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15) 부활의 승리 고린도전서 15:50~58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15) 부활의 승리 고린도전서 15:50~58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덤 속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을 향해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


그렇기에 부활은 승리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다시 살아나시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주의 말씀을 마주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영광을 내 삶에 누리고자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예수 십자가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 우리 안에 충만한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거룩함을 입는 변화의 때가 있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있는 고린도전서 15장 42절에서 44절에 말씀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때에,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 결국에는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네 삶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요? 언제까지고 썩어지지 않고, 쇠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있을까요? 지금은 100세 시대니, 120세 시대니 하면서 오래도록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끝은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있습니다.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썩어질 것입니다. 다 욕된 것입니다. 다 약한 것입니다. 그러면 절망인가요? 우리 인생은 모든 것이 다 썩어지고 약하여지고쇠하여지는 절망으로 향하는 것인가요? 맞습니다. 세상은 절망으로 가는 것, 죽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목적지가 정해져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인생 속에, 한 분을 만나면 그 삶이 달라집니다.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종착지가 달라집니다. 절망이 아니라 소망으로 바뀌어 집니다. 


거룩함을 입는 변화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 첫 번째 변화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기에, 이미 한 차례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의 변화의 때를 향해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는 그날,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우리는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육신적인 한계에 묶인 삶을 벗어버리고, 완전한 거룩함으로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부활의 영광을 누리며, 주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죽음은 생명의 역사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죽음과 생명이 서로 대결을 펼친다고 한다면, 누가 승리를 거둘까요? 죽음과 생명이 싸우면 그 결과는 반드시 죽음의 승리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그 누구도, 살아있는 것을 죽일 수는 있어도, 죽어 있는 것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생명이 죽음을 이기는 불가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앞서 죽음의 행렬을 막아 세우시고,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신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열라 명하시고,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신 예수님께서, 그대로 무덤에 머물러 계실 수는 없었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사, 생명이 죽음을 이기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인된 몸으로 죽으면, 영원한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가 사함 받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대속을 받으면, 우리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여는 순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는 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완전한 멸망이 아니라, 천국의 문을 여는 순간이요, 영원한 생명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땅의 삶 속에서도 당당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한번 태어나 죽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정해진 길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비극이죠. 결과적으로 절망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백성은 다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음이라는 절망으로 패배의 길로 갈지라도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죽음을 넘어 생명의 길로, 승리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본문 57절에도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나 혼자 걸어가면 죽음이요 패배이지만,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 새로운 생명의 역사요, 승리의 길이 열려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역사, 부활의 승리를 이루시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부활 신앙 위에 흔들림 없는 삶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 속에 언제나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흔들림 없이 십자가 사명을 감당하셨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로서, 흔들림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되지가 않습니다. 왜요?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이 땅에서 한 번 사는 것으로 끝이라면, 수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 마음대로 살면 됩니다. 내 하고 싶은대로 살면 끝입니다. 활의 신앙이 없으면, 그저 오늘만 생각하고 당장의 만족을 위해 살면 끝이라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그렇게 유혹합니다. 


하지만 33절에는 말씀하죠. “속지마라.” 34절에도 말씀합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왜요? 결국 해낸 모든 것, 그대로 거두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삶을 마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을 우리 마음에 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의 모든 삶의 흔적들, 말과 행동과 성품, 삶의 양식들, 누군가를 대하던 태도,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였고... 이 모든 것을 내 기억에, 내 마음에 심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내 삶을 심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 속에 우리의 신앙의 삶을 심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결산할 때가 있습니다. 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견실하고,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열심을 다한 것, 하나님께서 부활의 때에 갚아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흔들림 없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설교를 마치고 함께 찬송할 때에, 우리에게도 “내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믿음의 고백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담긴 찬송 하나면 족합니다. 그러면 내 삶에 거룩한 변화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역사가 내 삶에도 이루어집니다. 부활 신앙으로 흔들림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가 우리 삶에도 경험되어질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부활의 승리를 날마다 누려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6bbdc900d18b832ddaa50502a37b9b68_1681183944_432501.jpg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