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지금여기 ; Kiwi라 불리는 사람

교민뉴스


 

백동흠의 지금여기 ; Kiwi라 불리는 사람

일요시사 0 284 0 0

Kiwi라 불리는 사람



1997년 뉴질랜드 땅에 정착의 발을 내려놓았다. 그때 이민 선배가 날 불러 알려주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뉴질랜드에 Kiwi가 셋 있으니, 잘 새겨들으라고 했다.


첫째는 뉴질랜드 국가 새, Kiwi이고

둘째는 뉴질랜드 과일, Kiwi이며

셋째는 뉴질랜드 현지인, Kiwi라고.


이민 세월이 반세기를 지나면서 차츰 뉴질랜드 현지인 Kiwi에서 참모습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나도 어느덧 코리언 Kiwi라고 듣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일상 흐름에 따르다 보니 여유와 평화가 느껴졌다.


Kiwi라 불리는 사람으로 우선 내 주변에서 만나는 윌리(현 75세)가 자주 떠오른다. 


윌리 할아버지 집, 가든 정리를 마칠 무렵이었다. 창밖으로 울려 퍼지는 피아노곡과 노래를 듣고 창문 안으로 내 감정을 실어 전했다.


“오! 윌리. 지금 치는 피아노 연주와 노래가 가슴을 울려요. 무슨 노래에요?”


“어~ 프란시스. 수고 많아.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부른 노래야.” 


잔디깎이에 잔디를 털어내고 접었다. 전정 가위로 웃자란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피아노곡과 할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반복적으로 계속 들려왔다.


~해가 저물고 밴드가 연주를 멈출 때, 우리 모습 이대로 난 영원히 기억할 거야~


얼추 가든 관리가 끝나서 장비를 차에 싣고 손을 씻었다. 손등으로 쏟아지는 샤워 물이 간지러웠다.


물기 있는 손을 털털 터는데, 윌리 할아버지가 언제 와서 기다렸는지 타올을 들이밀었다.


“고마워요. 윌리. 아까 들려준 레이디 가가의 노래, 집에 가서 저도 들어볼게요. 반복되는 후렴구가 인상적인데요.”


“프란시스. 언제 그 후렴구를 기억하고. 떠나간 아내도 이 노래를 좋아해서 함께 자주 불렀어. 이층 방에 전기 코드 좀 봐줘. 전원이 잘 안 먹히거든.”


윌리 안내를 받고 이층 침실에 가보니 참 가지런했다. 퀸 침대 위 오른쪽에 한 달 전 돌아가신 엘리자베스 할머니 핸드백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


핸드백 있는 쪽 벽에 콘센트가 문제였다. 전원을 끄고 드라이버로 풀어 상태를 점검했다. 전선 가닥 한쪽이 풀려있어서 다시 꼭 감아 조였다.


“윌리. 이젠 정상이에요. 안전해요.”


“프란시스는맥가이버네. 손만 대면 척척이야. 고마워. 여기 주스 한잔 마셔.”


주스를 받아 마시다 보니 할머니 핸드백 쪽 탁자 위에 둔 사탕 두 알이 눈에 들어왔다.


“윌리. 여기 녹색 사탕 두 알에 잔 개미들이 몰려있어요. 이거 버리든지 해야겠어요.”


“노. 노! 이 사탕 알 두 개. 엘리자베스가 살아생전 나와 먹던 마지막 거야. 그냥 둬.”


“아! 그래요? 그럼. 사탕을 감싼 비닐종이 안에 끼인 잔 개미들을 털어낼게요.”


내가 얼른 사탕 비닐종이를 풀어 그 속에 들어간 개미 새끼들을 다 털어냈다. 


“고마워. 아내가 50년을 살다 떠났지만, 아직도 옆에 있는 것 같아. 미안해. 내가 좀 주책인가?”


“그래서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노래가 위안이 되었군요.” 


“프란시스. 부디 이제부터 건강 잘 챙겨야 해. 아내는 폐질환으로 치료받다가 코로나에 두 번 걸려 고생만 하고 떠났어. 


침대에 건강한 두 사람이 함께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날 수 있다면. 때론 누워서 사탕 하나씩 입에 물고 게으름도 피우고. 그게 부자야.”



Kiwi라 불리는 사람으로 뉴질랜드 총리와 국민을 다시금 생각하곤 한다.


뉴질랜드는 3년마다 열리는 총선에서 정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당 대표가 뉴질랜드 총리가 되는 방식이다. 총리를 유권자가 직접 뽑지 않는 게 특징이다.


교민들이 모여서 하는 말이 그대로 뉴질랜드 여론을 반영하는 평가지수였다.


“뉴질랜드 총리는 다들 과감해. 집권 내 최선을 다해 일하다 역량이 고갈됐다 싶으면 홀연히 총리직을 내려놓고. 차기 당직자가 남은 임기를 맡고.”


“지난번 국민당 존 당수가 5선 연임을 바라보는 총리직 자리를 내려놓고 가정으로 돌아갔지. 크라이스트 대 지진 참사 대응과 재건축 부흥을 일궈놓고.”


“이번 노동당 저신다 당수도 2선 연임을 눈앞에 둔 총리직을 접고 집으로 복귀했고. 37세 최연소 여성 총리에 초기 코로나 대응도 잘했는데.”


Kiwi라 불리는 사람, 총리나 국회의원이나 소신껏 일해보고 너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다. 일단 정당과 국회의원을 뽑으면 믿고 따른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정책과 부족한 면이 보이면 다음에 반드시 표로 심판한다.


2023년 10월. 뉴질랜드 총선이 치러졌다. 유권자 국민이 정권을 과감히 바꿨다.


***


Kiwi라 불리는 사람으로 린드 후드 박사(현 80세)가 떠오른다. 건강하길 빈다.


10여 년간 잃었던 시력을 기적적으로 회복한 린드 후드 박사가 지난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엎어진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추락사고로 골반까지 다쳤다. 만성 요통 완화 실험에 참여해 뇌에 전기 충격 자극 치료를 받던 중.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10년 넘게 악화한 시력이 호전되었다. 현재 크게 문제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앞 못 보고 고생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쓸 계획이라니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10년간, 시간을 낭비한 죄보다 더 큰 죄는 감사를 모르는 죄라고 했다. 쏟아낼 그 책에 벌써 관심이 간다.


***


위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들었다. 큰 사람 위인(偉人)과 사람다운 사람 위인(爲人)이다. 


Kiwi라 불리는 사람은 큰 사람 위인(偉人)을 넘어 사람다운 사람 위인(爲人)으로 살아가고 있다.


코리언 Kiwi로 불리는 나도 큰 사람 위인(偉人)보다는 사람다운 사람 위인(爲人)을 바라며 이민을 온 것 같다.


때를 잘 맞이한 후 골드 키위로 익어가는 것처럼 나도 어느덧 골드 카드를 받은 Kiwi가 되었다. 


시간 부자 그리고 감사 부자에 건강 부자가 생활에서 우러나길 믿으며 2024년 새해를 맞는다.


감사를 모르는 죄는 멀리해야지. 시공간으로 만나는 모든이웃과 함께 공감하며 나누며 골드 Kiwi로 익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 출처: [에세이문학 2023년 겨울호 해외 통신]에 게재한 글임.



백동흠(Francis Baek)

수필가. 2017년 제 19회<재외동포문학상수필대상>수상. 2022년 제40회 <현대수필문학상>수상. 수필집 <아내의 뜰>. <The Heavens 지금여기>



0 Comments