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4 ; 일, 사람, 풍경

교민뉴스


 

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4 ; 일, 사람, 풍경

일요시사 0 455 0 0

“으~ 우~ 윽! 아~ 아!”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던 뉴질랜드 현지인인 키위 영감, 존이 사그라져가는 소리를 냈다. 샤워실에서 바닥을 닦던 피터가 급히 뛰어나왔다. 세상에나~ 거의 숨이 넘어가는 채로 소파 구석에 쓰러진 존. 피터는 채 물기도 가시지 않은 손으로 존의 어깨를 감쌌다. 존이 거친 숨만 몇 번 내뱉더니 옆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일주일에 세 차례, 거동이 불편한 존의 집에 방문해 돌봐주는 Home Care Service 일. 조금 전, 샤워시켜드리고 소파에 앉히며 새 옷까지 입혀 드렸는데… . 응급상황 앞에서 피터의 가슴이 전기 포트 물 끓듯 타올랐다. 응급 구조대 111로 전화를 거는데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응급대응, Saint John 앰뷸런스가 출발하면서 교선을 계속 이어갔다.


-현재 상태는 어떠냐?/ 숨 쉬는데 어려워하나?/ 이마에 열은 어떠냐? /


체온 유지를 위해 뭐라도 덮어줘라/ 곧 도착한다-


존이 어렴풋이 이런 상황을 감지하는지 감았던 눈을 게슴츠레 떴다. 손을 허우적거렸다. 뭘 잡으려는지 얼굴에 검은 구름이 서려 있었다.


“뭘 찾으세요?”


“으~응~ 내, 와~알~레~~”


“???”


피터가 주변을 둘러봤다. 존 영감이 시선을 주는 쪽으로 따라갔다. 소파 중간에 윗옷이 있었다. 그 옷을 집어 드니 밑에 지갑이 보였다. 존이 그거라는 듯 지갑을 가리켰다.


“Wallet!”


피터가 그 지갑을 집어 존 손에 얹으니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듯 얼굴에 긴장기가 사라졌다. 손에 그 지갑을 꼭 움켜쥐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다시 숨이 가빠졌다. 지갑이 떨어졌다. 돈이 무엇이기에… . 피터가 소속된 Home Care 회사에도 존의 응급상황을 알렸다. 그때,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집을 덮쳐왔다. 곧 응급구조 요원이 의료 장비를 들고 집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존의 몸 상태를 점검하더니 산소마스크를 채운 채 앰뷸런스에 태웠다. 피터가 재빨리 TV 옆에 있는 존의 소지품 가방을 꺼냈다. 양말과 집 키세트 그리고 안경을 넣어주었다. 신발도 챙겨 함께 앰뷸런스에 실었다. 두 달 전에도 비슷한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그 경험에 힘입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앰뷸런스가 떠난 뒤, 바로 Home Care 회사에 진행 결과를 전화로 다시 알렸다.


피터가 거실과 샤워실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치우고 정리했다. 벽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다음 차례 Home Care 노인 집에 가기까지 여유분 시간이 얼추 반 시간가량이 비어있었다. 뒷데크쪽 문을 닫고 거실 창문도 닫았다. 물 한 컵을 떠서 2층 거실 창가에 선 채 마셨다. 앰뷸런스가 지나간 도로 위에 젖은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깔려있었다. 한여름에 그리도 녹색 찬란하던 나뭇잎. 그 스러지는 무상(無常) 속에 존의 얼굴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가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

***


피터가 존 영감의 집에 Home Care를 시작한 건 1 년전 여름날이었다. Home Care 회사에서 존의 신상과 주의 사항에 대해 들었던지라 조심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세 명째 존의 특별 난 성깔에 지쳐 그 집 Home Care 서비스를 그만두었다는 얘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집에 들어서며 존에게 다소곳이 첫인사를 드렸다.존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거대한 몸집에 우락부락한 얼굴에 위축을 느끼면서 잡은 손이 의외로 따뜻했다. 손등에 울퉁불퉁한 파란색 정맥이 돋보였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채 걸음을 옮겼다.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해드리자 John이 자신의 지난 일을 이야기해줬다. 30년을 그 집에 살았는데, 2년 전에 아내를 잃고, 지난해 중풍을 맞았다고. 아내와의 추억에 공황장애까지 있어 요양시설에는 못 가고 있다고. 젊은 시절에는 뉴질랜드 해군으로 세계를 누볐다는 무용담도 들려줬다. 기관 갑판장으로 일도 했던 한 창 때 일, 포상받은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때 찍은 늠름한 기상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었다. 그 사진 앞에서 회상에 잠긴 듯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마치 어린애가 100점 맞았다고 엄마에게 칭찬받고자 하는 모습 같았다. 피터가 계속 맞장구치며 신기한 눈으로 관심을 줬다. 다행히 첫 만남을 무난하게 가졌다.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존의 특별한 성격이 표출되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웅얼거리는 소리로 이야기할 때, 피터가 Pardon? Sorry? 하면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못 알아들어?”


