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26)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26)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 <히브리서 10:19~25>

할렐루야! 거룩한 주의 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입니다.


김성주 아나운서의 아버지는 조금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여, 시골교회 목회자로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주 – 거룩한 기둥 – 십자가”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말합니다. “제 이름이 십자가라, 일평생 고난의 길이 열려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면, 고난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고난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감당하셨습니다. 정작 우리가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은 고난보다는 영광이요, 혹 고난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은 주의 십자가 고난에는 미치지 못할 미약한 것이요, 나아가 그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난이지만, 동시에 영광입니다. 죽음이지만 동시에 부활의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백성들이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에, 우리 주님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나아가 구원과 영생의 기쁨, 더불어 놀라운 축복의 열매를 허락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먼저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은, 20절의 말씀처럼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19절의 말씀처럼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길을 담대함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본문 21절과 22절에 말씀합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본문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이 말씀이 바로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서 속죄소에 피를 뿌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구약 시대 일년에 한 차례, 짐승의 피를 속죄소에 뿌려 온 백성의 죄사함을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죄사함을 이루지 못합니다.구약시대대속죄일의 제사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죄사함의 역사를 위한 하나의 모형일 뿐입니다.반면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전한 죄사함의 제사가 되었습니다. 흠 없는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자신의 피를 흘려 십자가라는 속죄소 위에 뿌리셨습니다. 이를 통해 온 인류의 죄가 사함을 받는 놀라운 구원의 길, 새로운 살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조건이 이겁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두 가지를 말씀하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입니다. 이게 두 가지이면서도 결국은 또 하나입니다.먼저 참 마음은 22절 전반부의 말씀처럼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난 마음”을 뜻합니다.따라서 내 성품이 성화되어야 합니다. 내 인품이 온화해져야 합니다. 거기에 주를 향한 믿음이 더해질 때에, 그게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참 마음 위에 믿음이 심겨져야 온전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가 믿음을 가졌다고 한다면, 내 성품도 성화되어야 합니다. 인성과 영성이 함께 가야 합니다. 선한 양심과 온전한 믿음이 한 셋트입니다. 그래야 교회 안에서도 또한 밖에서도 존경받는 크리스챤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걸어갈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까지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의 걸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구원의 소망을 품고 걸어가야 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여기서 전제된 것이 있습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미쁘다.”라는 말은 순우리말인데, “믿을만하다.”라는 뜻입니다.“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구원이죠. 우리가 믿는 도리가 기독교, 예수 믿는 것이잖아요. 그 소망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갑니다.2절과 3절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너를 창대하게 하고,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하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 소망이 있기에 흔들림 없이 나아갑니다.


기본적으로사람들간의 약속이라는 것은 100프로 믿을 수 있을 수 있다고 하기에는 참 어렵습니다. 약속이라는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겨지는 경우들이 꽤나 많거든요.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야고보서 1장 17절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변함이 없으실 뿐만 아니라,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완전무결하시고 흠이 없으신, 세상 어떤 것도 하나님께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열어주신 새로운 살 길, 믿음으로 그 길을 걷는 자에게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주신다.” 그럼 우리만 흔들리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만 변함없이 주의 말씀 의지함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 구원의 소망을 품고, 흔들림 없이 끝까지 걸어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우리 모두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본문 마지막 24절과 25절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다 아시죠. 교회는 건물, 그 이전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의 모임 자체가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그러니까 시간이 갈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생겨납니다. 코로나가 완전히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열어주신 그 길은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출발이 “서로 돌아보는 것”부터입니다. 여기서 “돌아보아”는 헬라어 원어로 “카타노우”라고 합니다.“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할 때의 “생각하라”와 본문의 “돌아보아”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가 어떤 의미인가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깊이 생각하라는 겁니다.오늘 “돌아보아”도 같은 의미입니다. 서로 간에 상대방의 입장이나 형편이나 상황을 “깊이 잘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말을 했는지, 왜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먼저 생각해보고,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이열어주신 길,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나 혼자 걷는 길 아니예요. 우리 함께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이를 위해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말합니다. “맞지 않으면 다 끊어버려라.” “나한테 상처 주는 사람 오래 갈 사람 아니니까 빨리 정리해라.” “그런 사람 신경쓰지 말고 살아라.”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해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다 자기 입장에서만 말합니다. 마치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다른 사람 눈에서 티끌을 보기 전에, 네 눈에 있는 들보를 봐라.” 나 자신의 모습을 먼저 잘 살펴야 합니다. 그렇다고 믿는 자로서 무조건 “다 내 탓이오.”하면서 살라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비춰지는 내 모습도 잘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말이 있죠.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저는 정말 간절히 바라기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 좀 서운해도, 때로 좀 힘들어도, 때로 좀 마음이 맞지 않아도, 서로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서,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뉴질랜드광림의 권속들이, 또한 우리 자녀손들이, 예수님이 열어 주신 길을 함께 끝까지 잘 걸어가, 은혜의 보좌 앞에서 주를 찬양하는 그날의 기쁨을 다함께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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