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94);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94);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0:1~11>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이전 4주 동안의 기간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다른 말로는 대림절, 또는 강림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참 하나님께서 참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대속의 죽으심으로 참 생명을 위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구원과 영생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이 은혜를 충만히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새로운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록한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분열왕국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 지금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라가 갈라져 있지만, 이제 곧 저들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겪게 될 것입니다. 끊임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거부하다가 결국은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의 앞선 39장까지의 말씀을 보면, 이제 곧 저들이 겪게 될 패망과 포로됨이라는 아픔의 역사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오늘 이사야 40장에 이르러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회복의 역사를 말씀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이사야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심판의 때를 선언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회복의 날이 있음을 예언의 말씀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이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들려졌습니다.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현재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이 기록된 때는 주전 2700여 년 전, 예수님 오시기 700여 년 전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진 것은,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을 통해 내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강절 첫 번째 주일에 우리에게 선포된 말씀, 그 안에 담겨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한 세 가지 말씀의 외침을 통해 그 은혜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첫 번째 외침입니다. “위로하라.” 


바라기는 우리 하나님의 위로하심의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문 1절에 두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말씀하죠.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서 이렇게 반복적으로 말씀하는 것은 강조의 의미가 담겨 있는 동시에, 반드시 그렇게 하게끔 확증되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40장 1절은 이사야서 후반부 전체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사야 40장부터는 이제 하나님의 위로하심의 은혜가 시작되어짐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아픔이었지만, 오늘은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고, 내일은 생명의 새역사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안에 담겨진 위로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곧바로 2절에 말씀하는데, 이제 노역의 때가 끝이 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고, 이미 받을 징계를 다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죄 값을 다 치루었기에 이제는 회복의 역사만이 남은 것입니다. 여기서 위로는 단순히 동정이나 아픔을 나누는 표현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새로운 회복의 시대가 열려졌으니, 지난날의 아픔에 묶여 있지 말고 더 힘있게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지금 포로기 억압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악 속에 빠져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 인간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아픔 가운데, 낙심 가운데, 절망 가운데, 답답함 가운데, 세상살이 가운데 지친 우리 한 영혼 한 영혼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는 박차고 일어서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바라보자.”는 선포입니다. 

  

하나님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상처를 싸매시는 위로, 주저 앉은 자를 어루만지시는 위로, 그것을 넘어서서 새 힘을 가지고 더 큰 역사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외침입니다. “예비하라.” 


바라기는 우리 하나님의 오심을 대망하는 예비하심의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절부터 5절까지 말씀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을 광야로 표현합니다. 사막으로 표현합니다. 뿐만 아니라 골짜기로, 언덕으로, 고르지 아니한 곳으로, 험한 곳으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비단 지금 포로기 이스라엘의 모습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광야와 사막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믿는 자로서 감사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앞까지는 똑같습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에, 광야와 같고, 사막과도 같은 현실, 골짜기와 언덕, 고르지 않은 곳과 험한 곳을 지나는 현실은 다 똑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자가 다른 것은 오늘 본문에 다시금 말씀하시죠.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어서 마지막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회복의 미래를 약속하시는 분, 선포하시는 분이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할 일은 정해진 그 회복의 역사를 위한 준비, 예비하는 것 뿐입니다.  회복의 역사를 이루실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예비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주님 맞을 준비입니다. 비록 지금 광야와 같은 삶일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임하시면 푸른초장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선포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그럼 어떻게 예비할까요? 정결함으로 주의 오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겸손함으로 주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대강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데, 우리가 그냥 그대로 맞이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할 수 없는 것, 감당치 못 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내가 주님께 올려드릴 작은 정성, 시간, 헌신. 이것을 귀한 것으로 받으시고, 우리를 지혜롭다 인정하시고,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주의 오심을 예비함으로 주의 임재를 체험하는 지혜로운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외치라.” 


바라기는 우리 하나님의 오시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외침이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6절 말씀에서 무엇이라 외칩니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어서 9절과 10절까지 이어서 보면 두 가지의 외침이 나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또 하나, “강한 자로 임하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하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보라.” 이 믿음의 외침이 우리 안에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어떻습니까? 오늘 7절 후반의 말씀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라는 말씀처럼 풀과 같은 인생입니다. 다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의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붙잡는 것이 무엇입니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 하나 붙잡고 사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외치는 거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보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 현실에 묶여서 안 된다고 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은 지금도 포로의 생활에 묶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회복의 미래를 바라봅니다. 선포하며 나아갑니다. 그럴 때에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빛이 나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오심을 “바라 보라.”고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의 선포를 받은 우리 역시 세상에서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주님이 오십니다.” 믿음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주님 오심을 외칠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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