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31)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31)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이사야 43:1~7>

우리가 보통 이 땅의 삶을 가르켜서 “광야와 같은 인생길”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여기에 좋은 의미가 담겨 있나요.없죠. 광야와 같은 인생길은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의 길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광야는 꼭 필요한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광야가 주는 유익이 있고, 광야가 주는 복이 있습니다.광야를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약속의 땅에서의 삶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광야가 있었고, 야곱이나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십자가 사명에 앞서 먼저 광야의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광야의 삶, 그 속에서 잘 준비함을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의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됩니다.그럼에도 분명한 것, 광야가 종착점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민수기 14장 8절입니다.“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르는 해답이 여기 나와 있습니다.“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내가 하나님의 기쁨 되는 삶을 살아갈 때에,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그럼 어떻게 내 삶의 광야 속에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마음을 품을 때에, 하나님의 기쁨 되는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향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세 가지 사랑을 기억하면 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야곱도 이스라엘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세 가지 사랑 중에 첫 번째,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본문 1절에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이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된 모든 믿음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특별한 관계를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새롭게 주신 이름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불러주십니다.창조주 하나님께서 야곱과 이스라엘을 동시에 부르시는 것, 야곱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그 사랑으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야곱은 “발 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속이는 자”라는 의미를 갖습니다.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하겠다고 발버둥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그러는 중에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이 모은 모든 것을 다 강을 건너보내고, 홀로 남아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그 속에서 정말 하나님의 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되고,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사실 이스라엘을 직역하면, “하나님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런 뜻입니다. 세상을 붙잡던 손이 하나님을 붙잡은 손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이름을 바꾸었는데도, 여전히 야곱이라는 이름이 사용됩니다. 여전히 야곱과 이스라엘이 함께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야곱의 본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야곱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도 사랑하십니다.우리를 향한 주의 사랑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자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여전히 죄된 본성을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 담대함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야곱이든, 이스라엘이든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좀 더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야곱을 넘어 이스라엘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물에서도 불에서도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의 세 가지 사랑 중에 두 번째, 구원해주시는 사랑입니다.창세기 47장에 야곱은 바로 앞에서 말합니다. “내 나그네 세월이 험악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렇죠. 야곱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합니까?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야반도주하여밧단아람에서 20년을 지냅니다. 그 사랑하는 아들인 요셉이 죽은 줄로 알고 헤어져 근 20년 가까이를 지냅니다. 딸 디나의 일로 인해서 세겜에서 큰 어려움의 시간을 보냅니다.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그 모든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벧엘에서,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오늘 본문 2절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광야와 같은 인생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아픔의 길입니다. 힘겨운 길입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약속의 땅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새역사를 향한 준비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의 어려움, 불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붙잡아 주심으로, 건져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겨낼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데, 왜 광야를 허락하십니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를 시키시는 거죠. 그러면서 그 모든 광야를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이겨낼 수 있도록, 그래서 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하시고 붙잡아 주십니다.40년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의 삶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성장을 이룹니다. 불순종으로 시작한 광야의 삶을 순종의 훈련으로 삼은 뒤, 저들은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기쁨 되는 모습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때로는 물과 같은 시험과 고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불과 같은 어려움과 아픔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오직 주의 손길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붙잡아 주시고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광야의 삶, 그 어떤 시험과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사랑을 힘입어 이겨 승리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르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대적을 통해서도 

보호하시고 단련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의 세 가지 사랑 중에 마지막, 특별한 사랑입니다. 본문 3절에 말씀합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주 특별한 존재로 삼으시고, 다른 이방민족을 내어주시면서까지 보호하심을 말씀합니다.그러면서 5절에서 7절까지 말씀을 보면, “내놓아라. 오게 하라. 동쪽에서, 서쪽에서, 그리고 남쪽과 북쪽에서 자손들을 다 모을 것이다.” 이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질 미래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죠.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였다.” 바벨론 포로 시기를 이스라엘의 암흑기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구약 성경에 보면 “남은 자 사상”이 있습니다. 백성들의 죄악 중에도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자가 있다는 겁니다. 홍수 심판에 의인 노아가 있었던 것처럼, 바알숭배가 만연했던 엘리야 시대 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 칠천인을 남겨두신 것처럼,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갈 남은 자가 있습니다.이스라엘이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동시에 포로가 되지 않고, 본토 예루살렘에 그냥 남아서 그 땅을 지키고 있던 자들도 있습니다.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가 남은 자,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자입니다.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애굽에서의 노예생활, 바벨론 포로 생활은 광야와 같은 고난의 시간이었음에도, 하나님은 도리어 그 시간을 통해서 회복의 미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대적의 세력을 통해서 오히려 보호하시고, 단련시키시고, 성장케 하심으로 약속의 땅을 향한 준비의 시간으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의 믿음의 백성을 향한 특별한 사랑입니다.


광야와 같은 우리의 삶에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 기쁨과 즐거움, 또한 탄식과 절망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인물로 빚어가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주의 특별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르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통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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