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1 ; 큰 바위 얼굴

교민뉴스


 

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1 ; 큰 바위 얼굴

일요시사 0 428 0 0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발길. 앞뜰, 나뭇가지에 젖은 가을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오늘따라 발걸음이 흐느적거린다. 종일 내린 비를 맞은 채 서있는 나뭇잎이 살랑거리며 반갑게 맞는다. 


그 속에 깃든 세월이 눈에 지긋이 들어온다. 바라보는 내 눈가에 가느다란 떨림으로 내려앉는다. 나뭇잎에 맺힌 진주 알갱이 눈물이 내 가슴속에 톡 떨어진다.


저녁상을 대하기전, 샤워를 하는 시간. 이 시간, 영락없이 난 한 그루 나무가 되고 만다. 세찬 비에 온몸을 다 맡긴 채 서있는 나무 한 그루. 한바탕 씻김굿이 이어진다. 


하루 종일 운전하며 만난 사람들, 거쳐 지났던 바닷가, 건물 골목들, 오갔던 대화들, 희비가 엇갈린 일 들… . 그 사이사이 쌓인 감정의 알갱이들이 다 씻겨 내린다. 


물줄기가 온 나무를 적신다. 나무 가지 사이사이 스며들고 두들이며 흘러내린다. 나무 밑 둥에 흥건하게 차오르다 쪼르륵 뿌리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된장찌개에 반찬 두어 개. 단출한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니 다시없는 마음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엔 모임이 영락없이 기다리고 있다. 


몸도 찌뿌둥하고 오늘 하루쯤은 빠지고 싶은 데, 문밖에 벌써 한 형제가 차를 몰고 지나며 기다리고 있다. 얼른 준비를 하여 합승한다. 


지나다 또 한 형제를 태운다. 목적지에 다다르니 벌써 들 와서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모임을 시작하며 보니 전원 출석이다. 모두 여덟 명. 박수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진다.


무슨 이야기 들이 이어질까? 각자 직업들이 다양하고, 취향들도 특색 있다. 종일 집 짓는 목수 일하다 온 이, 빨래 옷 분류해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말리다 온 이. 


오클랜드 전 지역 종횡무진 택시 손님 실어 나르다 온 이들, 몸이 불편한 장애자들 옆에서 손발이 되어준 이, 학교 교실 강당 화장실 청소일 마치고 곧바로 달려온 이. 


건물 페인트 작업하고 온 이, 집에 벌려진 앞 뒤뜰 가꾸는 일하다 온 이… ..



경내, 테이블 위에 하얀 면포를 깔고 촛불을 켠 채 빙 둘러앉아 기도하며 한 주일 동안 한 일을 나눈다.



어느 분이 급작스레 병원에 실려가서 병문안 다녀온 일, 장례식장에 일 도와주고 온 일, 양로원에 가서 부서진 야외탁자 고쳐주고 페인트 칠 해주고 온일. 


나이든 어른 분들 봉고차로 태워 다 드린 일, 새로 이사온 이 찾아가 안부 묻고 나눔 가지다 온 일, 생활 속의 좋은 묵상 이야기 들… .


이야기를 나누다 그만 머리를 꾸벅, 졸다 보니 앞 사람도 졸고 앉아 있다. 땀 흘리는 일을 마치고 저녁 먹고 바로 왔으니 그 노곤함에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 


거의가 오십 대 중 후반 된 나이다. 이민 와서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간 가장들이다. 십자가가 걸린 하얀 벽을 등지고 앉아있는 모습들. 


졸음에서 번뜩 깨어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아 이게 무슨 모습인가. 머리들이 둥글둥글 작은 산을 이루고 있다. 바위 얼굴들이 어깨를 붙이고 앉아 있는 모습. 


예전 학창 시절 국어책에서 봤던 큰 바위 얼굴이다. 눈이 다시 번쩍 뜨였다. 멀리 있지 않았다. 모든 이의 거울이 되는 큰 바위 얼굴.


하루 일을 마치고 나온 발길. 한 사람, 한 그루. 나뭇가지에 가을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그 속에 깃든 세월이 눈에 지긋이 들어온다. 


바라보는 내 눈가에 아련한 떨림으로 내려앉는다. 촛불 아래 흘러내린 촛농이 내 가슴속에 톡 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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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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