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36) 위로하시는 하나님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36) 위로하시는 하나님 <고린도후서 1:3~11>

우리는 모두 다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의 부담과 걱정과 염려는 점점 쌓여가고, 그러다보니 마음이 우울하고, 힘겹고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위로하심뿐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체적인 주제가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3절에서 7절까지만 봐도, 불과 다섯 절 밖에 안되는 말씀 속에 “위로”라는 말이 무려 열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거룩한 주일, 비록 주의 전에 모이지는 못하지만, 나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으로, 자리로, 마음으로 부르셨습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지치고 상한 마음, 답답함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부르시고, 또한 우리 곁에 함께 하시고, 주의 너른 품에 안아주시는,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하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환란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시점은 3차 전도여행 중에 빌립보에 거할 때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에 소아시아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지만,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환상을 통해서 마게도냐로 보내십니다. 바울은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하심 속에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었을 때에, 2차 때 하지 못했던 소아시아지역 전도를 실시합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들른 곳이 에베소였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아데미신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로 인해 엄청난 위협을 당합니다. 이 사건 이후에 바울은 즉시로 마게도냐로 떠납니다. 거의 도망치다시피 에베소를 떠난 겁니다. 캄캄한 고난의 터널과도 같은 소아시아에서의 전도활동을 마치고,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이르러서 오늘 서신을 기록합니다.

  

1절과 2절에 고린도교회를 향한 간단한 인사말을 마친 후에, 곧바로 3절과 4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시작하는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찬송하리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극렬한 고통과 환란을 겪고 도망쳐나온듯한 사람의 고백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말이 입에서 터져나옵니다. 바울은 왜 갑자기 이렇게 기쁨에 찬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고린도후서 7장 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어느 날, 빌립보에 머물고 있는 바울 일행을 디도가 찾아왔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전하고자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사실 바울은 앞서 고린도전서에서 저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책망한 것에 대해서 마음 속으로 많이 불편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도가 와서는 바울에게 말합니다. “바울 선생님! 우리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달라졌어요.” 이를 통해 바울은 큰 기쁨을 고백합니다. 바울이라고 낙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오늘 바울이 “찬송하리로다!” 다시금 새힘을 얻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본문 4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하나님의 위로하심입니다. 

  

나를 그의 곁으로 부르시고, 아니 친히 내 곁에 찾아오셔서 나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환란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함으로 “찬송하리로다.”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참된 위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5절에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으며, 죽임 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가 됩니다.

  

죄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죄는 관계성을 파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열어주십니다.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위로를 받는 것, 귀한 일입니다. 내가 힘겹고 어려울 때에 누군가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러나 세상의 위로는 모든 게 다 단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참된 위로가 됩니다. 왜요? 모든 사람은 다 이 땅의 삶을 마치는 그 순간을 맞이할 것이고, 누구나 다, 믿음의 유무에 상관 없이, 누구나 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그 죽음의 순간을 맞이함에 있어서,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게 참된 위로입니다. 참된 위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 땅에서 아무리 부요한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살고 있다 해도, 모든 것이 다 잘된다고 할지라도,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없다면,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결국 불안과 염려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지금 힘겹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오늘 바울처럼 살 소망이 끊어진 것과 같은 상황을 만날지라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왜 나에게 이런 질병이 왔는가?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아픔이 왔는가? 원망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할찌라도,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깨닫는 그 순간 참된 위로를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 십자가 구원의 소망 가운데 참된 위로와 평안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함께함이 삶의 위로입니다.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환란 중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하나님께 위로를 받았으면, 나도 환란 중에 있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 받았으면, 그 구원의 소식을 다른 믿지 않는 자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본문 11절도 보십시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빌립보에 머물고 있는 중에, 생각지도 않게 고린도에서 온 소식으로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겁니다. 이쪽이 힘들면, 또 저쪽에서 소망을 주고, 저쪽이 답답하면 이쪽에서 또 위로가 됩니다. 하물며 우리 뉴질랜드 광림에 속한 믿음의 동역자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함께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같은 민족입니다. 같이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 살아갑니다. 또한 모두 다 예수 믿는 자들입니다. 뉴질랜드광림교회라는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머나먼 한국 땅을 떠나서 이 곳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면서, 함께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무엇이 기적인가요? 함께 예배하는 이 순간이 기적입니다. 예수 십자가 구원 받은 나 자신의 지금의 모습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이 기적입니다. 서로가 함께 말없이 손잡아 주어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이 기적입니다. 

  

또한 기적은 오늘 당장이라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전화 한 통하고, 카톡 한 번 보내서 안부를 물어주는 것 자체도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로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 서로의 발을 씻겨 주는 사랑의 섬김 가운데, 우리가 함께함이 삶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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