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90) 하나님의 은혜의 때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90) 하나님의 은혜의 때 <이사야 41:17~20>

우리가 성경적으로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을 합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의 시간이고, 또 하나는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지금도 이 시간이 흐르고 있죠. 반면에 카이로스의 시간은 뭔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주어지는 그 때를 뜻합니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딱 부어지는 그 순간입니다. 

  

일반적인 삶 속에서 예를 들면,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와 같은 시간입니다. 남녀 관계에서 뭔가 마음의 불꽃이 딱 통하는 그런 순간입니다. 문제를 풀다가 뭔가 방법이 딱 생각나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런 특정한 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인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딱 나에게 임하는 그 순간, 뭔가 소망하고 바라던 기도의 제목이 딱 응답되어지는 그런 순간입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응답은 때가 있습니다. 


오늘 서론에 때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을 했는데, 삶의 많은 부분이 때와 연관됩니다. 지금 우리가 호렙산 기도회 기간을 지내고 있는데, 기도 중에도 늘 때를 정해놓고 기도하곤 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이 일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 건물이 팔려야 합니다. 언제까지 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구체적인 시간계획까지 다 세워놓고 기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정해 놓은 그 때가 지나갔을지라도 끝까지 하나님만을 붙잡을 줄 아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7절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언제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이 말씀은 정말 물이 필요한 그 때에 물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은 이미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물을 구할 때, 물을 주시는데, 그냥 주시는 게 아니라, 갈증으로 혀가 마를 때에, 다시 말해 아주 꼭 필요한 때에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전체에 있어서 지금 내가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의 제목이 언제 어떻게 응답되는 게 가장 좋을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금은 급박해 보이지만, 그리고 내가 정한 기한에 응답되지 않아서 마음에 낙심도 되지만, 후에 지나고 보니, 내가 정한 기간보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응답되어진 것을 보면서, “아 그 때가 아니라, 지금 응답된 게 얼마나 감사한가?” 이렇게 생각되는 경우. 저만 그런가요? 아마 우리 성도님들 모두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내 갈증, 내 갈급함을 우리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기다릴 줄 아는 지혜입니다. 우리의 목이 마르는 그 때, 갈증으로 우리의 목이 마르는 그 때, 우리조차도 그 때를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때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우리의 할 일은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응답은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이미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를 살펴보시다가, 가장 합당한 때에 응답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기도응답의 때.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제목마다 하나님 정하신 가장 합당한 때에 응답받는 축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본문 18절과 19절 말씀을 잘 보시면, 여섯 가지의 내용이 나옵니다. “헐벗은 산에 강, 골짜기 가운데 샘, 광야가 연못 되고,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고, 광야에 나무를 심고, 사막에 나무를 두시겠다.” 이 여섯 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뭘까요? 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말하는 가능과 불가능은 누구의 기준인가요? 우리 인간의 기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비춰 볼 때 불가능한 일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일을 누가 하시겠다고 하십니까? 말씀에서는 “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시고자 뜻하시면 홍해도 가르십니다. 요단강을 멈춰 세우기도 하시고, 하늘에 떠 있는 태양까지도 멈춰 세우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할 때 다른 것은 생각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뜻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기에, 가능이냐 불가능이냐를 말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깨달아 아는 것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가 되는가? 

  

우리 성도님들 기도하시는 제목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거의 이 세 가지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건강, 물질, 자녀” 그런데 과연 이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인지는 스스로 의문이 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간구하는 많은 기도의 제목들은 어찌 보면 몸통 뿐인 기도일 때가 많습니다. 이 모든 기도를 마음껏 하시되, 하나를 더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내 자녀가 좋은 곳에 취업하게 하옵소서.” 그 전에 “하나님! 내 자녀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하나님과의 친밀한 영적 교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실한 신앙의 삶. 이것을 먼저 구할 수 있는 믿음의 자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기도의 응답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생각나는 믿음의 인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다니엘도 그렇고, 다윗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큰 인물로 쓰임 받은 성경의 인물들은, 아니 세상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성공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면, 먼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저들은 한결같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먼저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 좋은 엔진을 달고, 땅을 깊숙이 파서 기초를 든든히 다지는 과정들이 있었다는 거죠. 

  

우리가 지난 모든 시간 동안에 매 주일 주님 전에 나와서 예배하고, 새벽마다 주님 앞에 나와 간구하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들 중에 때로 힘들고, 유혹이 되고, 낙심되고 하는 모든 순간들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올려드리고,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이루시는, 기도응답의 축복이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합당한 때에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간구가 주의 뜻에 합한 기도가 되어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여기까지가 앞선 두 가지 내용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기도가 응답되었으니, 끝인가요? 기도 응답 받고 거기서 멈춰버리면 마치 열 명의 고침 받은 한센병자들 중에 그냥 돌아가 버린 아홉 명의 한센병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돌아온 한 명은 더 크신 축복의 선언을 받게 되는데,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라.”는 구원의 선포였습니다. 기도 응답의 완성은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응답받음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간구와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단순히 우리의 간구가 간절해서, 우리가 불쌍해 보여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인 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20절도 보십시오.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우리가 기도하는 것, 그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은혜이고, 기도에 응답 받는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자신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자로 세움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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