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톡톡 33 ; 남의 것을 먹어야

교민뉴스


 

백동흠의 일상톡톡 33 ; 남의 것을 먹어야

일요시사 0 1209 0 0

시내 상가 인테리어 일을 하다, 근처 한국음식점에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어라, 중화루 이사장 부부 아닌가? 어인 일로 시내 한식당에 오셨나?’


육개장을 먹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티슈로 닦으며 천장을 바라보는 이사장.

빨간 순두부찌개를 함께 먹다 남은 티슈를 남편 앞에 슬며시 내미는 그 아내.

얼큰하고 진한 육개장 국물을 마시다 이 사장의 시선이 내 앞에 멈칫했다. 


-아니, 목수 사장님 아니세요? 우리 집만 단골인 줄 알았는데 여기도 오시네요

-근처 목수일 하다 점심 먹으러 왔어요. 육개장과 순두부를 맛있게 드시네요. 

저도 이 사장님처럼 육개장 먹으러 왔어요. 오늘 화요일은 중화루가 쉬어서요.

-아, 그러시구나. 저희 쉬는 날은 안 먹어본 남의 것을 먹는 게 취미거든요


말인즉, 공감이 갔다. 중국집을 십수 년 해왔으니 아무리 좋은 고급 중식 요리도 질릴법하겠다. 함께 고생하는 아내를 데리고 장을 보러 왔다가 특별 외식(?)하는 날. 이 사장 부부의 수수한 모습에 친근감이 더해졌다. 행복은 저런 것,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내 앞에 나온 육개장을 이 사장처럼 땀 흘리고 먹는데, 이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 앞으로 나갔다. 그 부인과 몇 마디를 더 나눴다.


-보기에 참 좋아요. 본인 식당 음식 만들 때는 정성을 다 쏟고, 남의 식당에서 음식 먹을 때는 정말 맛있게 드시네요.

-예, 여기가 우리 부부 쉴 때 단골 식당이거든요. 먹고 나면 기운이 또 나요.


부인이 남편을 따라 나가기에 인사를 드렸다. 배가 찼으니 또 식자재를 사러 가는 모습. 뉴질랜드에서도 오클랜드, 그 가운데서도 하버 브리지 북쪽 지역에서 교민들의 향수를 채워주는 중식당. 연배도 나와 비슷해 공감대를 이루는 게 많았다. 자식 독립시킨 일, 부모님 여읜 일, 여행 다년 온 일... . 짬짬이 나눈 속에 동료의식이 붙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일어섰다. 나도 오후 일을 하러 가야지.


-사장님, 오늘도 육개장 속이 꽉 차게 들었네요. 큰 에너지를 받았으니 오후 남은 일도 잘 마무리되겠어요. 여기 계산요.

-어? 아까 중국집 사장님이 음식값 치르고 가셨는데요.

-예? 그 양반, 이래서. 천상 다음에 또 그 중식당으로 가지 않을 수 없구먼요. 


-‘남의 것을 먹어야 내 것을 안다? 남이 몰래 사준 것을 먹어봐야 그 사람 속을 다시 생각한다? 나도 받았으니 남모르게 할 선행거리를 하나 찾으라는 말씀.’


뉴질랜드의 한여름, 바람은 청량했다. 11월 하늘이 한없이 푸르고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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