고 어려운 시험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끝까지 견디어 낼 것에 대한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이단세력들의 미혹이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말 것에 대한 권고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후서를 가르켜서 “소망의 서신”, 또는 “용기의 서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 힘겹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용기를 갖고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이와는 다릅니다. 우리에게 네로황제의 박해와 같은 생명의 위협은 없습니다. 지금 코로나의 상황과 맞물려 한국 교회가 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향해, 성도를 향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전세계의 많은 교회들이, 선교지들이 참 어려운 현실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신앙의 현실,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믿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오늘의 제목입니다. “참 소망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라.” 함께 말씀을 통해 “참 소망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늘에 속한 자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처음에 딱 두 절에 걸쳐서 간단한 인사의 말을 전한 후에, 곧바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권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3절과 4절에서 가장 확실한 복음의 메시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합니다. 자, 베드로가 왜 이렇게 서신을 시작하자마자, 아주 급박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을까요? 처음에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초대교회는 박해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부활의 소망이죠. 지금 우리의 육신은 썩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욕망은 더러운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은 다 쇠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 간직한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는 자의 삶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비록 땅을 밟고 살아갈지라도, 나의 소망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 있습니다. 

  

헬라어로 사람을 가르켜서 “안드로포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위를 바라보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왜 사람을 가르켜서 위를 바라보는 자라고 했을까요?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짐승은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봅니다. 지금 당장 내가 먹을 것만 바라봅니다. 이후의 계획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고개를 땅에 쳐박고 땅만 바라보며 사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하늘을 보자는 것은 지금 현실의 문제 속에 너무 묶여 있지 말고 더 먼 곳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이게 다 소망이잖아요. 

  

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저 앞날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현실 속에 묶여 내 코앞에 있는 문제에만 마음 빼앗기지 말고, 부활승천하심으로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하늘에 속한 자로서의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입니다.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어서 5절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따라서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던 중에 오순절 날이 이르러 120명의 성도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역사하심, 우리가 지키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완전한 사랑이 되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주로 믿음의 대상이 되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힘과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은 마치 우리에게 소망과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인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의 뜻은 “변호인, 대변자, 중보자”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예 직역을 하면 “옆에서 부른다.” “옆에서 격려한다.” 이런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내 옆에 있는 위로자, 격려자, 보호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6절에 계속해서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이 말은 지금 이미 시험으로 인한 근심을 겪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앞서 5절에 말씀한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주실 터이니, “믿음의 확실함”으로 이겨낼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 계속 격려합니다. “너희에게는 믿음의 확실함이 있어.” “지금처럼 불과 같은 시험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어.” 왜? 성령께서 너희를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과 늘 동행함으로 예수 믿는 자의 향기를 드러내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완전한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참 소망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에, 어떤 증거가 드러나야 할까요? 앞서 말씀드린 “하늘에 속한 자의 삶”이나,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 세 번째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우리가 참 소망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삶 속에 기쁨이 넘쳐나야 합니다. 참 소망을 가진 자로서의 기쁨은 지금 당장 무엇이 잘 되어서 기쁜 것과는 다릅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지금 당장의 기쁨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 우리에게 있어져야 하는데, 그게 바로 소망 중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지금 당장 여러 가지 시험으로 근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크게 기뻐함”을 말씀합니다. 8절도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당장은 예수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당장의 삶의 결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오늘 9절에 결론처럼 말씀합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세상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확신이 있기에, 지금의 현실을 뛰어넘는,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완전한 기쁨입니다. 

  

우리의 완전한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영원한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께서 나의 반석이 되어주심을 믿고 의지할 때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 가지고 나아갈 때에,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 안에 거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주의 은혜 안에서 완전한 기쁨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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