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32)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2)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32)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2) <이사야 55:6~13>

광야와 같은 현실, 그 속에서 우리들은 또 각자의 삶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회적인 현상과 맞물려서 생겨나는 광야, 가정의 문제로 인한 광야, 자녀와의 갈등으로 인한 광야, 막연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광야, 건강의 문제로 인한 광야, 다 광야를 살아갑니다.지난 주일과 오늘 말씀의 제목이 똑같습니다. 다만, 지난 주에는 하나님의 영역에 관한 말씀이 중심이었다고 한다면, 오늘은 우리의 자세,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말씀이 중심입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듯이, 광야가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광야는 힘겹고 어려운 길이요, 빨리 지나가길 원하지만, 광야를 통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믿음의 자세, 삶의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광야가 머물러 살 곳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광야의 삶은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광야가 여러번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인 광야, 국가적인 광야, 사회적인 광야, 내 개인적인 삶의 광야, 더불어 영적인 광야, 마음적인 광야, 육적인 광야, 이 수많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사모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명한 초청장입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본문 앞에 있는 55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하죠.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목 마른 자들이 누구인가요? 영적으로 해석하면 아직 구원의 은혜를 입지 못한 이들입니다. 삶적으로 표현하면 뭔가 갈급함 가운데 있는 이들입니다. 오늘 제목에 비추어 보면, 광야의 삶을 걸어가는 자입니다.비슷한 말씀이마태복음 11장 28절에도 나오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동일한 초청의 메시지입니다.그런데 정작 오지를 않습니다. 왜요? 나 자신의 목 마름, 나 자신의 갈급함을 모른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평가할 때에, 모든 부모님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 우리 딸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보세요.정말 그럴까요? 한국의 교육방송 프로그램에서 민성원이라는 교육컨설턴트가 말합니다. “한 백명이면 열 명은 머리가 좋습니다. 나머지 90명은 보통이거나 그 이하입니다.” 그럼에도 교육컨설팅을 받으러 온 엄마들은 한결같이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럼 여기서 필요한 게 뭔가요? “그래. 우리 애는 틀렸어.” 아니잖아요. 아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거죠.물론 공부도 잘 하면 좋겠지만, 다른 것을 잘 해도 좋습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게 제일 안타까운 것입니다.


사모함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내 안에 꿈과 비전을 품는 게 이래서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네가 사모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우리에게도 약속의 땅에 대한 영적인 사모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손들의 앞길 가운데도, 자신의 미래와 꿈과 비전을 향한 사모함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지 말래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르려면, 그 땅을 먼저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광야의 현실을 지나 축복의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모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모습을 우리 주님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사모함으로 주님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과 2절에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창조기사로 성경이 시작되는데, 창조 이전의 시대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한 마디로 아무 존재도 질서도 없는 완전한 무의 시대입니다. 거기에 유, “있을 유”라는 가치를 부여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까지도 행하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어떻게요? 말씀으로. “나사로야! 나아오라.”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사, 말씀으로 생명을 살리십니다.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내 입에서 나온 말은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룰 것이고,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할 것이다.”


J.B. 가칠라라는 기독교 칼럼리스트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 번째, “성경을 읽어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으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읽지도 않고 어떻게 그 능력을 체험하겠습니까?이어서 두 번째, “믿어라.”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면,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에 주시는 말씀을,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순종하라.” 읽고 믿는 것, 그 다음에는 순종하는 걸음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저 멀리 창조의 역사,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역사,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작은 곳에서도 말씀의 능력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와 눈이 내려 땅의 소산을 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심겨질 때에, 우리 삶에도 열매가 맺혀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열매들, 신앙의 열매들, 예배의 열매들, 기도의 열매들, 부흥의 열매들, 뿐만 아니라, 삶적인 아름다운 열매들, 즉 사업장과 직장과 자녀와 건강과 경제적인 것, 모든 것에 있어서 믿는 자로서 복된 형통의 열매들을 맺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사모함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 순종하는 자에게 복된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르는, 그 속에서 풍요의 결실을 맺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복된 변화의 삶을 향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은 왜 뉴질랜드에 오셨습니까? 복된 삶을 향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다른 말로 어떻게 부르나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럼 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요? 일반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면 풍요로운 땅, 비옥한 땅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평가 기준로 하면 뉴질랜드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죠. 이스라엘은 절대 아닙니다.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담긴 의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약속의 땅이요, 축복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장소만 바뀐 것이 아니라, 그 땅에 거하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 여기 말씀하는 모든 축복이 다 미래형입니다. 지금 당장은 광야의 삶일지라도, 이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함을 받아 변화된 삶의 축복을 누릴 것에 대한 소망이 담긴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씀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복된 변화의 삶, 한 번 그렇게 경험하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한 번 약속의 땅에 잠깐 머물다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주심을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이러한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는, 지금 우리는, 지금 내 자녀는 혹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갈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오늘 말씀에 약속하신 복된 변화의 역사를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오늘 말씀에 약속하신 복된 삶을 풍성히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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