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01) 나를 따라오라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01) 나를 따라오라 <마태복음 4:18~25>

사람들은 누구나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합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상급학교의 진학이라던가, 취업이라던가, 사업의 성공이라던가 하는 목표들이 있습니다. 또 장기적으로 보면 내 인생의 성공과 성취라는 목표도 있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새로운 한 해가 주어지면 다들 한 해의 삶 속에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곤 합니다. 그런데 막연히 목표만 세워서는 안 됩니다. 목표만 세우고 무작정 노력만 해서도 안 됩니다. 

  

이 전옥표라는 사람이 자신의 30여년의 현장 노하우를 담은 “킹핀”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합니다. “열심히만 가지고는 안된다. 핵심을 알고 공략하라.” 그러면서 첫 번째로 소개하는 것이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목표에 있어서 “본질을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목표를 잘 세우고 노력을 해도,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열심히만 하는 만년 꼴지”가 될 수도 있다고 조언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 속에서도 본질이 무엇인가요? 오늘 말씀의 제목 이 하나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누가 하신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한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 믿음의 목표를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세워가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믿는 자로서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행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할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부르신 이를 따라가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신앙의 삶은 단순합니다.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나를 부르신 이를 따라가는 것, 그게 바로 신앙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그게 신앙의 삶입니다. 이를 위해 말씀 보고 기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본질이 무엇인가요? 예수 십자가 부활입니다. 십자가에 죽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보좌 위에 계신 주님. 마지막 날 다시금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예수님. 나를 주의 자녀로 부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신앙의 삶은 그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베드로를 향해서, 안드레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야고보와 요한을 향해서도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들은 모두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따라갑니다. 당시 저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몰랐습니다. 메시아로 여기고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랍비나 스승으로 여기고 따라갔습니다. 따라서 이건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죠. 그럼에도 저들이 예수님을 따라간 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이고,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저들도 다 나름의 계획과 목표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자신들이 가진 배를 가지고,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고, 돈도 많이 벌고, 가정도 이루고 복된 삶을 살고자 하는 저마다의 목표가 있었을 터인데,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그 목표가 바뀐 것이죠. 물고기를 따라 가는 인생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생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세상의 삶 속에서 있던 이들이 복음의 진리를 붙잡는 삶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부르신 이를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붙잡고 주님만 따라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부르심의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는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제자들은 일평생 어부로서 살아온 자들입니다. 늘 같은 것을 보면서, 같은 일을 하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생각과 행동하는 것이 거기에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새로운 목적을 제시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물고기를 낚는 일 하지 말고, 사람을 낚는 일을 해라.” 저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목적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됨에 있어서 불필요한 모든 것을 그대로 버립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버릴 것은 버리는 것.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명입니다.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붙잡을 것은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말씀을 받는 우리들도 모두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다 버리고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아서 빨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는 것, 물론 이건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 당연한 사명입니다. 이와 더불어서 내가 정말 힘을 다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게 부르심의 목적을 깨닫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부르심의 목적은 먼저 교회에서의 바른 신앙의 삶입니다. 그 삶이 견고히 서면 몸이 기억한다고, 세상에서도 동일한 믿음의 인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의 목적은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성도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며,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 확장의 비전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깨닫고, 주의 뜻대로 사명 감당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주의 뜻을 위해 보냄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처음 하신 일이 무엇인가요? 본문 23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우리가 흔히 예수님의 3대 사역이라고 말씀하는 내용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바로 실습을 하십니다. 자신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몸과 마음이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때에 어떤 결과가 이루어집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에 관한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지고, 사람들이 각종 앓는 자, 병든 자를 데려오고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저들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25절의 결과입니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하신 것, 또한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 것, 이 모든 것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 오늘 본문에서는 단 네 명의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셨지만, 결과는 25절처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의 무리들까지”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처음 시작은 예수님 한 분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오늘 네 명의 제자들입니다. 그 다음에 다른 이들이 더해져 열 두 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통해서,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 대한민국에도 복음들고 온 선교사들을 통해서, 또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통해서 오늘도 복음의 지경이 넓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명이 지금 우리에게도 주어진 줄 믿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나를 따라오라.” 부르심을 받았으면, “내가 너를 보내노라.” 파송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나를 따라오라.”에는 순종하면서도 주님의 보내심이 필요할 때는 “나 말고 쟤를 보내소서.”라고 말하곤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이 말씀에는 아멘하면서 “나의 멍에를 메라.”는 말씀은 외면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심은 나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담대함으로 주의 뜻을 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연약하고 부족한 내가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작은 부분이나마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까? 그게 바로 사명 감당이고, 열매 맺는 삶입니다. 주의 뜻을 위해 내 삶의 자리로 보내심 받아 사명 잘 감당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43c4e46f522d9bab52625054280111a_1611700809_717456.jpg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