“Communication이 안 되는구먼.”


“English를 그렇게도 못 하냐?”


“Home Care에 얘기해 사람을 교체해야겠네.”


피터에 대한 배려와 격려는 고사하고 무시하는 태도와 억압적인 말투로 밀어부쳤다. 피터로서는 복창이 터질 일이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런 꼴을 보이니 전에 일하던 그만둘 만도 했겠구나.’


답답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Home Care 회사 매니저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매니저가 피터에게 가만히 들어주며 위로하더니 조언을 해 주었다.


“Home Care 서비스를 하다 보면 별별 고객을 다 만난다. 비정상적인 몸과 마음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럴 땐 못 들은체하라. 그땐 할 일만 제대로 하고 돌아와라. 회사에서는 당신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그 고객이 컴플레인해도 당신 입장 고려해 대응할 거니 걱정하지 마라. 세월과 경험이 당신을 강하게 해줄 거다. 힘내라. 피터!”

그로부턴 1년, 매니저의 말대로 세월과 경험이 피터를 그 일에 관한 한 탄탄한 대응력을 갖게 해줬다. 최근 들어선 존이 호의적으로 대해줬다. 무슨 이야기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상책이었다. 설령 마무리 일이 미흡하더라도 잘 들어주는 일이 가장 큰 서비스임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지정된 한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에 역점을 뒀었다. 그때 존의 컴플레인이 더 많았다. 존이 원하는 것은 그 때 그때 자신의 관심 갖는 곳을 긁어주는 일이었다. 때론 존의 바지에 소변이 지려 냄새나고 역해도 일이 일인지라 피터는 묵묵히 처리해갔다. 샤워실로 데려가 씻기고 새 옷을 갈아 입혀드렸다.


피터가 지난해 고국을 방문했을 때, 형님댁 작은 방에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언뜻 떠 올랐다. 88세를 지나던 노령에 노환은 비껴가지 않았다. 지지난번, 고국에 갔을 때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드렸는데, 그 일도 어려웠다. 간신히 아버지를 부축해 집에 있는 샤워실에 가서 씻겨드렸다. 시골에서 땅 파고 농사지어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본인은 허리가 휘는 줄도 몰랐던 아버지 세대.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아이들 교육시키고 살아가면서 마음에 걸리는 게 부모님이었다. 피터가 생업으로 하는 일. 낮엔 Home Care, 오후에는 건물 청소 일. 상태가 안 좋은 것을 새롭게 다시 깨끗하게 하는 일이었다. 일하다 피곤을 느낄 때, 허리를 펴며 주변을 둘러보면 일하는 사람들 모습이 풍경으로 다가왔다. 일과 사람 그리고 그 풍경을 음미했다.


존의 말과 행동에서도 인생 선배다운 지혜가 간혹 묻어 나왔다. 90 나이를 살아오며 몸에 밴 존 나름의 철학. 새겨들을만한 말은 받아들이고 비껴갈 말은 그냥 건너뛰었다. 때론 황당하게 이해 못 할 일도 있었지만, 대거리는 생략했다. 어차피 동양사람이나 서양사람이나 나이 50을 넘으면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걸 피터는 숱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잘 못됐다 여겨지는 남 성격 바꾸기보다 반대 급부로 받아들이려는 자신 마음의 폭을 넓혀가기로 했다.


***


피터가 물컵을 들고 거실 벽에 걸린 액자사진 쪽으로 천천히 갔다. 숨을 고르며 지긋이 바라다봤다. 뉴질랜드 해군 근무로 정년퇴직을 한 존. 전성기 모습이었다. 해군 제복 앞가슴에 훈장과 여러 메달이 노병의 추억을 간직한 채 환하게 빛났다. 바다를 향해 호령하는 함장, 제독 같았다. 그런 분이 나이 90을 먹으며 왕년의 기상은 젖은 낙엽처럼 길가에 떨어졌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그 세월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피터도 자신의 멀지 않은 훗날, 생로병사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았다. 손으로 액자 사진을 만져봤다. 먼지가 세월의 더께처럼 칙칙하게 끼어있었다. 타월에 물을 묻혀 존의 사진 액자를 닦아냈다. 찌든 먼지가 걷혀갔다. 두 번 더 정성 들여 닦아주었다. 티슈로 마무리 손질까지 해 주니 마음이 편해졌다. 사진 속 존이 흐뭇해하는 미소를 보내왔다. 일과 사람 그리고 그 풍경이 오후 저녁나절 햇살 따라 가뭇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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