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47;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 8장 8-1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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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47;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 8장 8-10절 )

일요시사 0 908 0 0

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9  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유방은 성도들의 마음의 열매를 상징한다. 아직 유방이 없다는 말은 주님을 사랑하지만, 아직 마음에 주의 사랑이 열매를 맺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다. 


술람미 여자의 오라비들은 동생이 아직 유방이 없다고 걱정하며, 그가 청혼을 받는 날을 위하여 행동에 나선다.


그가 성벽이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9절)


술람미 여자를 성벽에 비유하였다. 성벽은 담을 쳐서 만든 것이다. 


우리 안에는 두 마음이 있다. 세상의 유혹과 마음의 욕심에 이끌려 살고 싶은 마음과 유혹과 욕심을 단절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곳에 은 망대를 세운다고 하였다. 성벽은 욕심과 유혹을 따라 살던 옛 생활을 격리시키는 것이고, 망대는 성을 침범하는 외부의 적들을 감시하는 곳이다. 


마음을 유혹하고 욕심을 부추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또 마음을 어둡게 하고 약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라는 말이다. 세상적인 욕심, 옛 습관, 시기, 질투, 분노, 또한 낙담과 절망과 두려움 등 마음을 주님으로부터 빼앗아가는 모든 것들이다.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고 절망 가운데 지내던 29살 청년이 백혈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던 9살 소녀로부터 받은 사랑 이야기를 지난 회에 소개한 바 있다. 어린 소녀는 죽음을 앞두고 청년에게 편지를 남겼다.


“아저씨!! 나 정혜야,,, 음,,, 이제 저기 수술실에 들어간다,,, 옛날에 옆 침대 언니도 거기에서 하늘로 갔는데,, 정혜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저씨 내가 만일,, 하늘로 가면,, 나 아저씨 눈 할게,,, 그래서 영원히 아저씨랑 같이 살게,, 아저씨랑 결혼은 못하니까,,”


청년은 자신의 눈을 내준 어린 소녀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눈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면서 우리를 살리셨고, 그 사랑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그 사랑 안에서 깨어난 술람미 여자는 이제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노래한다.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10절)


술람미 여자의 마음에 열매가 맺힌 모습이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다고 하였다. 주께서 보시기에, 이제 하나님과 화평을 얻은 자 같다고 인정을 받는 모습이다.

술람미 여자는 영혼의 어둔 밤이라는 깊은 방황 속에서 주의 사랑을 새롭게 만났다. 주의 사랑이 우리 안에 화평의 열매를 맺기까지는 기나긴 고난의 밤을 거쳐야 한다.


수 년 전 기나긴 고난의 밤을 보내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기도에 몰입하는 가운데 입에서 이상한 단어가 계속 나오는 일이 있었다. 입에서 ‘사브라,, 사브라,, 사브라’ 하면서 어떤 알 수 없는 단어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S,, A,, B,, R,, A,, 영어 스펠까지 마음에 보였다. 물론 모르는 단어다. 아무래도 무슨 의미가 있는 단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글로 검색을 해보았다. 


사브라는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에서 피어나는 꽃의 열매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주께서는 왜 이 단어를 내게 주셨을까,, 기도하면서, 기도 후에도 내내 ‘사브라’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막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 목회가 사막 같으냐? 교회가 사막 같으냐? 네 삶이 사막 같으냐? 너는 사브라다. 내 사랑 안에서 더 이상 사막은 없다.”


사실,, 목회가 사막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교회가 사막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삶이 사막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주의 사랑 안에 있는 목회는 사막이 아니다. 주의 사랑 안에 있는 교회는 사막이 아니다. 주의 사랑 안에 있는 삶은 사막이 아니다.


오히려 사막에 뿌리를 내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이사야 43장 19-21절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이는 주님이시다. 십자가에서 쏟으신 보혈은 사랑의 피다. 주의 사랑이 강처럼 흐르는 곳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고, 하나님을 위하여 지으신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사막에서 탄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사막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신다.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막에서도 우리가 입을 벌려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신다. 


주의 사랑 안에서 더 이상 사막은 없다. 사막이 될 수가 없다.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볼 품이 없고 거칠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속 살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고 한다. 


술람미 여자의 모습이 이렇다. 피부는 검게 타고, 게달의 장막 같이 거칠기 짝이 없지만, 그 마음 안에는 주의 사랑이 꽃피고, 그 열매가 열려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풍요가 넘치고, 부족한 것이 없는 초원이 아니다. 오히려 메마르고 삭막한 사막에서 뿌리를 내리고, 아름답게 피어나 열리는 사브라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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