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한인 발자취' 유튜브 영상으로...

교민뉴스


 

'뉴질랜드 한인 발자취' 유튜브 영상으로...

일요시사 0 1224 0 0

뉴질랜드 한인 역사를 남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뉴질랜드는 대한민국 국가나 국민이 먼저 알고 찾아온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고, 뉴질랜드가 먼저 전쟁 중인 대한민국을 찾아왔다. 1950년 한국 전쟁때, 뉴질랜드군(Kayforce)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뉴질랜드는 한국을 가난과 추위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남한과 북한의 한민족의 전쟁이었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면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의문이 든다.


“뉴질랜드 한인 발자취” 유튜브 영상의 두번째 준비 모임으로 변경숙 한인 회장을 만났다. 유튜브 스티봉여행,  PD  형정우, 유튜브 Blessing World 153, 작가  윤세옥, 유튜브 NZYTV, 촬영 김재진, 일요시사 발행인, 홍보 및 섭외 권우철 등 네 사람이 모두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13년 전에 <뉴질랜드 한인사>를 발간했을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 결실이었습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유튜브가 잘 알려진 세상이 되었으니, 좋은 영상으로 뉴질랜드 한인 역사가 잘 기록되어지면 좋겠습니다. 



국제 결혼으로 웰링턴 정착과 선원, 한인들과의 만남


처음 제가 뉴질랜드에 온 것은 1980년 5월이었습니다.  남편(Roy Wilson)은 한국 선원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편지를 주고 받다가 결혼을 결심하고 웰링턴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사람들은 대사관 직원과 몇몇 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 Roy는 뉴질랜드 포스트 은행(New Zealand Post Bank)에서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한국 원양 어선이 웰링턴 항을 비록, 여러 지역의 부두에 정박했어요.  당시 CCC 교회와  선원회관( Seaman’s 


Club)을 통해서 한국 선원들이 입항하면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며 모임을 가졌어요.특히 한국 전쟁때 군목이셨던 스미스(Smith) 목사님은 수많은 한인들과 한국 선원들을 돌보며 헌신적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셨어요. 정말 한인들에게 영적 지도자로서 고마운 분입니다. 


우리와 즐거운 교제를 가진 선원들이 출항 할때는, 너무나 아쉽고 서운해서 배가 멀리 사라질때까지 손을 흔들었어요. 사실, 가슴아픈 추억들도 있었습니다. 배가 침몰해서 선원들의 절반이 죽는 일도 있었고, 기름 폭발로 전신 화상을 입은 선원들도 있어서 병원 통역을 하면서 돌보기도 했습니다. 



남편 Roy와 함께 한인들의 생활 소개 및 봉사


제 남편과 저는 한국 선원들 또는 한인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저는 통역을 했고, 남편은 발벗고 나서서 교민들의 수많은 일들을 도와 주었어요. 지금의 에이전트들이 하는 일들, 집 얻는것, 은행계좌 오픈(open)하는일, 투자 상담, 아이들 학교 소개, 쇼핑 등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또한 세무신고나 키위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있을때, 한인들의 어려움을 알아봐주는 역할을 했어요. 그때는 한인 변호사나 회계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가 투자 이민 제도가 시행되어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입국을 했습니다. 그분들의 눈과 귀가 되어 드리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저도 처음에 와서 적응하는데 많이 힘들었거든요.


또한 웰링턴 한인회에서 남편이 재무 담당으로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철저한 규칙대로 사는 영국 사람답게 재무 관리를 했어요. 그리고 저는 문교부 산하 다문화 교육 고문( Multicultural Education Advisor)으로 학교에 파견되어  교사들에게 한인 문화를 소개,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문화와 뉴질랜드 문화가 다른 점이 너무나 많았기에 오해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았는데 교사들에게 직접 소개하면서 많은 완충 역할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사들과의 눈 마주침(Eye Contact) 이 우리는 예의에 어긋난 것으로 생각하는데 여기에서는 무시한다고 생각을 하는거죠. 또한 학생들이 담배를 피거나 잦은 결석 등 사고를 쳐서 학교의 편지에서 Stay at home 하면 퇴학을 의미하는데 부모들은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학교가면 되는 줄 알았어요. 


 또한 남편은 오클랜드 한인회를 통해서 스폰서쉽( Sponsorship)  받는일을 해서 여러 사람들이 영주권을 받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 단체들이 비영리 단체로 등록하는 일에 관여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초기 한인들과의 모임, 한인 행사들의 추억


 저보다 먼저 웰링턴에 오신 몇 가정이 계셨고, 서로 모임은 종종 있었습니다. 대사관 주재 모임도 있었고, 코리안 데이 (Korean Day), 코리안 나이트( Korean Night), 그리고 한뉴 친선 모임(Korean & NZ Friendship Society)모임들이 있었습니다.  행사 때마다 한복을 입고, 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한국의 모습을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한인의 날 행사를 할때는 태권도 시범도 있었구요.  대사님 관저에서 모일때는 식사를 서로 나누고, 윷놀이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해마다 8.15 광복절 행사 교민 모임을 했어요. 그날은 제 남편이 생일이라서 생일 파티를 해주셨어요. 그때, 이곳은 떡이 없었는데, 호주에서 공수해 오기도 했었습니다.


박태양씨 가정은 저희처럼 3남 1녀 였어요. 그는 개인 성품이나 역량, 영어 실력 등이 훌륭해서 한인들의 모범을 보이기도 했어요. 한현순씨는 아들만 3명이 있었는데, 남편이 한국음식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가끔 우리집에서 식사를 함께 했어요. 또한 우준기 박사님은 늘 스마일 맨이셨어요. 싫은소리 안하시고, 과묵한 분이셨죠. 나중에 만난 홍성옥 박사님도 소신이 곧은 분으로 부인도 산파(Midwife) 하시면서 두 분 모두 좋은 일을 많이 하셨던 것들이 기억나네요.



오클랜드로 이주, 본격적인 한인들의 도우미 역할


1992년 말에 오클랜드로 이사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인 점수제 이민으로 오클랜드에는 교민 숫자가 점차 늘어났습니다. 10년 이상의 웰링턴 생활을 바탕으로 오클랜드에서는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주로 통역하는 일이 많았는데, 경찰서에서 한 밤중에 오는 전화가 제일 힘들었어요. 음주 사고도 많았고, 살인 사건 등도 있었어요. 하지만 병원 통역 사역은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한국학교, 브라운스베이 시니어 클럽(Browns Bay Senior Club) 그리고 지금하고 있는 JP (Justice of Peace, 지역 판사 역할) 등은 무보수 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하고 있습니다. 


2005년 4월에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영국 여왕 훈장(Queen Service Medal, QSM)을 받았어요. 20년 넘게 한-뉴 간의 민간 외교관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도 받았다고 들었는데, 제가 한인 역사상 처음이었어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제 남편이 고인이 되었지만, 제가 한인들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Roy의 덕분이었어요. 그는 한인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모든 것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사랑했었습니다. Roy는 2006년 재뉴 한인회로부터 특별 공로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포장(Civil Merit Medal)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뉴질랜드 한인 발자취”는 뉴질랜드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고 삶이다. 서로 부딪히고 힘들었던 인고의 세월도 있었고, 행복하고 즐겁고 유쾌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이민의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먼저 왔고, 먼저 겪었고, 먼저 아파했었기때문에 선을 베풀고,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수혜자이든 아니든 나보다 이전에 뉴질랜드에 정착하여, ‘현재’를 있게해 준 모든 한인 1세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내 주변을 살피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뉴질랜드 한인 발자취” 의 작가 윤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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