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92)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2)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92)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2) <로마서 12:14~21>

오늘날 우리들이 정말 많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예배를 많이 드리면, 설교를 많이 들으면, 기도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아예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그렇게 많이 듣는데, 혹 말씀을 듣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지적 만족에만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나는 얼마나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말씀을 듣는 것에만 만족하고,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어가는 힘을 잃어버린채 살아간다면, 그 미래는 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지금 어디쯤 걸어가고 있는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나를 향하신, 우리 교회를 향하신, 오늘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주의 뜻을 행하고자 믿음으로 결단하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삶입니다. 


시편 37편 5절에 말씀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 다 알아서 해 주세요.”하면서 나는 가만히 놀고 있는 건가요? 아니죠.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힘을 다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신 결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은, “내 삶을 하나님께 맡김”이라는 큰 틀 안에서, 특별히 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의 맡김입니다. 그중에서도 악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맡김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와 친한 사람, 나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 나를 배려해주고 존중해주고, 그래서 나와 친밀하고 편안한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관계가 안좋은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맡김은 이런 관계의 맡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사람과의 그 관계를 하나님께 맡겨드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 갚는 것을 네가 하려하지 말고, 나에게 맡기라.” 한 마디로 “악역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가진 원수 갚고 싶은 마음, 복수하고 싶은 증오, 마음에 자리한 상처와 그로 인한 분노까지도 다 하나님께 맡겨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관계적인 갈등, 그 속에 자리한 미움과 다툼과 분노까지 다 맡겨드리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심을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께 맡겨드릴 때에,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주시는 주의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들간의 사이를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과의 사이를 따뜻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회에서는 내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사이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이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이를 잘 조절하고,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먼저 본문 15절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 말씀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공감”입니다. 함께 살아감에 있어서 공감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를 가르켜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는 말씀으로 히브리서에 표현합니다. 여기서 동정이라는 것이 “공감”입니다.

  

이어서 본문 16절입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이 말씀은 겸손에 대한 말씀이죠. 겸손함이 있어야 사람들과의 사이가 아름답게 잘 유지됩니다. 그럼 겸손이 뭘까요? 한 마디로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저 사람과 나와의 눈높이를 맞추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말씀하잖아요.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눈높이를 맞추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인간과 높이를 맞추셨습니다.

  

이어서 18절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건 화목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 보면 전제가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화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화목은 관계의 완성입니다. 그만큼 어렵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화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가르켜서 “화목제물”로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되, 아름다운 관계성 속에서 함께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내가 속한 세상 모든 공동체 속에서, 예수님을 닮아, 서로 공감하며, 언제나 겸손함으로, 또한 화목함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이어서 마지막 21절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결론인 동시에, 본문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 이것이 우리를 향한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그보다 더 큰 선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그 사랑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구체적인 방법까지 본문 20절에 제시합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여기 보면 원수를 향해 선을 베푸는 것을 “그 사람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내 머리에 숯불이 있으면 어떤가요? 그 열기로 얼굴이 벌개지겠죠. 그런데 우리가 어떤 부끄러운 일을 당해도 얼굴이 벌개집니다. 내가 누군가를 악하게 대했는데, 도리어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것을 주면,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벌개집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든지간에, 그 누가 아무리 악한 행동을 할지라도, 우리는 그저 선함을 따르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악을 행한다고, 그것이 나의 악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악행으로 인해 내 선함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악으로 선을 이기라.” 예수님께서 선한목자가 되셨기에, 우리는 선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는 쉴만한 물가와 푸른초장이 펼쳐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언제나 선으로 악을 이기는 진정한 승리자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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